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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림 Aug 24. 2020

첫째 날 - 21_21 design sight

도쿄 디자인 여행 첫째 날, 21_21 design sight에서

언니와의 3박 4일(도게츠 강, USJ, 료칸) 오사카 여행 일정을 마치고, 나 홀로 오사카역에서 (우여곡절 끝에) 신칸센을 타고 도쿄로 출발해 3박 4일 도쿄 디자인 여행을 시작했다.


됴쿄 역 근처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고, 바로 롯폰기 21_21 디자인 사이트로 향했다. 내 디자인 여행의 가장 큰 계기가 되었던 장소기도 했고, 동선상 첫째 날 방문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 첫날 첫 일정으로 21_21 디자인 사이트를 정했다.




21_21 design sight



예정보다 늦은 시간 도착한 21_21 design sight의 모습 - 안도 타다오 건축


21_21 디자인 사이트라는 곳의 존재를 검색하여 처음 알게 되었을 때, 가슴이 두근거렸는데 그 두근거리는 마음의 근원은 분명 질투였다. 질투에 가슴이 두근거려 본 경험은 아마도 그때가 처음이지 않았을까 싶다.

한국과 가까운, 별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던 일본에 이런 곳이 존재하다니, 갑자기 일본의 디자이너들이 미치도록 부러웠다. 일본에서 손꼽히며 존경받는 디자이너 Taku Satoh가 기획하는 '디자인'을 위한 전시장. 타쿠 사토의 디자인과 그의 디자인 프로세스를 존경하던 마음과는 별개로 디자인만을 위한 이토록 수준 높은 공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너무 큰 충격이었다.


이때까지 21_21 디자인 사이트에서 개최됐던 전시들은 다방면에서 내가 항상 존경하는 디자인 철학에 가까운 기획전 뿐이었다. 무엇보다 이 공간은 존재 자체만으로, 일본 내에서 디자인과 디자이너의 위상이 어떠한지를 보여주는 듯했다.


일본의 거장이라 불리는 디자이너들의 위상은 일본 최고의 기업,  자본과 동등한 위치에 있는  같았다. 자본에 휘둘리지 않는 디자인, 디자이너라면  번쯤 꿈꾸는  아닐까.




전시의 첫머리, Director's Message에서 전시 기획자는, 이 전시 그리고 21_21 디자인 사이트의 존재 이유가 일본 디자인의 DNA와 영감의 씨앗을 다음 세대 디자이너들에게 전달하기 위함이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왠지 모르게, 수업을 통해 나에게 좋은 영향을 주셨던 교수님들의 얼굴이 떠올랐으며, 그들이 조금 원망스럽기도 했다. 질투는 슬픔으로 바뀌었다.


내가 이토록 질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마치 나의 전 세대 디자이너들의 탓인 양 느껴졌다. 왜냐하면, 전시를 보고 나서 일본 디자인의 DNA 일부와 영감의 씨앗을 받은 내가 있었기에, 이런 엄청난 것들을 이렇게나 가까이에서 이렇게나 자주 접할 수 있는 환경이라니, 왜 이런 것들을 나는 이때까지 누릴 수 없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르 꼬르뷔지에의 롱샹 성당을 배경으로 뛰어놀며 성장한 아이들은 그로부터 어떠한 영향을 받을까? 궁금했던 적은 있었지만, 그때는 이렇게 질투하고 슬퍼하진 않았다. 가지고 있는 문화적 배경의 차이가 너무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더더욱 일본의 21_21 디자인 사이트와 이를 통해 내가 단편적으로 파악한 일본 내 디자인의 위상은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내가 좋은 디자이너가 될 수 있도록 인도해주신 교수님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훌륭한 디자이너이다. 국제적으로 활동하고 계신 교수님들,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고 계신 교수님들, 학생들에게 좋은 자극을 주고 좋은 가르침을 주시는 교수님들, 그리고 교수님들을 제외하고도, 국내에는 훌륭한 디자이너들이 많다. 그들의 행보 또한 마음 깊이 존경할만하다.


그래서 더더욱 슬픈 마음이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다짐했다. 언젠가 한국에도 이러한 디자인을 위한 공간을 만들자. 한국 디자인의 DNA를 모아보자. 슬퍼하거나 절망하게 될 다음 세대 디자이너들을 더 이상 만들지 말자.


물론 21_21 디자인 사이트를 모방하기에 급급 해서는 안될 것이다. 나는 그들이 다소 폐쇄적인 방식으로 양질의 디자인 DNA를 형성하고 전파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본 디자인의 DNA를 다음 세대에 넘겨준다'라고 표현한 부분이 특히 그렇다. 전통을 존중하고 계승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지만, 폐쇄적인 분위기가 전통을 지키고 살리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무작위로 주고 무작위로 받아들이라는 것은 아니다. 열린 자세로 주고 받아들이되 받아들인 것들을 잘 정리하고 가공한 다음 도약하려는 태도, 그리고 '잘' 정리하고 가공해 도약하기 위한 흔들림 없는 기초 체력 또한 앞으로 우리가 부단히 단련해야 할 부분이라고 본다.


지금의 나는 나의 다짐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할만한 디자인 수준 혹은 디자인에 대한 배움 수준에 전혀 미치지 못한다. 어쩌면 아무리 노력해도 그 수준에 다가가기에는 턱 없이 부족할지도 모른다. 그 수준에 미치기 위해서는 이전 세대의 디자이너들이 우리 세대를 위해 마련해준 발판을 밟고 크게 도약하는 방법밖에는 없을것이다. 이토록 훌륭한 국내의 디자이너들이 왜 일본의 그것을 따라가지 못했을까 슬퍼했지만, 내가 찾지 못한 훌륭한 발판은 만들어지고 있을 것이고 우리가 도약한 그곳에 다음 세대를 위한 훌륭한 발판을 마련해야겠지.



난제 1 - 한국 디자인 DNA 있다면 찾아보기

난제 2 - 한국의 디자인, 디자인이 나아가야 할 방향 생각해 보기

난제 3 - 자본에 휘둘리는 디자인을 최소화하기 위한 디자인 인식 개선

(인식 개선을 위한 디자이너들의 노력에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어떻게 동참시킬 수 있을까?)


과제 1 - 기초 체력 키우기 (어떤 방향과 방식으로?)




일본 디자인 협회



마츠야 긴자 백화점에서 제품을 선택하고 있는 일본 디자인 협회의 디자이너들


일본 디자인협회는 그들이 지향하는 '굿 디자인'을 보여주기 위해 굿 디자인 제품을 선정하고, 그렇게 선정된 제품들은 마츠야 긴자 백화점 7층에서 판매된다. 일본 디자인협회의 회원이자 존경하는 디자이너인 하라 켄야에 의해 새롭게 태어난 마츠야 긴자 백화점은 그런 일본 디자인협회를 지원한다. 백화점과 디자인 협회의 긴밀한 협업, 그것은 생각보다 멋지고 꿈같은 일인 듯했다. 마츠야 긴자 백화점은 여행 2일 차에 방문했는데, 그곳은 그들의 예리한 시선으로 정제된 굿 디자인 제품들로 가득했으며, 제품 하나하나를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이야기하려는 굿 디자인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곳에는 평범하게 필요한 물품들을 구매하러 온 방문객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제품들을 자유롭게 살펴보고 구매하고 있었다. 나에게는 비일상적이고 특별한, 수준 높은 공간에서 일상적인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또 한 번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디자이너의 스케치전



내가 방문했을 당시에 21_21 디자인 사이트에서는 디자이너의 스케치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일본 디자인 협회 디자이너들의 디자인 결과물이 나오기까지의 다양한 과정들을 아카이빙 한 전시였다.



거장들이 스케치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 전시 첫머리에 있었다. 조용하고 담담한 영상이었고, 특별할 것 없는 종이와 펜을 가지고 스케치를 해나가는 거장들의 모습을 담아내기에 충분했다.







디자이너들이 어떤 노트와 메모장, 볼펜을 사용했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모두 다 필요해 보이고 사고 싶었다...)













로고 디자인 프로세스는 크게 다를 것이 없었지만, 그에 곁들여진 꼼꼼한 기록과 그를 뒷받침해주는 듯한 연도별로 빼곡하게 정리된 수첩들을 보고 감탄했다.















ISSEY MIYAKE의 CI를 디자인한 디자이너 Shin Matsunaga. 이들의 사례를 보며 한국 디자이너 브랜드 브랜딩을 국내에서 진행하고 브랜드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다면, 정말 뜻깊은 일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6가지 조명을 하단의 버튼으로 조절하며 미니 라이팅 디자이너가 되어볼 수 있었던 체험형 전시물.

















Lighting Designer, Kaoru Mende의 스케치. 다소 생소한 개념인 라이팅 디자이너의 작업 과정을 훑어보는 것이 즐겁고 신선했다.




건축 디자이너 Hiroshi Naito의 '디자인과 건축 디자인 자체'에 대한, '건축 디자이너로서의 나'에 대한 생각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정리하고 정립하는 스케치들이 나의 평소 스케치 형식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기록들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그가 굿디자인 어워드의 심사위원장인 것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4번째 사진이 굿디자인 어워드의 디자인 카테고리를 재정립하기 위한 스케치라고 한다. 형식적인 것만을 봐서는 정확히 무엇을 정리하고자 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것이 디자인 카테고리를 정립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본다면 참 자유롭고 즐겁다. 굿디자인 어워드는 한국의 다양한 기업과 단체들도 다수 응모하는 어워드인데, 그곳의 심사위원장이 어떤 사람인지 간접적으로 알게 된 재미난 경험이었다.




하라 켄야의 스케치들. 연필로 그린 스케치들이 참 사려 깊었다. 'House vision' 전시 도록을 위한 스케치에 대한 감상은 내가 그 스케치들을 보고 있을 때 옆에서 관람하던 일본인 여성 두 분이 '사람이 맞아?'라고 한 말을 인용할 수 있겠다. 그는 이미 세계적인 위치의 디자이너였지만 그 이면에 저렇게나 섬세한 스케치들이 몇 페이지에 그치는 것도 아닌, 전 페이지에 걸쳐 존재했다니. 그에 한참이나 뒤떨어지는 나, 그리고 나의 작업 과정을 되돌아보며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작업 과정이 전시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아름다운 과정들.



전시의 끝자락엔 Vistors Survey가 있었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참 섬세하고 좋다.


전시를 원하는 만큼 여유롭게 관람하지 못한 게 아쉬웠지만, 전시장을 나오며 이 장소에 반드시 다시 오게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다음을 기약하며 기분 좋게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원래 계획은 롯폰기 미드타운에 방문하여 토라야 상점을 구경하고 후지 필름 스퀘어에 방문할 예정이었으나, 일정이 밀리며 후지 필름 스퀘어는 방문하지 못했다. 토라야 상점 또한 도착 시간이 늦어 내부를 여유롭게 구경하진 못했고 비치된 엽서와 인쇄물들을 챙겨 나오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근처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첫째 날 일정을 마무리했다.



토라야 상점에서 가져온 엽서, 훌륭한 종이의 질과 인쇄 퀄리티 그리고 정갈한 디자인이 토라야가 어떤 브랜드인지 말해주고있다.

 


디자이너의 스케치전 인쇄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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