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를 우리시로 읽으세요 56

방생의 의미

by 김성수

養魚 양어 고기를 기르는 뜻은

趙雲植 조운식 1804- ?


新種魚苗未滿寸◎ 한 치도 안 되는 어린 물고기를 풀어놓자

已看稚子却鼓針◎ 아이놈은 벌써 바늘을 두드려 낚시를 만든다.

爾莫洋洋欣得所 네 세상 만난듯이 의기양양하지 마라-

放生原是殺生心◎ 방생이란 원래 살생을 노린 거란다.


제목이 養魚로 되어있지만 옛날에 지금과 같이 상업화된 양어사업이 있었을 것 같지 않습니다. 방생은 불교의식의 하나로 어린 물고기를 내나 강에 풀어주는 행사입니다. 放生이 생명을 존중하는 자비의 행사라면 제목 양어와는 다른 뜻일 것입니다. 만약 주제가 '양어'라면 처음부터 길러서 잡아먹을 목적이 분명하기 때문에 세태를 비판하는 의미가 줄어들 것입니다. 핵심어가 양어가 아닌 '방생'이라야 이 시의 주제의식이 선명해질 것입니다. 자비를 내세운 방생도 알고 보면 키워서 잡아먹는 '위선의 세상인심'으로 보려는 것이 시인의 의도가 아닐까 합니다. 한시의 상투적인 주제에서 벗어나 있어 더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新신種종魚어苗묘未미滿만寸촌

新種 새로 기른. 種은 명사로는 씨앗, 종자이고, 동사로는 심다, 뿌리다입니다. 魚苗 어린 고기. 치어. 이를 직역하면 요즈음의 양어산업 같지만 옛날에 이런 산업이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신종이나 양묘는 사실 시어의 중복이라서 직역하면 어색해집니다. 이는 결국 ‘어린 물고기’입니다. 未滿寸 한 치가 안 되는 치어. 그래서 ‘한 치도 안 되는 어린 물고기를 풀어놓자'라고 옮겼습니다.


已이看간稚치子자却각鼓고針침

已看 직역하면 ‘이미 보다.’가 되겠지만 시어로는 어색합니다. 의역하면 ‘이를 본’이 되겠지만 역시 자연스럽지 못합니다. 뒤의 却과 연결시켜 옮기면 자연스럽게 반영될 것입니다. 稚子 어린 아이. 어린아이는 가장 순수해야하지만 그 어린아이가 물고기를 잡아먹으려고 서둘러 낚시를 만드는 잔인한 세태를 드러내자는 것이 시인의 의도일 것입니다. 却 직역하면 '오히려'정도가 될 것이나 앞의 已看과 연결시켜 '벌써'라고 옮기면 둘 다 반영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치어를 풀어놓는 행동은 물고기를 방생하는 자비가 아니라 키워서 잡아먹으려는 흉계라는 시인의 의도를 옮겨야 합니다. 鼓針 바늘을 두드리다. '낚시'라는 말은 없지만 바늘을 두드려 낚시를 만드는 행위는 고기를 잡아먹으려는 인간의 탐욕입니다. 어른보다는 어린 아이의 행동이어야 시인의 의도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그래서 ‘아이놈은 벌써 낚시바늘을 만드는구나.’라고 했습니다.


爾이莫막洋양洋양欣흔得득所소

爾 너, 어린 물고기를 말합니다. 莫 하지 말라, 금지. 洋洋 물고기가 활발하게 노니는 모습. 欣 기쁘다. 得所 살 곳을 얻다. 물에 풀어놓은 치어가 힘차게 헤엄치며 놀지만 네가 빨리 자랄수록 명 재촉을 할 것이니 좋아할 일도 아니지요. 만약에 치어를 인간으로 생각한다면 주제의식은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할 것입니다. 세상은 간악하고 위선자가 많아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니 항상 조심하고 신중하게 살라. 지금 잘 나간다고 ‘네 세상 만난 듯이 의기양양하지 말라’


放방生생原원是시殺살生생心심

放生 불교에서 생명체를 살려보내는 자비 의식.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양어장이 아니라 냇물에 치어를 방생하는 불교의식으로 보고 싶습니다. 原 원래, 본래. 是 이다. 原是는 인간의, 사회의 비정함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입니다. 殺生 생명을 빼앗다, 죽이다. 心 마음, 심보. 방생은 원래 살생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인데 알고 보면 키워서 살생하는 흉악한 세상인심입니다. 이것이 시인의 의도일 것입니다. 한번 더 생각하면 선행임을 내세운 인간의 행위 중에는 방생과 같은 위선적이고, 타산적인 흉계가 숨어있는 세상임을 경계한 시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목인 養魚는 이 시의 주제가 아니라 소재에 불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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