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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조하 Dec 13. 2020

아 그게 우울증이구나

#자취방연대기

예고 진학을 희망할 때는 4시간 이상을 연습실에 틀어박혀 있었다. 레슨은 한 시간 정도. 그 후 집에 돌아와 너무 늦지 않으면 최소 두 시간은 피아노를 쳤다. 그게 질려버렸는지, 몇 개월 버티지 못하고 그만둬 버린다. '피아니스트야 아니야'와 같은 흑백논리는 고등학교에 입학하자 '인문계야 아니야'로 바뀌었다. 


공부에 매진하라는 부모님의 뜻은 곧, 흑백논리에 맞춰 공부 외의 것은 모조리 하지 않는 것이었다. 해서 피아노 학원에 더 이상 가지 않았는데 참지 못하고 여름방학 때 다시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 봄학기 때, 엄마에게 제발 여름 방학 잠깐만이라도 다니게 해달라고 부탁했었다. 피아노 연주를 정말 좋아해서 그렇게 간절했던 것이 아니었다. 당시 내 인생의 절반 이상을 습관처럼 행했던 피아노가 순간 사라지자 본능적인 위협을 느낀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피아노가 유일한 내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었던 것은 최근에야 깨달았으니 당시에는 그저 습관을 놓을 수 없었던 것이겠지. 하지만 그것도 마지막 피아노 곡 연습이었다. 쇼팽 에뛰드 겨울바람을 날이 선 기분으로 연주했다. 짧은 기간이 지나고 야자와 학생회 활동으로 바빠진 나는 피아노를 등한시했다. 


나는 굉장한 성공지향적 인간이다. 성취, 성공, 승진, 발전. 이런 단어에 환장을 하는 인간으로 타고 태어났다. 물론 그에 맞게 엄청난 노력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이상과 목표가 높고, 한 번 정한 꿈을 따라가려 한다. 그러나 고등학교 3학년 입시 준비 직전 내 목표가 좌절되었던 일이 있었다. 2학년 전교 부회장이었던 나는, 학생회 엘리트 코스랄까(?) 1학년장을 거쳐 활동 중이었고 당연히 3학년이 되면 전교 회장이 될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런데 그 일이 좌절되는 바람에 큰 충격을 받았다. 동시에 고3, 아무것도 안 해도 스트레스를 받는 시기에 접어들었다. 고3의 나는 꽤나 미쳐 있었다. 공부에 미쳐있다면 좋았겠건만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저 제정신이 아니었다. 원래도 둥글둥글한 성격이 아니었지만, 더욱 날카로워졌고 더욱 이상해졌다. 

수업시간에는 갑자기 울고 싶어 화장실에 갔다. 화장실 칸에 틀어박혀 울다가 아무렇지 않게 나오곤 했다. 자율학습을 할 때는 생각에 잡아먹혔다. 잠깐 정신을 놓고 있으면 야자시간 끝나는 종이 울렸으니, 내가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생각에 내가 잡아먹힌 것이 확실하다. 때로는 담요를 뒤집어쓰고 자는 척을 했는데, 생각에 잡아 먹히다 울기 위함이었다.

독서실을 가고 싶지 않았다. 한두 달간 야자를 마치고 독서실을 가던 때가 있었는데, 독서실처럼 사방이 가로막히고 좁은 공간에 있으면 이상한 생각이 들었었다. 매번 울었고, 매번 사라지고 싶었다.


공부에 집중을 못하니 시간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잠을 줄이기 시작했다. 1년간 내 수면 자세는 65도 기울어진 상태라고 할까. 똑바로 누우면 깊은 잠에 빠져들고, 그러면 너무 많이 자게 될까 봐 큰 베개를 등허리에 받치고 반누움 상태로 잠을 청했다. 물론 일어날 때는 완벽히 누워있었지만.. 그런 자세 때문이었는지 수면장애가 있었는데, 이 사실 또한 얼마 전에 그게 수면장애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시도 때도 없이 가위에 눌렸다. 가위란 정신은 잠에서 깨려는데 몸이 깨질 않아 몸이 움직이지 않는 현상인데, 그때는 1일 1가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똑바로 누워서 자려하지 않았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또 다른 수면장애로는 악몽이 현실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어릴 적부터 악몽을 자주 꿔서 한약을 마시던 허약 인간이었고 지금도 악몽을 자주 꾸는 편이지만, 고등학생 때부터 이십 대 초반까지는 그 악몽이 현실까지 이어졌다. 예를 들면 꿈에서 미친 듯이 운다. 꿈에서 우는 정도는 현실에서 우는 정도와 차원이 다르다. 정말 숨이 꺼질 정도로 꺽꺽대며 우는데, 현실에서도 내가 꺽꺽댄다. 그러다 보면 내 숨에 못 이기고 놀라서 깬다. 깨고 한참을 엉엉 울다가 과호흡이 오려한다. 그렇게 숨을 고르고 멍을 때리다 보면 또 어이가 없어서 웃긴 거다. 참나 뭘 꿈에서 우는걸 진짜 울고 있냐. 일명 '현타'(현실자각타임)를 느끼곤 했다. 그렇게 웃음으로 넘겼던 그 일이 웃음으로 넘길 일이 아니었다. 수면장애의 일종이겠구나, 아 우울증의 일부인가 라고 깨달은 것도 이미 그 시기가 완전히 지나고 난 후다.


이렇게나 이상하고 열심히 살았지만 수능 성적이 좋지도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였던 것 같다. 울고 이상하고 화내고 스스로를 탓하느라 공부를 하지 않았으니. 나는 원래 고3이 그런 건 줄로만 알았다. 와 정말 힘들다더니, 이렇게나 힘들고 이상해지는 시기구나 라고 생각했다. 지금 같이 평온한 정신을 갖게 되고 그 우울한 상태를 지나고 나니 그저 고3의 이상증세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후회한다. 그때 피아노를 계속 쳤다면 그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을 텐데. 내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 창구였는데.

피아노 연주를 할 때면, 손에 익은 곡을 치며 생각을 정리했었다. 엄마랑 싸운 날에는 엄마를, 친구와 틀어진 날에는 친구를. 그러다 손이 막히는 부분에 다다르면 그 부분을 죽어라고 연습한다. 그러다 보면 잡생각이 정리되고 사라진다. 그 과정을 매일같이 해왔던 내 삶에 피아노가 사라졌으니 엄청난 스트레스를 마음속에 꽉 안고 있었던 것이다. 스트레스에 휩싸이면서도 피아노를 멀리 했던 그때는 피아노가 해소법인 줄 몰랐다. 참 모르는 게 많았던 어린아이였다.


예전의 나를 떠올리며 고작 '그게 우울증이었구나'라고 생각하는 지금이 아주 씁쓸하고 안타깝다. 그때는 몰랐던 것들을 차차 알게 되니 당시의 내가 안쓰럽다. 당시의 나에게 해결법을 전달해 줄 수 없으니.

불과 몇 년 전까지 나는 고3부터 시작한 병을 지독하게 앓았다. 그러다 해외 생활을 하고, 문화생활을 즐기고, 노동을 하고 다시 피아노 연습실을 찾았다. 내 탈출구가 피아노였구나 하는 깨달음도 얻었다. 나는 이제 피아노 없이도 나는 잘 살아간다. 생각에 잡아 먹히지 않으려고 공연을 보고 글을 쓰고 바쁘게 살고 있다. 


너무 오랫동안 멀리했더니, 이제 탈출구 역할도 잃어버린 피아노는 내 어린 시절을 달랬던 추억이 되었다. 대신 글을 쓴다. 우울증세가 가장 처절하게 바닥을 긁고 있을 때 글을 쓰기 시작했으니, 피아노를 대신할 속풀이 법을 본능적으로 찾았던 것 같다. 마지못해 시작한 글쓰기가 이제는 내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피아노를 치지 않아서 속앓이를 하는 나이는 지났다는 말이다. 내 속풀이를 책임지는 역할은 더 이상 못할지라도, 어린 나의 얘기를 들어준 피아노가 참 고맙다. 때로는 조언도 해주며 나의 청소년기를 함께 보내준, 소중한 친구 피아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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