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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Oct 24. 2021

자세

예비예비신부 6

신학교에 탈락한 데에 납득하기 힘들어했던 이유는 꽤 여러 가지가 있었다. 지금 이야기하려는 것은 다른 것보다도 사제로서의 삶의 지향점에 관한 것이다. 성당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가족들에게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을 너무 오래 들었다. 10년 간 계속해서 성당에 드나들며 보고 싶지 않은 모습들을 너무 많이 봤다. 법이 있어도 지키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서약도 마찬가지였다.


천주교에 뿌리를 둔 이상 성직자가 지켜야 하는 정신은 순명과 청빈, 정결로 크게 세 가지가 있다. 말 그대로 예수님의 가난을 따라 살며 교구장 주교의 합당한 명에 순종하고 평생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는 것이다. 여기서 더 추가되기도 하고 빠지기도 하면서 여러 수도회의 정신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교구 사제는 어떨까? 신학생이 서품을 받고 사제가 될 때 두 가지 서약을 한다. 순명 서약과 독신 서약. 그러나 청빈 서약은 없다. 교구 사제의 특성상 사회를 포용하고 복음을 전파하고 봉사함으로써 신의 현존을 구체적으로 보이는 일이 주된 임무이기 때문에 거기에 필요한 사유재산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사제 서품을 받고 나면, 교구에서 주거와 식사 문제를 해결해 준다. 게다가 다달이 주는 공무원급 급여도 있다. 이미 부족할 것이 없는데, 신자들은 신부님을 어찌나 좋아하는지 개인적으로 이것저것 챙겨주기까지 한다. 있는 걸 사용하는 게, 주는 걸 받는 게 전혀 문제가 되진 않는다. 여유에서 나오는 안정감과 베풂이 있다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사제라면 그런 최소한의 생활이 충족되고 나서는 어려운 사람들에게 향해야 하지 않은가. 서약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정신마저 잊은 사제들이 너무나 많았다. 신차를 뽑아 타고 호의호식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골프 치러 다니고, 비싼 술을 사 마시는 사람들도 있었다.


의아해지는 점이 하나 있다. 가끔 연락하는 수사님이 있는데, 수도원에서 자체 노동으로 벌어낸 돈 삼사십만 원으로 한 달을 지낸다. 청빈 정신이 예수님의 가난을 일컫는 이유는, 예수님이 사람들을 위해 가장 낮은 자리까지 내려갔기 때문이다. 바닥까지 내려가 보지 않은 부족한 것 없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외면받고 소외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마음을 쓸 수 있을까.


재밌는 점이 하나 더 있다. 수도원에서도 비슷한 서원을 하지만 용어가 다른 것이 있다. 사제는 독신 서약을, 수도자는 정결 서원을 한다는 것이다. 단어 그대로 풀어보면, 수도자들에게는 남녀관계 자체가 서원을 깨는 것이지만, 사제들은 혼인만 하지 않으면 서약을 깨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차이에서 결국 성직자들은 부적절한 남녀관계가 있어도 사제직을 유지할 수 있다는 미묘한 뉘앙스를 풍기게 되는데, 실제로도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성추문이 불거진 사제에게도 정직만 있을 뿐 해고가 없다. 인사발령 때마다 폭탄 돌리기 급의 정직 처분이 줄을 이루고, 그들은 여전히 교구에서 먹여주고 재워주기 때문에 잘 먹고 잘 산다. 순간순간의 욕망을 절제하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몸 가는 대로 산다면 하느님의 도구가 아니라 교구 사제라는 철밥통 직업에 종사하는 정규직이 아닐까.


물이 고이면 썩는 법이라는 것 정도는 잘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두 고여서 썩은 건 아니었다. 성소 주일에 함께 했던 '같은 처지의 예비 신학생'이 그렇다. 집에 가기 전에 밥 먹고 헤어지자는 말에 같이 나가는 중이었다. 어떤 사과 장수가 우리에게 느닷없이 사과를 하나씩 주었다. 당장 사과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고 식당에 가는 중이었기 때문에 난감해서 거절했지만, 이윽고 손에 쥐여주는데 그 마음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너무나 감사하게 받았는데, 예상치 못한 욕설이 들려와 충격을 받았다. 뭐가 그렇게 화가 났던 건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같이 있던 예비 신학생에게는 분노를 주체할 수가 없는 일이었는지, 지금이라도 가서 사과 장수에게 던질까 어쩔까 씩씩거리는 그에게 아무 말도 해줄 수 없었다. 그러더니 쓰레기통에 사과를 집어던졌다. 밥을 다 먹고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사과 장수를 욕하는 그에게 너무나 심적 거리감을 느꼈다. 그러나 교구장 추천 전형으로 탈락하던 해, 그는 합격했다.


누군가를 욕보이고 싶은 마음은 없다. 내가 그들보다 더 낫다고 말하기엔 자신도 없다. 다만 나는 10년이라는 시간을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사제가 정말 사람들을 위하는 사제인지, 하느님이 인간을 사랑하는 만큼 나도 모두를 허물없이 사랑하고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베풀 수 있는지' 등을 생각하며 보내왔다. 여전히 내가 쥔 것들을 놓지 못해 괴로웠고, 상대에 대한 판단에 자꾸만 감정이 개입하는 내가 한참 부족한 것도 알았다. 단 한 번도 내가 사제에 적합하다는 오만한 생각은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TO게임에서 선택받아 파이를 차지하게 된 것이 얼마나 소중한 기회를 얻은 건지 모르는 사람들의 행보는 계속해서 나를 탄식하게 만들었다. 숨 막히고 살아내기 바쁜 세상에서 사랑을 전하고 어깨를 내어줘야 할 사람들의 자리는 너무나 한정되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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