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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수 Dec 12. 2024

한시를 우리시로 읽으세요 89

낙화의 꿈

落 花

           李商隱    813-858 


高고閣각客객竟경去거      높은 누각에서 놀던 손들도 가고

小소園원花화亂난飛비      뜰에 피어있던 꽃잎은 어지러이 날려서는

參참差치連연曲곡陌맥      여기저기 흩어져 길을 덮고 있다가

迢초遞체送송斜사暉휘      아득히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구나.  

斷단腸장未미忍인掃소      애달픈 마음에 차마 쓸지 못하노니

眼명穿천仍잉欲욕歸귀      바라건대 나무로 돌아갈수 있기를-

芳방心심向향春춘盡진      춘흥은 봄과 함께 날아가 버리고

所소得득是시沾점衣의      남은 것은 눈물젖은 옷 뿐이네.               


高閣客竟去   

高閣 높은 집, 고대광실, 화려한 집. 客竟去 손님은 모두 가고. 고각은 낙화가 원래 있던 공간입니다. 竟은 마침내. 여기에서는 생략하는 것이 좋아보입니다. 손들이 모두 다 갔다는 말은 좋은 시절이 다 지나갔다는 뜻입니다. 꽃은 거기에서 지체 높은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小園花亂飛 

小園 작은 정원, 뜨락. 花亂飛 꽃잎이 떨어져 어지러이 바람에 날리는 장면입니다. 환락의 나무에서 떨어져 허무하게 바람에 날려가야 하는 운명을 슬퍼하는 장면입니다. 보통은 여기에서 시의 의미단락이 맺어지지만 낙화의 이미지를 지속시키시 위하여 연결어미로 옮겼습니다.        


參差連曲陌   

參差 가지런하지 않은 모습. 들쭉날쭉. 낙화가 흩어져 있는 모습입니다. 連 이어져 있다. 여기저기. 낙화가 온 길을 덮고 있는 모습입니다. 曲陌 굽이 길. 낙화가 떨어져 누워있는 길입니다.      


迢遞送斜暉     

迢 멀다. 遞 교차, 회돌이. 迢遞를 묶어서 ‘아득히’라고 옮겼습니다. 낙화의 절망적인 거리입니다. 送 보내다 전송하다. 斜暉 지는 해, 노을, 황혼. 황혼이 낙화를 비추는 모습을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다’라 옮겼습니다.   


斷腸未忍掃   

斷腸 창자가 끊어지는 슬픔. 애끓는 심정. 낙화에 대한 시인의 동정과 연민입니다. 未忍掃 未는 不과 같은 의미입니다. 차마 낙화를 쓸어내지 못하는 마음. 審美主義적인 시적태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眼穿仍欲歸  

眼穿 뚫어지게 바라보다. 낙화에 대한 지극한 애정입니다. 仍欲歸 여전히 돌아가고자 하다.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한번 떨어진 꽃이 나무로 돌아가기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말하는 것은 낙화가 시인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芳心向春盡   

芳心 꽃다운 마음. 꽃을 사랑하는 마음, 춘흥이라고 옮겼습니다. 向春盡 춘흥이 다하다. 봄이 지나감에 대한 상실감, 애상. 나무로 돌아가기를 갈망하는 시인의 春心은 낙화와 함께 사라져버렸습니다.      


所得是沾衣 

所得 얻은 것. 是 이다. 沾衣 옷을 적시다. 젖은 옷. 춘흥 춘심은 봄과 함께 사라지고 눈물 젖은 옷만 남아있는 슬픔입니다. 

  이 시는 낙화에 대한 애정이 섬세하게 진술하고 있습니다. 얼핏 낙화에 대한 연민으로 보이지만 낙화가 곧 자신이라는 심증이 가는 작품입니다. 당쟁에 휘말렸던 작자는 자주 좌절과 실의를 겪어야 했습니다. 고각의 손들이 모두 가버렸다는 말은 전성기가 지나갔다는 말입니다. 바람에 날리고, 길바닥에 떨어져서 지는 해에 마지막 빛을 발하고서는 스러져야 할 운명은 자신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차마 낙화를 쓸어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원래의 나무로 돌아가야 하는 것은 낙화가 아니라 다시 세상에 나아가고자 하는 자신입니다, 그래서 斷腸, 眼穿이라는 비장한 시어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낙화같은  자신의 소망은 이루어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간절한 소망은 사라지고 눈물 젖은 자신만 남아있는 것입니다. 다른 시들이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전원한정에 그쳤을 때에 이 작품은 자신의  아픔을 자연에 가탁해서 표현한 수단은 다른 한시에서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러기에 이 작품을 옮기기가 쉽지 않았지만 한시의 또 다른 면을 보여주고자 철을 놓친 지금에야 소개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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