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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Oct 24. 2021

연인

예비예비신부 7

경험 부족이라는 이유로 탈락하게 되었을 때 나는 재미없게 성실히 만 살아온 지난 세월을 안타까워했는데, 그중 제일 큰 부분은 이성 교제였다. 스스로가 원체 유혹에 약한 타입인 것을 잘 알아서, 사랑이 주는 달콤함과 안정감을 모른 채로 신학교에 들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학창 시절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연애를 한 적이 없었다. 못 한 게 아니라 안 했던 것이다. 내 나름의 결연하고 비장한 선택이었다. 나는 신학교에 갈 사람이니까, 신부가 될 사람이니까 세속에 미련을 갖게 하는 것들을 최대한 줄이고 싶었다.


물론 유혹의 순간은 종종 있었다. 상대가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때나 상대가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여긴다는 확신이 들 때, 심장이 진정되지 않는 상대를 만날 때. 그래서 사랑을 나누고 싶었고 영혼의 동반자를 찾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실은 유혹의 연속인 삶이었다. 그러나 목표만큼이나 끝이 확실할 관계를 만들기에는 상대방에게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매번 마음을 접고 접고 또 접어왔다.


그런 내게 유혹을 이기지 못할 것 같아서, 경험 부족이라서 탈락이라고 한다. 속에서 뭔가가 끓고 목 끝까지 차오르는 말들이 많았지만, 어쩌겠는가. 합, 불합을 당락 짓는 당사자들이 그렇게 느낀다는데. 한순간에 대상을 잃은 분노는 원동력이 되어 나를 연애로 이끌었다. 사회로 나가려고 마음먹었던 때였다. 나만큼 구겨진 사람을 만났다. 나처럼 길을 잃고 나 같이 오랜 시간 힘들어했던 사람이었다. 나는 무언가에 쫓기듯이, 혹은 누군가에게 증명하려는 듯이 열심히 사랑을 나눴다.


시간이 흐르고 춘천으로 나의 길이 열렸을 때, 그 사람에게 신학교를 한 번 더 준비해 보려고 한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우리가 만나기 전의 내 이야기는 두어 차례 말해서 알고 있었지만 모두 다 '당장은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다'는 결론으로 끝났었기에, 제대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을 거라는 판단이 있었다. 아무래도 이대로 포기하는 건 내게 너무 좋지 않을 것 같으니 정리를 하더라도 제대로, 잘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그러자 내게 같이 있어주겠다고 한다.


하지만 연인 관계라는 건 항상 논리적이지도, 머리를 따르지도 않는 법이었다. 처음에 춘천에 내려갈 때는 같이 여행 계획을 세웠다. 모임이 끝나고 어디에서 만나 어디서 묵을지, 뭘 먹고 어떤 걸 구경할지. 여행을 하면서 예신 모임이 우리 관계에 주는 영향을 덜어내려고 애썼다. 어떤 관계든 끝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우리는 끝이 좀 더 명확하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상대방은 불안해했다. 예민해졌고 속상해했고 조바심을 냈다. 사소한 문제로 마찰이 생길 때면, 내게 화살을 돌렸다. "너 어차피 나 버릴 거잖아."


마법의 문장은 동등한 연인을 순식간에 피해자와 가해자로, 때로는 악인과 더 한 악인으로, 가끔은 비련의 영화 속 주인공으로 만들곤 했다. 그러나 듣는 입장에서는 한결같이 가슴이 한 뭉텅이씩 파이는 아픈 말이었다. 그 사람이라고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머리로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감정이라는 게 곁에 남은 자신을 스스로 옥죄기 시작했을 것이다. 나를 탓하고 싶진 않았을 것이다. 그저 답답한 마음을 어떻게든 풀어내려는 발버둥이었을 것이다. 원인을 굳이 따지자면, 남겨지는 입장을 충분히 배려하지 못했던 연애 초보의 패착이었을 뿐이다. 가을에 만난 우리는 그다음 가을을 같이 맞이하지 못한 채, 신학교 때문이 아닌 서로의 문제로 결국 이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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