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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림 Aug 28. 2020

셋째 날 - 츠타야 서점

도쿄 디자인 여행 셋째 날



셋째 날 아침이 밝았다. 여행 계획을 세울 때 평소 내 체력이 좋지 않은 것을 감안하여, 하루에 한 장소 가장 오래 머무르고 싶은 곳을 정해두고 그 장소를 중심으로 나머지 동선을 계획했다. 첫째 날은 '21_21 디자인 사이트'를, 둘째 날은 '마츠야 긴자 백화점'을, 셋째 날은 '츠타야 서점 다이칸야마 점'을 메인 스팟으로 정했다.


츠타야 서점의 존재에 대해서는 영웅담처럼 전해 들은 기억이 난다. 몇 년 전 에디토리얼 디자인 수업을 통해 물성을 가진 책을 디자인한다는 것에 매력을 느껴 출판업계에 관련된 기사를 읽었는데, 사양산업이라 불리던 출판산업이 그것도 오프라인 매장의 형태로 일본 내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얼마 후 우연히 '지적 자본론'이라는 책을 접하게 됐고, 책의 저자인 마스다 무네아키가 이 츠타야 서점의 최고경영자라는 것을 알게 됐다.


마스다 무네아키는 '지적 자본론'에서 '모든 사람이 디자이너가 되어야 한다'라고 말한다. 나는 디자이너로서 그의 제안이 정말 마음에 든다. 디자이너의 위상을 높여주기 때문이 아니다. 디자이너에 대한 개념을 확장시켜주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디자이너'는 우리가 흔히들 떠올리는 '시각화를 책임지는 오퍼레이터'가 아닌, '가치'와 '경험'을 창출하는 '커뮤니케이터'인 것이다. 


 https://brunch.co.kr/@yukiepark/1#comment (밑줄  부분은 박유끼 작가님의 글에서 인용했습니다.)


'디자이너는 상황으로부터 단절되어 패키지화된 디자인을 공급하는 직능이 아니다. 만약 그러한 착각이 사회에 퍼져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불식시켜야 한다.'

- 하라 켄야 -



츠타야 서점 다이칸야마 점



됴쿄에서 3박 4일 동안 만난 거리의 풍경 중에서 츠타야 서점에 방문하기 위해 걷던 거리의 풍경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 우선 비가 오지 않는 맑은 날이었으며, 다이칸야마 역에서부터 츠타야 서점까지의 모든 장면이 아름다웠다.


다이칸야마 역에서 츠타야 서점으로 가는 길에 찍은 사진들


길가에 심어진 관목들을 따라가다 보면 나타나는 츠타야 서점


멋진 기획에는 멋진 디자인이 따른다. 츠타야 서점은 하라 켄야가 아트 디렉팅 및 디자인했다. 나는 츠타야의 그래픽시스템이나 사인시스템 보다 Tsutaya의 'T'자를 활용한 건축 외관 디자인이 특히 인상 깊었다. 하라 켄야의 책 '포스터를 훔쳐라'에서 그가 위스키 라벨 디자인을 의뢰받았을 당시 라벨을 디자인하다 보니 라벨이 붙어있는 병으로 관심이 확장돼 병 양산 업체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요구를 하며 (하라 켄야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들을 귀찮게 만들었다는 재미난 일화가 떠올랐다. 그때 당시의 하라 켄야는 젊은 디자이너였다. 자신의 영역을 한정 짓지 않고 넘나드는 그의 기질이 오늘날 츠타야 서점의 건축 디테일을 만들어낸 것 아닐까 생각해 본다.


전공이 '제품디자인'이라도 디자인을 하다 보면, 제품이 디스플레이되는 '공간디자인'이 필요하고 제품을 홍보하기 위한 '광고디자인'도 필요하기 때문에 수많은 교집합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전공 분야는 넘어선 안될 선과 같이 인식되며, 그것이 다소 경직된 디자인을 하게끔 작용하기도 한다. 디자인을 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가이드라인의 기준이 곧 나의 전공이 되어선 안된다는 것이다. 지금 디자인하고 있는 것에 기반해 가이드라인을 세운다면, 조금 더 유연하고 유기적인 디자인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표지판이 없어도, 위 층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다. 보는 이로 하여금 미소 짓게 한다.


서점 내부를 촬영 하다가, 촬영 금지 사인을 확인했다... 직접 촬영한 사진 대신 하라 켄야의 웹사이트에 있는 츠타야 서점 내부 사진을 첨부한다.



츠타야 서점에는 '접객 담당자'라고 불리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손님들에게 책을 추천해준다. 국내에도 이와 같은 서점이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내가 점원으로 일하며 책을 추천해주고 싶기도, 반대 입장에서 추천받아보고 싶기도 하다. 올해 초 편집디자인에 대한 갈증이 생겨 교수님께 관련 도서 추천을 부탁드렸던 경험이 있는데, 내가 몰랐던 훌륭한 책을 알게 되는 것뿐만 아니라, 기존에 읽은 책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해당 분야에 대해 평소 가지고 있었던 의견을 교류하기 까지, 자연스러운 지식의 교류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참 값진 경험이었다. 마스다 무네아키는 이러한 경험과 경험을 통한 가치를 제안하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책을 하나의 '제안 덩어리'라고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서적'이 아닌 '제안'을 판매하고 있는 츠타야 서점, 이처럼 간단한 인식의 변화로 사양산업이라 여겨지던 출판업계에서 엄청난 성공을 이루었다. 하지만 이곳에 방문하는 모든 사람들의 인식을 바꾼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이 간단한 인식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디테일이 츠타야 서점의 곳곳에, 그리고 츠타야 서점과 관련된 나의 모든 경험에 녹아있음을 느낀다. 우선 책을 '제안'으로 보았기 때문에, 책의 분류 기준도 '제안'에 근거하여 만들어진다. (시, 소설, 에세이 등의 분류가 아닌, 요리, 여행, 자동차 등의 기준으로 책을 분류하고 있다.) 휴먼스케일에 맞게 고안된 '편안한' 오프라인 공간은 물론, 다이칸야마 역에서부터 츠타야 서점을 방문하기까지의 풍경과 통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마저도, 인식의 변화를 위한 '커뮤니케이션'의 일종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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