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題
김병연 金炳淵 1807-1863
年年年去無窮去◎ 해마다 해는 가고 또 가고,
日日日來不盡來◎ 날은 날마다 오고 또 오네.
年去日來來又去 해는 가도 날은 오고 또 가니
天時人事此中催◎ 천시와 인사가 이 중에 (또) 바쁘구나.
김병연의 시는 쉬운 가운데 재치와 해학이 넘칩니다. 이 시도 그의 특징을 맛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시가 늘상 무겁고 심각하다면 가까이 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의 시가 항상 가볍고 천박스러운 것도 아님을 이 시가 보여줍니다.
年년年년年년去거無무窮궁去거
年年 해마다. 年去 해가 가다. 無窮去 무한히 가다. 年자가 석 자나 되고, 去자가 두 자나 중복되어 시어의 남용 같지만 부담을 줄이고, 동시에 풍부한 음률을 느낄 수 있게 합니다. 일종의 언어유희일 수도 있지만 한시의 중압감을 덜 수 있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수사기교라고 할 것입니다.
日일日일日일來래不불盡진來래
日日 날은 날마다. 日來 날이 오다. 不盡來 끊임없이 오다. 앞구와 대구를 이루고 있으니 그 시적인 효과가 동일합니다. 한시의 대우(對偶)는 한시의 가장 자랑스러운 수사기교입니다. 이 두 구의 문장구조를 보면 의미, 통사, 성률이 모두 정확히 대를 이루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고도의 수사는 우리 시어로 옮기는 데 한계가 있어 한시의 형식미를 온전히 누리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당연히 이 번역도 그런 한계를 면치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대우의 묘미를 생각하지 않는 번역이 적지 않습니다.
年년去거日일來래來래又우去거
年去 해가 가다. 日來 날이 오다. 來又去 오고 또 가다. 앞에 나왔던 年과 去를 다시 반복하면서도 전혀 지루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시상을 가지런히 정돈하고, 결구에 이를 수 있도록 시상(詩想)을 전환할 수 있게 합니다. 그래서 한시의 구조를 기승전결(起承轉結)이라고 합니다.
天천時시人인事사此차中중催최
天時 하늘의 때. 우주, 자연의 섭리. 人事 사람의 일. 인생사. 此中 천시와 인사 사이. 催 재촉. 여기에서는 바쁘다로 옮겼습니다. 천시(天時)와 인사(人事)는 서로 맞서서 조화를 이루며 공존합니다. 사람이 이 중에 바쁘다는 것은 운명일 수도 있고, 허망한 일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방랑시인으로서는 운명과 허무함이 같이 공존하지 않을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