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를 우리시로 읽으세요 57

묘지의 수난

by 김성수

移葬 이장 파묘

金昌翕 김창흡 1653-1722


蓋棺猶有事難知◎ 관뚜껑을 덮고나서도 사람 일은 모를 일-

子大孫多被堀移◎ 자식 잘 되고, 손자 많으니 무덤이 파헤쳐진다.

生存華屋安身久 살아서는 고대광실에서 편안히 장수하였거늘

死作飄蓬豈不悲◎ 죽어서는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니 어찌 슬프지 않으랴?


근래 파묘라는 영화가 성행하여 관심이 가는 작품입니다. 지금도 그러니 풍수가 성행하던 옛날에는 굉장히 성행했을 갓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소재의 한시는 많지 않았으니 더욱 귀한 작품입니다.


蓋개棺관猶유有유事난難난知지

蓋棺 관 두껑을 덮다. 죽어서 묻히다. 죽어서 장례를 마치고 관 뚜껑을 덮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것이 우리의 일반적인 인생관입니다. 猶有事 아직 남아있는 일이 있다. 難知 알기 어려운 이생사, 사람의 일.

그러나 땅에 묻히면 끝날 줄 알았던 인생사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이 시의 주제의식입니다.


子자大대孫손多다被피堀굴移이

子大 자식이 성장하다. 孫多 후손이 번성하다. 집안이 융성하다. 被 당하다. 堀 땅을 파내다. 移 이장.

무덤이 파헤쳐지는 비극은 자손이 융성할수록 더합니다. 그럴수록 후손이 더 잘되기 위해서 선조의 이장을 해대기 때문입니다. 대통령 후보쯤 되면 이미 출세한 셈이건만 대통령에 당선되기 위해서 조상의 묘를 이장하여 호화롭게 꾸미는 일을 자주 봅니다. 후손이 잘못되더라도 마찬가지로 이장을 하게 될 것입니다. 자손이 융성하지 못하면 흉당이라서 이장을 하게 되고, 자손이 잘 되면 더 잘 되기 위해서 명당을 찾아 이장을 하게 됩니다. 차라리 집안이 망하거나 아예 무덤을 쓰지 않으면 그런 곤욕이 없어지게 될 것입니다.


生생存존華화屋옥安안身신久구

生存 살아서는 존귀하다. 華屋 화려한 집, 고대광실. 安身 편안한 몸. 久 오래도록. 살아서는 고대광실에서 안락하게 장수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만-


死사作작飄표蓬봉豈기不불悲비

死作 죽어서는 -이 되다. 飄蓬 떠돌아다니는 풀포기. 豈 어찌. 不悲 슬프지 않으리오?

살아서는 오랫동안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죽어 묻혀서는 묘지에서 파내어져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운명이니 어찌 슬픈 일이 아니리오? 풍수지리를 믿었던 옛날에는 이장의 풍습이 더 심했을 것입니다. 더구나 지금은 국토는 좁고 죽는 사람은 많은데 구태여 명당을 찾아다니면 호화묘지를 쓸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차라리 죽어서 기꺼이 자연생태의 거름이 되거나 아예 땅을 차지하지 않으면 이장을 당하는 끔찍한 수난은 면할 것입니다. 명당을 찾아 헤매지만 세상에는 명당은 드물고 흉당은 많은 법입니다. 그러니 명당을 찾아 헤매이지만 흉당을 차지할 가능성이 훨씬 큽니다. 왜 그런 모험을 하는지 모를 일입니다. 묘지가 없다면 명당이니, 흉당이니 가릴 것도 없습니다. 명당을 차지하고 있어봐야 얼마 안 가 잡초만 무성해질 텐데 무슨 생색이 나겠습니까? 우리의 장례문화를 깊이 생각해 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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