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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공원의 힘

공간의 유무보다는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중요하다.

by 떼오 Theo

마레지구 쪽을 둘러보고 집에 갈 시간이 되었다. 오늘은 날씨가 괜찮아서 교통비도 아낄 겸 지하철을 타지 말고 집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보통 같으면 센강변을 따라서 쭉 가다가 집 근처에서 골목하나만 꺾어 들어가면 되지만 오늘따라 구글맵은 골목 구석구석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그러다 보니 평소에는 가보지 못한 골목을 걸으면서 새로운 것을 많이 볼 수 있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길 따라 벽이 이어지더니 어느 문으로 이어지는 공간이었다. 궁금해서 문을 따라 들어가 보니 숨겨진 공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공원은 아는 사람들만 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걸 아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은 듯 벤치에는 여러 사람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햇빛을 즐기고 있었다.





파리는 서울의 1/6 밖에 되지 않은데 인구밀도는 서울보다 훨씬 높다. 이 사실은 적잖이 우리를 놀라게 만든다. 서울에서는 느낄 수 없는 여유로움을 파리에서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개인적인 나의 생각은 파리에는 작은 공원과 정원들이 정말 많기 때문에 인구밀도가 서울보다 높음에도 불구하고 더 여유롭게 느껴지는 게 아닐까 싶다. 서울에서 경험한 상식선으로 '여기는 공원이 있을 곳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드는 곳에도 공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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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서울과 다른 점이라면, 공원이 많은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파리 사람들은 이 공원들을 누구보다

잘 활용하기 때문에 한결 더 여유로운 도시분위기가 연출된다. 눈치를 보지 않고 각자의 방식대로 편안하게 공원에서 휴식을 즐긴다. 홀로 벤치에서 책을 읽기도 하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반려견과 뛰어놀기도 하면서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즐긴다.


우리 일상에서 공원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특히 도심 속 공원은 더 그러하다. 잠시나마 온 감각을 자연에 내맡기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푸른 풀과 나무들, 지저귀는 새소리, 흐르는 물소리,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에 휘날리는 머리카락. 이런 경험들은 우리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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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리는 집에 도착할 때까지 두세 곳의 공원을 더 지나친다. 집에서 가까운 공원일수록 사람들이 더 많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일을 마치고 공원에 쉬러 온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뜻이다. 파리사람들에게 공원은 잠시 멈춰서 하루를 돌아보는 소중한 공간이다.




우리나라 동네에도 작은 공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공원을 활용했으면 좋겠다. 우리는 공원에서 쉬어갈 자격이 충분하고, 눈치 볼 필요가 없다. 아니, 조금 쉬어야 한다! 또한 그 공간을 즐길 준비가 되어있다. 우리나라 사람들만큼 문화생활에 적극적인 사람들도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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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단순히 공원의 수만 늘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공원을 즐길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공원만 만들게 되면 그곳은 죽어가는 공간이 되어버리고 만다. 공간은 사용될 때 더 빛을 바라고, 가치 있는 곳이 된다.


만약 집 앞에 공원이 있다면 그곳은 축복받은 공간이다. 그러니 당장 그 공원을 활용하자! 잠시나마 온 감각을 자연에 맡기고 여유를 즐겨보자! 누군가가 방해하고 있다는 생각은 싹 버리고,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소중하게 보살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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