한시를 우리시로 읽으세요 42

낮잠자는 즐거움

by 김성수

晝眠十絶句 주면십절구 꿀낮잠

金春澤 김춘택 1670-1717


白髮垂垂孤竹枕◎ 백발 풀어헤치고 대나무 베고 누우니

靑煙裊裊小茶罏◎ 차 주전자에 푸른 내 아련히 감도네.

手中書卷時遮眠 서책을 꺼내들고 잠을 쫓아 보지만

字劃微茫半欲無◎ 글자가 가물거리니 無의 경지에 들어갈 듯-


10절구라 했으니 절구 10편이었지만 그 중의 하나입니다.


白백髮발垂수垂수孤고竹죽枕침

白髮 흰 머리. 垂垂 늘어지다. 풀어헤치다. 흰 머리를 아무렇게나 늘어트리고. 머리를 묶어 상투를 트는 것은 세속인들이나 하는 짓이고, 백발을 풀어헤친 것은 세속의 부귀공명을 초월한 자연인의 모습입니다. 孤竹 외로운 대나무. 외로운 대나무라고 하면 자연스럽지 못하여 외로운은 생략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시인의 입장에서 보면 구태여 외로울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백발, 대나무에 구태여 목적격 조사를 붙일 필요도 없습니다. 시는 문법을 어길 때 더 시다워질수 있습니다. 枕 베개, 베다. 여기에서는 베다라는 동사로 옮기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래야 전원에 한가로이 거니는 은둔거사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靑청煙연裊요裊요小소茶차罏로

靑煙 푸른 내, 아지랑이, 안개. 내가 푸른 것이 아니라 전원의 색깔이 그렇다는 말이지요. 세속과 멀리 떨어진 별천지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裊裊 가늘고 부드러운 모습. 여기에서는 '아련히'라고 했습니다. 小茶罏 작은 차 주전자. 푸른 내가 그윽히 감도는 차 주전자에 세속을 떠난 도인이 한가로이 차를 즐기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手수中중書서卷권時시遮차眠면

手中 손에 든. 書卷 책. 책을 놓지 않는 것은 세속의 면학하는 지식인의 자세입니다. 時 때때로. 생략하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 遮 가리다. 여기에서는 책을 꺼내들고 잠을 '쫓다'가 좋을 것입니다. 眠 자다. 여기에서는 쏟아지는 잠입니다. 잠을 쫓는 행위는 선비의 면학정신입니다. 그러나 세속을 벗어나고 보니 구태여 책을 읽을 읽어 낮잠을 쫓을 마음도 없어질 것입니다. 이 시는 모든 근심 욕심을 쫓아내고 한가로이 낮잠 자는 재미를 읊은 시입니다.


字자劃획微미茫망半반欲욕無무

字劃 책에 있는 글자. 거기에는 홍진에 대한 욕심과 미련이 적혀져 있습니다. 微茫 가물가물, 쏟아지는 잠에 글자가 잘 보일 리가 없습니다. 半 반은 거의. 欲 하고자, 할 듯, 의지. 여기서는 ’할 듯‘으로 옮깁니다. 無, 도가에서는 자연이 곧 無입니다. 불가에서는 무욕이 空입니다. 이렇게 보면 세속의 도리를 적은 서책이란 무용지물이거나 번거로운 욕심일 뿐입니다. 그것을 적은 글자가 가물거린다는 말은 이제 그런 정도의 유혹에는 넘어가지 않을 경지에 도달했다는 의중일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무의 경지에 거의 다다른 것이지요. 드러나지 않게, 암시적으로 정원한정의 경지를 표현한 솜씨가 뛰어납니다. 그러나 이 시인의 일생은 살벌한 세상에서 험난한 삶을 살았으니 이 시는 한낱 희망사항이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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