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조하 Nov 15. 2020

백업을 생활화합시다

김조하 탐구생활

데이터를 잃었다.  노트북에 저장된 사진, 글, 영상, 각종 문서가 모두 사라졌다. 7년 전부터 사용했던 노트북은 너무 오래된 나머지 윈도우를 통째로 날려버렸다. 그렇게 내 7년간의 데이터도 모두 날아갔다. 


사실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다. 매번 슬펐다. 나는 그 데이터를 데이터라고 부르는 것이 너무 차갑게 느껴진다. 노트북 데이터 속에 있는 영상은 여행을 가서 찍어놓은 것들이며, 글에는 그때 그 당시 내가 느낀 감정이 담겨있다. 2014년 7월에는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2017년 3월에는 내가 어떤 감정을 배웠는지를 적어 놓은 글들이었다.

왜 백업을 하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내 불찰이다. 언제고 남아있으리라 생각하는 이 단단한 기계, 나는 내 분신이라고 부르는 노트북을 보물 상자라고 생각했나 보다. 핸드폰도 마찬가지다. 언제든지 꺼내 볼 수 있는 저장장치라고 생각했다. 그게 그렇게도 쉽게 리셋될 줄은 몰랐다. 겪고 나서도 금방 리셋의 사실을 까먹고 백업의 의무도 잊었다. 쉽게 저장한 만큼 쉽게 삭제되는 기계에 매번 속아 넘어간다.


몇 년 전에는 지갑 속에 넣고 다니던 사진을 잃어버렸다. 바람이 아주 많이 불던 날, 지갑을 열다가 사진을 떨어뜨렸다. 그런데 그게 하필이면 기찻길로 날아가버렸다. 역무원에게 기찻길에 잠시 들어갈 수 없냐고 물었더니, 그럼 그곳을 잠시 동안 폐쇄해야 한다고 했던가. 한국보다 훨씬 안전에 민감하던 뉴질랜드였기에 그대로 사진을 잃어버리게 두어야 했다. 그때 나는 무척 슬퍼했다. 그깟 사진 한 장이 뭐라고 그게 참 서운했다. 항상 지갑 속에 넣어두던 사진이 사라지니 허전하기까지 했다. 그때 함께 있던 내 친구는 내가 어리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보다 나이가 많던 내 친구들은 그런 추억 따위에 집착하는 것이 나의 어린 순진함 때문이라고 했다. 나이가 들수록 사진보다는 지갑 속의 돈에 신경 쓸 것이라고, 돈이 아닌 사진을 잃어버려 참으로 다행이다 안심할 것이라고 했다. 

그 시점으로부터 5년 전일 때도 똑같은 사건이 있었다. 노래방에 지갑을 두고 왔는데, 그 지갑에 있던 사진이 계속 눈에 밟혔다. 지갑 속에는 3-4만 원이 들어있었던가. 돈보다도, 사진보다도 잊을 수 없었던 것은 지갑이었다. 처음 산 브랜드 지갑이기도 했고, 처음 엄마가 내게 사준 지갑이기도 했으며, 내가 고른 색깔, 오래 써서 정들었던 모양이 꼭 마음에 들었었다. 지금까지도 그 지갑이 문득문득 생각난다.


지금까지 읽어서 알겠지만, 필자는 세상 최고의 털팔이다. 털팔이란, 칠칠치 못하게 이것저것 흘리고 다니며 덜렁대는 그런 인간이다. 내가 그렇다. 여태껏 지갑, 지갑 속 사진, 노트북과 핸드폰의 데이터 등 잃어버린 것이 이것뿐만은 절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런 것들만 기억이 난다. 내 추억을 담고, 기억을 저장한 것, 정을 나누었던 물건이 그립다.

사진을 기찻길에 흘려보냈던 그때 내 친구들의 말은 틀렸다. 내가 어렸기에 추억에 집착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그냥 그런 인간이다. 똑부러지게 내 물건을 챙기고, 기억을 백업해두지 못하는 털팔이. 그러다가 잃어버리고 나서야 지나간 것들을 잡으려고 미련을 남기는 미련쟁이. 돈보다는 사람, 기억, 어릴 적의 나를 더욱 소중하게 여기는 그런 인간이다. 방금 노트북 데이터를 복구할 수 없다는 서비스 센터의 말을 듣고 이렇게 슬픈 것을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물론 언젠가는 사진 한 장 보다 돈을 아까워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다. 얼마의 돈을 지불하든, 내 데이터를 복구시킬 수 있다면 나는 할 것이다. 어려서가 아니라, (물론 어리지만) 순진해서가 아니라, 나는 추억이 소중하다. 기억을 먹고 산다. 언제든 옛날의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꺼내어 볼 수 있는 데이터가 필요하다. 그래서 돈을 잃는 것보다 사진을 잃는 것이 슬프고, 기계가 고장 나는 것보다 기계에 담긴 데이터가 고장 난 것이 아쉽다. 켜켜이 쌓인 내 시간들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7년간의 일기, 사진, 영상을 타의로 버리며

써놓은 이야기와 글을 모두 잃어버렸습니다. 현재 일을 하느라 시간이 많이 나지 않은 데다가 그동안 써왔던 글도 없어져 참으로 난처한 상태입니다. 마감 노동자로 일하고 있는지라.. 마감이 끝난 후에 다시 새로운 글을 써보도록 하지요. 저의 근황을 궁금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오랜만에 들어온 브런치에 구독자와 조회수가 늘어난 것을 보고 손톱만 한 책임감을 가져봅니다. 


작가의 이전글 네가 어떤 모습이든 사랑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