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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Oct 24. 2021

용서

예비예비신부 8

평생을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며 살았지만, 아직도 많이 부족하구나 깨닫는 순간들이 있다. 나는 누군가의 지적이나 어떤 일에 대한 결과에 대한 것보다는, 스스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인지하게 될 때 주로 그랬다.


천주교에서는 용서를 아주 높게 산다. 어찌나 중요하게 여기는지는 원수를 사랑하라거나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하라는 말에서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진심으로 용서하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것 같다 느끼던 때가 있었다. 누구나 마음속에 원망 하나 둘쯤은 품고 살지 않을까 생각하며 한동안 방치하기도 했으나, 똬리 틀고 들어앉은 불청객은 종종 심사를 뒤틀리게 만들기도 했다.


우리 부모님은 아주 많은 걸 희생하며 살아오신 분들이었다. 당신들이 옳다 믿는 가치들을 지키기 위해서 욕심을 덜어내고 사치를 줄이고 그 나머지는 우리에게 전부 주며 살아온 분들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조부를 혼자 늙어가게 놔둘 만큼 모질지 못했던 부모님은 모시고 살기로 했다. 우리의 외할아버지는 누구보다 화려하고 신사적인 분이었다. 집 밖에서만 말이다. 어떠한 경제활동 없이 국회의원을 하겠다고 사람들을 접대하느라 드는 어마어마한 비용들은 모두 조그만 옷 가게를 하던 가엾은 할머니의 몫이었다. 그거로도 부족해 보험도 모조리 해지해서 돈을 받아내 금세 탕진했다고 한다.


국회의원이 못된 채로 나이 든 할아버지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노인정으로 사교 파티를 즐기러 다니며 평생을 영광의 순간으로 사셨다. 그러다 종종 다쳐서 돌아올 때면 감당이 안 되는 병원비와 적반하장인 태도로 우리 가족을 얼룩지게 만들었다. 평생 그렇게 살 것 같았던 할아버지는 갑자기 세상을 떠났는데, 사망자 재산조회를 하면서 숨겨진 빚이 드러났다. 젊었을 적에 진 몇 백만 원의 카드 빚은 할아버지와 함께 나이를 먹어온 만큼 억 단위가 되어 그의 빈자리를 당당하게 차지했다. 우리 순진한 할아버지는 도망치고 버티다가 죽고 나면 없어지는 줄 아셨는지 그 사실을 감쪽같이 숨기고 살아오셨던 것이다.


당신이 서운하게 한 것들, 힘들게 한 것들 모두 용서할 테니 편하게 가시라고 떠나보낸 우리 엄마는 장례식이 끝나고 얼마 안 되어 다시 한번 무너졌다. 건강과 가족을 위해 금연했던 우리 아빠는 말없이 담배만 줄창 폈다. 다행히도 한정승인이라는 법적 구제 제도 덕분에 그 빚을 몽땅 떠안는 불행은 피할 수 있었으나, 몇 개월 동안 우리 가족은 피가 말라갔다. 밤이면 밤마다 남편과 자식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숨죽여 울었던 엄마나 한동안 소화불량에 먹는 족족 탈 나서 야위었던 아빠를 생각하면 나는 이미 죽고 없는 할아버지를 용서할 수 없었다.


할아버지를 떠올릴 때 부족하다는 것을 제일 느낀다. 평생을 남에게 잊히지 않는 고통과 아픔을 주고 용서를 구하지도 않은 채 떠나버린 사람을 일흔일곱 번까지도 용서하라니. 머리로도, 가슴으로도 용서가 안 되는 나 자신이 미웠고 평생 상처만 받은 사람 보고 먼저 손을 내밀라고 말하는 예수님도 미웠다.


'일중일체다중일', 불교에서는 인간의 마음은 너무나도 복잡 미묘한 것이라 한 사람의 마음이 곧 우주라고도 한다. 나는 어쩌면 하나의 우주를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작은 그릇이었던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항상 신부가 될 준비가 되었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했다. 나도 하지 못하는 걸 남들에게 하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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