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26일차) 병가를 보충하여 원고 작성함
얼마 전, 하루 외근을 나갔다. 코로나에 걸렸던 남자친구를 일주일 정도 못 본 것을 시작으로 거의 한달 동안 못 봤다. 남자친구가 나아질 때쯤 남자친구의 부모님께서도 감염되었고, 내 아버지도 감염되는 바람에 격리를 계속 해야했다. 괜찮아질 때까지 칩거하느라 거의 한 달 만에 만나는 남자친구는 많이 수척해져 있었다. 아픈 와중에도 일이 바빴던 탓이다. 어쨌든 봄이고 꽃이 피었으니, 꽃구경 갈만한 좋은 곳을 알고 있다고 해서 시간을 내서 도시 근교의 꽃놀이 스팟으로 떠났다.
꽃구경도 좀 하고, 사진도 양껏 찍었다. 다음에 꼭 한번 가보고 싶었던 카페에 가서 커피를 시켜먹으며 그동안 있었던 이러저러한 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와중에도 남자친구는 중간중간 업무전화를 받으며 업무를 보고 있었다. 전 직장 다닐 때 일하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왠지 짠해졌다. 어쨌거나 일은 힘들지만 본인이 좋아서 하는 거라고 덤덤하게 말하는 남자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객관적으로 보면 남자친구가 하는 일이 소위 말하는 '돈이 되는' 일은 아니다. 안정적이라고 하기도 아직은 미흡하다. 예술 계열의 일이 다 그러하듯이 말이다. 나 역시 분야는 다르지만 큰 틀에서는 예술 계열의 일을 하고 있기에 공감가는 부분이 많다. 주변에서는 얼른 자리 잡아야지, 결혼도 해야지, 안정적인 공무원이 최고다, 등의 말을 한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 명쾌한 결론을 내리지는 못하고 있다. 하긴, 인생 2회차가 아닌 이상 누구라고 답을 알겠는가?
먹고 살려고 직장에서 아등바등 버틴 나도 결국엔 원점으로 돌아왔다. 내 경험 때문인지 나는 남자친구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에 더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다. 돈이 안 되는 문제는 차치하고, '일'이 하기 싫다는 느낌 없이 자신의 분야에서 이것저것 도전할 기회가 지금일수록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설령 나중에는 다른 길을 찾아 나서야 할지라도, 적어도 자신이 하고 싶은 분야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경험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면 좋겠다.
유튜브를 보다보면 내 알고리즘이 여러가지 주제로 영상을 물어온다. 요즘 내가 돈 문제로 고민이 많아서 그런지 'MZ세대의 경제'와 관련된 온갖 영상들을 띄운다. 가뜩이나 골치 아픈 와중에 영상까지 보면 더 심경이 복잡해질 것이 불 보듯 뻔했지만, 알고리즘의 적극적인 움직임을 결국 받아들이기로 했다. 영상을 본 내 심경은, 역시 불 보듯 뻔했다.
'MZ세대'라는 프레임이 유행이다. 한 세대를 이르는 말 치고는 범위가 너무 큰 것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세상이 그렇게 규정한 나름대로의 이유를 들어봤다. 요즘 젊은이인 'MZ세대'에 대한 설명은 대략 이렇다. 회사에 더이상 충성하지 않는다. 부당함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고 정당한 기준점을 쟁취한다. 타협이 되지 않으면 너무나도 쉽게 퇴사한다. 자신만의 일에 도전하며 1인 기업이 되는 일에 주저함이 없다 등. 무슨 MZ세대를 물불 가리지 않는 신세대 불도저처럼 묘사해놨던데, 공감되는 부분도 있고 아닌 부분도 있었다.
회사에 더이상 맹목적으로 충성하지 않는 이유는 회사가 더이상 내 삶을 보장해주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몇십 년 동안 회사에 충성했더니 정년퇴직이 다가오자 여기저기 출장으로 뺑뺑이를 돌린다는 둥, 보복성 인사를 단행했다는 둥, 기사만 조금 들춰봐도 회사에 내 모든 것을 쏟지 않을 이유는 많다. 우리 아버지네 세대가 그런 부당함을 겪는 걸 보고 느끼고 자랐기 때문에 더 그렇지 않을까.
또한 부당함에 대한 표현과 정당한 기준점에 대한 쟁취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확실히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는 지키는 게 맞다고 본다. 권리는 스스로 지키기 않으면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타협되지 않으면 쉽게 퇴사한다는 것도, 어디까지나 '타협이 되지 않을 때'를 말한다. 그런데 세상은 '쉽게 퇴사한다'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한다. 그 전에 MZ세대의 요구와 타협을 제대로 이루는 세상인지부터 묻고 싶다.
오늘날의 먹고사니즘은 어떤 방면에서는 복잡하다. 살아남기 위해서 무슨 일이든 마다 않았던 세대보단 조금 더 복잡한 양상을 띄는 것이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하고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보다 다양해졌지만, 그만큼 온갖 정보들이 판을 친다. 진짜 괜찮은 정보인지 아니면 잘못된 정보인지 판가름 하는 것도 개인의 몫이다. 또한 어떤 일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해서 심도 있게 고민하기 시작한 세대다. 평생직장의 개념은 사라지고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일에 변주를 줘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자신만의 일을 찾아나서고 1인 기업이 되길 마다하지 않는 경향도 이런 흐름 때문이 아닐까 한다.
되게 장황하게 써놨지만, 사실은 나도 잘 모르겠다. 태어나서 살다보니 MZ세대에 속하게 된 내가 느낀 점은 이렇다. 세계가 복잡다양하고 먹고사니즘이 다채로워진 만큼 나처럼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들도 꽤 있으리라 생각한다. 내 동료들 중에서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분들이 꽤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공에 대한 각자의 생각이 다양했던 것처럼.
(*검정치마 <Antifreez>의 가사 중에서)
자신의 삶이 소중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겉으로 봤을 땐 뭐 하나 제대로 이룬 것 없이 고향집에 돌아온 패잔병 같은 나라도, 내 인생이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단순하게 지금 놓인 상황만으로만 내 인생을 판단내리기엔 아직 갈 길이 멀었고 해야 할 일도 많다. 돈이라는 기준 하나만으로 판단받기에 아직 보여줄 것도 많고. 그러니까 어쩔 수 없이 주눅드는 순간이 오더라도, 정신 차리고 내 할 일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공황장애와 우울증이 매우 심할 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왜 이 모양일까?' 열심히 한다고 최선을 다했는데 결과물은 항상 이도 저도 아닌 모양이고, 주머니에 밥 한끼 사먹을 돈도 없는데 투자를 빌미로 지불해야 하는 값은 산 넘어 산이고, 나름대로 최선의 가성비를 계산해서 다다른 길 끝엔 왜 또 다른 절벽인지, 나는 왜 끝도 안 보이는 바닥을 쳐다보며 심장이 떨리는지, 결국 저 아래로 결국엔 추락해야만 하는지. 당장 고개만 돌려도 끊어진 길 말고 다른 길이 있는데 내 앞에 놓인 벼랑 끝만 쳐다보고선 주저 앉아 버린 것이다.
가고 싶지 않은 길이면, 다른 길로 가보아도 되는 건데. 비록 아무도 없이 혼자 걸어야 할지도 모르지만,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지도 모르지만, 괜찮은 길이라고 믿었던 길도 결국 끊어져 있는데, 다른 길로 좀 돌아가는 거라고 뭐 어떻겠나. 괴로워하는 나를 붙잡고 친구들은 말했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내가 가고 싶은 곳에 제대로 도착할 수 있다면, 좀 돌아서 가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래, 어쩔 수 없다. 내가 이런 사람이라면. 내가 이 모양인 게 문제가 아니다. 나는 이모양도 아니고 저모양도 아니다. 나는 나다. 나를 부정하기 때문에 모든 게 부정해보일 뿐이다. 나를 인정하고 나에게 맞는 삶을 살면 된다.
모르겠다고 고개 젓지 말고,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하자. 어차피 정답은 없다, 정답 비슷한 걸 정해놓은 이 거대한 세상이 있을 뿐. 그렇지만 그 속에서라도 난, 뭐라도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