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에서
次客館韻 차객관운 林億齡 임억령 1456-1568
吏散庭沙鳥印蹤◎ 손들이 가자 뜨락에 새 발자욱만 어지럽고
杏花疎影月明中◎ 살구꽃 사이로 달빛이 밝구나.
白頭强壓烏紗帽 흰머리에 억지로 오사모 눌러쓰고 있다가
客去而懸客至籠◎ 손이 가면 걸어놓고, 손이 오면 쓴다네.
吏이散산庭정沙사鳥조印인蹤종
吏 관리 , 벼슬아치. 散 흩어지다. 庭 뜰. 沙 모래. 鳥 새. 印蹤 발자국. 吏는 객관에 왔던 손님을 가리키는 말일 것입니다. 객관은 외부손님이 유숙하던 숙소. 청렴강직했던 시인의 정서로 보아 번거로운 사람들일 것입니다. 뜨락에 새발자국은 실제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상징하는 것은 하찮은 속세인들의 흔적일 것입니다. 그래서 원문에는 없지만 그 흔적들이 ‘어지럽다’고 옮겼습니다.
杏행花화疎소影영月월明명中중
杏花 살구꽃. 疎影 듬성듬성한 꽃 그림자. 月明中 달빛 아래. 손들이 가고 난 후의 뜰의 정겨운 모습입니다. 이는 새 발자국와 의미의 대칭을 이루고 있습니다. 번거로운 속인들이 사라지고, 이제 달빛 아래 고즈넉히 남아있는 행화촌의 아름다움- 이는 시인이 바라는 경지요, 심경일 것입니다.
白백頭두强강壓압烏오紗사帽모
白頭 흰 머리. 强 억지로. 壓 누르다. 烏紗帽 관리 양반들이 쓰는 모자. 특권층을 나타내는 대유어입니다. 오사모가 '누르다'라는 말은 벼슬살이가 부담이 되고, 그 부담에서 벗어나고픈 의지를 드러낸 것입니다.
客객去거而이懸현客객至지籠농
客去 손님이 가다. 而 -고 나면. 懸 걸어놓다. 오사모를 벗어 걸어놓는다는 것은 벼슬살이의 압박에서 자유롭게 된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오사모는 손들이 오니 책무상 할 수 없이 억지로 쓸 수밖에 없었던 모자입니다. 客至 손님이 오면. 籠 바구니. 여기에서는 버티다, 주저앉다. 억지로 모자를 쓰고 앉아있다라고 풀이하고 싶습니다. 억지로 앉아있다라는 말은 걸어놓았던 오사모를 억지로 머리에 쓰고 있다는 뜻으로 옮겼습니다.
임억령은 뜻이 높았던 선비로서 세속의 입신양명보다는 지사의 절조를 숭상했던 선비였습니다. 이 시는 시인이 지방 방백으로 있었던 시절에 지어진 것 같습니다. 남들은 영예로 알았던 오사모를 벗어놓기를 좋아했다는 말은 세속의 영예와 구속에서 자유롭기를 바랐던 의지표현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