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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현금을 챙기는 이유

우연히 만나는 '최고의 빵'은 못 참지.

by 떼오 Theo
파리에서 꼭 하고 싶었던 경험 중 하나는 '아침에 갓 나온 빵'을 먹는 것이다.

물론 빵집에서는 계속해서 빵을 굽기 때문에 언제 가도 맛있는 빵을 먹을 수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빵이라고 하는 것은(평소에 빵을 즐겨 먹지도 않으면서 파리에 오니 전문가인양 말하게 되는 나...) 해가 뜨기 전 고요한 아침에(특히 차가운 공기가 가득한 겨울아침이라면 맛의 경험은 배가 된다) 하루의 시작으로 먹는 것이야 말로 '갓 나온 빵'이라고 말할 수 있고, 이것이야 말로 '최고의 빵'이라고 생각한다.


IMG_0117.JPG 파리에서 맛보는 빵으로 가끔 '사치스러움'도 즐길 수 있다. 이게 행복이지.


이런 일명 '최고의 빵'을 먹기 위해서는 적어도 아침 7시에는 빵집에 가야 한다. 대부분의 빵집은 그전에 문을 연다. '그럼 7시 전에는 일어나야지 최고의 빵을 먹을 수 있겠네... 그냥 낮에 사 먹어야 겠...' 그 순간 아내가 한마디 던진다.


'아침에 갓 나온 따뜻한 빵 먹고 싶다.'


이 말 한마디는 나에게 '최고의 빵'을 먹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평소에는 8시 정도에 일어나지만 이날은 알람을 6시 30분에 맞추고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알람소리에 잠에서 깬 나는 핸드폰을 확인했다. 그때 오늘이 주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미리 저장해 둔 동네 빵집으로 몸을 이끌었다. 아니 이미 빵냄새에 홀린 듯 몸이 이끌렸다고 하는 게 맞겠다.


IMG_1253.JPG 사실 내가 생각하는 빵이라고 함은 '파티셰히'의 케이크류 보다 '불렁제히'의 바게트이다.


새벽에 내려앉은 축축한 물기가 햇빛에 채 마르기 전 고요한 주말 아침, 적막을 깨는 것은 나의 발자국 소리뿐이라고 생각했지만 빵집과 가까워질수록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주말이지만 아침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로 불렁제히(Boulangerie)라고 하는 프랑스 빵집은 사람들이 붐비었다. 일명 관광지화 되어버린 빵집을 피해 동네빵집으로 왔지만 프랑스사람들의 빵에 대한 사랑은 대단했다. 아니, 사랑보다는 그냥 일상이라 이게 사랑인지도 당사자들은 모를지도.


갓 구워진 맛있는 빵을 제공하는 빵집 주인은 아침인사와 함께 손님들과 간단한 근황을 나누고 있는 듯 보이지만, 손은 아주 분주하다. 눈은 손님들을 향해있고. 빵은 손을 향해있다.


IMG_0351.JPG 화려한 빵들만이 사진의 욕구를 불러일으키지만, 파리지앵들의 삶은 약 1.6유로의 바게트에 담겨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Je vais prendre une baguette tradition s'il vous plaît."

"전통바게트 하나 주세요."


바게트 하나의 가격은 2유로가 채 안 되는 1.60유로였다. 저렴한 가격과 향긋한 버터향 그리고 바게트를 가슴에 품자마자 따뜻한 온기가 가득했다. 따뜻한 빵이 식지 않게 가슴속에 품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문득 깨달았다. '이 빵은 지금 바로 먹어야 제 맛인데.' 결국 빵집으로 다시 돌아가 크루아상 하나를 추가로 구입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다 먹어치웠다. 핸드폰화면으로 입가 주변에 묻은 빵가루를 깨끗하게 털어낸 뒤에 완전 범죄인양 뿌듯하게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따뜻하게 사온 바게트를 아내에게 자랑하며 말했다.

한껏 고양된 목소리로 (이것은 칭찬을 원할 때 나오는 목소리의 음이다)


"아침부터 빵집에 사람이 너무 많더라. 그래도 기다려서 맛있는 바게트 사 왔어. 바로 먹어보자!"


IMG_6407.HEIC 하지만 뭐가 어쨌든 빵은 맛있다.


아내는 이런 나를 보고

"나를 위해 바게트 말고 다른 빵도 산 거야? 맛있겠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던가...!


알고 보니 카드내역이 아내의 핸드폰으로 발송이 된 상태였고, 집에 오면서 크루아상은 다 먹었다고 솔직하게 고백하고 또 한소리를 듣고야 말았다.


앞으로 이런 일을 피하기 위해서 주머니 속에 현금을 조금씩 가지고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연히 만나는 '최고의 빵'은 참을 수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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