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고 방관하는 사람들
하인리히의 법칙이란 ‘하나의 사고가 일어나는 데에는 29개의 유사사고가 있고, 300개의 징후가 있다.’
어떤 사고이건 우연과 돌발이 아니라 반드시 그 징후와 비슷한 사고가 있으니 이를 간파하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말이다. 백 년 전 보험연구가 하인리히가 세운 이 법칙이 지금도 우리나라의 상황에 적용될 수 있을 듯하다. 계엄선포가 하나의 사고이고, 그 지지자가 29라면 이를 반대하고, 성토하는 국민은 300 - 이라고 해석한다면 대체로 이런 셈법을 어렵지 않게 수긍할 수 있지않을까 싶다. 민심이 천심이고,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가 맞다면 이번 계엄령과 이를 옹호하는 29는 천심과 민주주의에 정면으로 맞서고 있는 꼴이다. 언제라도 그랬듯이 그들의 눈으로는 국민은 무기력하고, 어리석은 집단들로 보이는 것이다. 현 정부의 失政을 새삼스럽게 일일이 들어 말할 필요조차 없다. 이들을 더 이상 방치한다면 자유민주주의는커녕 국가의 장래는 물론, 국민생존과 정의와 상식은 존재할 곳이 없어질 것이다. 그나마 가까스로 탄핵이 가결되었으니 우선 한숨을 돌린 셈이다.
생각하면 우리 정치사에 혼군과 폭군이 명군, 현군보다 더 많았다. 그러니 지금에 와서 유독 윤통을 혼군, 폭군으로 몰아붙여 탄핵을 하자는 것은 그들 말대로 과도한 처사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정치사가 늘 그래왔으니까- 그도 그중의 하나일 뿐이니까- 무엇보다 이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출한 사람들이 국민이니까 그 책임도 국민이 분담해야 옳다. 외국 언론들 말대로 ‘한국국민은 두고두고 장기할부로 대가를 물어야 할’ 것이다. 적어도 국민 절반 이상은 그를 일방적으로 매도할 자격이 없을지도 모른다. 대선 전부터 300개의 위험징후를 윤석열에게서 명백히 보고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대통령 후보자토론회에서 드러난 그의 거짓말과 저급한 지적 수준을 보고서도 그를 당선시켰으니 그 책임이 국민한테 있는 것이 분명하다. 글러브 낀 어퍼컷세레모니는 국민을 향한 총칼이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민주주의에서 혼군과 폭군은 우연히 나오지 않는다. 국민이 뽑지 않았다면 그런 자들이 대통령이 될 리가 없지 않은가? 지금까지도 29들은 계엄령을 정당한 통치행위라고 우기고, 탄핵은 나라를 혼란에 빠뜨릴 뿐이라고 국민을 겁박하고 있으니 설사 다수의 300이 이를 탄핵했다 해도 쉽게 수습되기 어렵다. 야당 대표의 말대로 이제야 산 하나를 넘은 것 뿐이다. 나라의 위엄과 경제와 민생이 하루가 다르게 허물어지고 있는 형편에 정신 나간 윤석열은 철부지 29에 의존하여 300에 결사항전을 부르짖고 있으니 5천만이 기가 막힐 일이다. 스페인의 미치광이 돈키호테가 타고 다니는 로시난테는 비루먹고, 창은 녹 투성이의 웃음거리였으나 대한민국의 윤키호테는 탄핵을 당하고도 국민과 헌재에 당당히 맞서겠다고 패악을 부리고 있으니 실로 끔찍한 주정뱅이 망나니극이 아닌가?
선진국이라고 자부했던 우리나라가 이 지경이 된 바에 망상에 빠진 휘광이를 응징하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1에 속고, 29에 침묵하고, 300의 징후를 알아채지 못한 국민은 뼈를 깎는 반성을 해야 한다. 그들이 나라를 이 꼴로 만들고 있는데도 그동안 다수의 국민은 침묵하고, 방관해 왔다. 집권 이래 모든 失政을 전 정부 탓으로 돌리고, 마누라를 지켜내기 위하여 공정과 상식을 팽개치고, 정치를 포기하고 정적 죽이기에 골몰하고, 외교를 엉망으로 만들어놓고, 전쟁도발로 나라를 위험에 빠뜨려왔건만 300의 다수는 침묵하며 행동하지 않았다. '설마 나라야 팔아먹겠어?' '중도는 점잖게 관망하는거야' '정치꾼이란 다 똑 같은걸 하필 내가?' '나라가 망한들 절대 좌파들에게는 동조할 수 없지' 이런 구실을 대가며 행동하지 않은 이기적, 기회주의적, 허무적 무관심에 사태가 이 지경이 되었다. 일국의 대통령은 그 국민의 수준을 능가하기 어렵다. 만약 국민의 수준이 높았다면 윤뚱 같은 저질 대통령이 나올 수 있었겠는가? 저들을 비판하고, 응징하기 전에 동조자, 방관자들의 통절한 반성이 있어야 이런 불행한 사태를 역사의 교훈으로 삼을 수 있고, 진정한 통치자를 선출할 수 있다.
우리의 큰 약점은 얄팍한 냄비근성이다. 냄비처럼 쉽게 달아오르고 쉽게 식는- 그래서 진중하지 못하고, 이성적인 지속성이 부족하다고 한다. 늘 정치인들의 술수에 속아넘어가니까 저들이 국민을 우습게 보는 것이다. 일 년만 조삼모사(朝3暮4)로 농락하고, 지록위마(指鹿爲馬)로 겁을 주다 보면 모든 죄과를 잊고 또 찍어 준다는 것이 그들의 정치적 믿음이다. 그러니까 수백만 인파에도 불구하고 여당 국회의원들은 떼지어 탄핵을 반대하고 나서지 않았는가? 이래도 저들이 나라와 국민의 선량인가? 저들의 악행을 잊지말고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의 위엄을 보여주어야 한다. 1에게 맹종하고 있는 29들에게 다수의 300이 침묵한다면 이런 참담한 역사가 언제든지 다시 반복될 것이다. 민주시민 의식이 결여된 국민, 타락한 이익집단, 가짜뉴스에 속아넘어가는 노인들은 우리 사회에서 없어질 수 없다. 그러니 탄핵에 성공했다고 해서 감격하여 민주주의의 승리를 만끽하는 것은 좋으나 자칫 냄비적 자기만족에 그치지 않을까 걱정된다. 총을 든 망나니가 살아있는 한 우리는 마음을 놓을 수 없다. 계제에 다시는 교활한 정치인들에게 기만당하지 않을 지혜와 양심을 다짐해야 한다. 아무리 호소해 봤자 불통, 방관, 침묵하는 사람들이 하도 많아 어지러운 세사에 일일이 끼어들고 싶지 않지만 답답해서 또 한번 늘어놓는 기우이다. 여전히 이 글에 거부감을 가질 사람들이 적지않을 줄 알면서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