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가고
春盡日 진춘일 봄을 보내며
玄綺 현기 1809-1860
今日殘花夕日紅◎ 오늘 진 꽃도 어제는 붉었건만
十分春色九分空◎ 화려했던 봄빛도 허망하게 되었네.
若無開處應無落 피지않았더라면 떨어지지도 않았을 걸-
不怨東風怨信風◎ 봄바람 원망 말고, 봄샘바람을 탓해야지.
今금日일殘잔花화夕석日일紅홍
今日 오늘. 殘花 시든 꽃, 진 꽃. 夕日 어제. 紅 붉다.
오늘 시든 꽃도 어제는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꽃이었습니다. 이 작품이 단순한 꽃타령이라면 한 폭의 풍경화로 그치겠지만 주제의식을 '덧없는 인생사'로 보면 자못 심각해집니다. 어제는 젊은 청춘이었고, 오늘은 이미 늙어진 나이가 될 것입니다.
十십分분春춘色색九구分분空공
十分 가득한, 완전한, 100%. 화려로 풀이했습니다. 春色 봄빛. 九分 90%. 거의. 空 비다. 허무. 허망.
화려했던 봄날도 허망하게 되었네. 화려한 꽃밭을 십분으로 표현하고, 꽃이 진 살풍경을 구분으로 표현한 기교가 돋보입니다. 만약 이 구절이 없었다면 첫구는 진부한 표현에 그쳤을 것입니다. 원시 '십분', '구분'은 절묘한 표현이지만 이를 그대로 옮기면 우리시로서는 평범한 시어에 그칠 것이니 번역의 한계가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若약無무開개處처應응無무落락
若 만약. 無開 피지 않았다. 處 곳. 만약에 피지않았더라면. 곳은 따로 번역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應 당연히, 마땅히. 역시 옮기지 않는 것이 좋아 보입니다. 無落 떨어지지 않았다.
應을 생략했기 때문에 落의 번역을 섬세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않았을 걸- 이라고 하면 생략된 '응'을 어느 정도 보완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별도 없었을 것을- 지금이야 흔해빠진 유행가 가사이지만 당시 한시로서는 범상한 시구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不불怨원東동風풍怨원信신風풍
不怨 원망하지 말라. 東風 동풍. 봄바람. 怨 원망. 信風 신풍은 여름에 부는 남풍이지만 여기에서는 그런 뜻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글자 그대로 ‘믿을 바람’이라고 해야겠지만 그런 바람을 원망한다면 역시 말이 안 됩니다. 그렇다면 ‘믿었던 바람’이 어떨까 싶습니다. 동풍이야 으레 부는 봄바람이니 원망할 대상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동풍과 달리 ‘믿었던 바람’이란 꽃샘바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믿지못할 세태 인심’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원작에 대한 지나친 간섭이나 억측일 수도 있어 일단 ‘봄샘바람’이라고 옮겼습니다. 그러나 이 시는 다소 무리가 가더라도 상징적인 관점으로 해석하는 것이 좋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 시는 단순한 洛花圖가 아니라 ‘청춘을 배반한 세월과 세상에 대한 원망과 탄식’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는 착상과 표현, 그리고 주제의식이 매우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한시가 범하기 쉬운 허탄, 공허, 비현실, 몽상의 한계를 뛰어넘는 걸작이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