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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Oct 24. 2021

고립

예비예비신부 5

성소국장 신부님과의 면접 이후로 일주일 만에 다시 춘천을 찾았다. 예비 신학생들과 담당 수녀님을 처음 만나는 자리였는데, 춘천 교구 사람들을 내게 많은 걸 묻지 않았다. 궁금한 게 없었다기보다는 낯선 존재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춘천 교구로, 나처럼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함흥 교구로 지원한다. 그러니까 낯설다는 말은, 소속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럼 함흥 교구는 어떤가 하고 조직도를 찾아보니 함흥 교구 신학생은 5명 남짓이었다. 신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얼굴을 볼 일도 없다고 한다. 머나먼 춘천에서도 소속감을 가지기 어려워 보인다.


나는 항상 공동체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쭉 다녔던 성당은 10년 넘게 신학생이 나오지 않았던 곳이어서 예비 신학생이 되었다는 이유로 왠지 모르게 추앙받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친구들과 함께 밴드를 하고 싶었고, 성가를 부르고 싶었고, 성경을 읽고 싶었지만 '사제가 특정 단체와 유난히 가까우면 안 된다'는 신부님의 엄격한 말에 단체 활동을 자제했다. 그러자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이 낯설게 느껴졌던 건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나 자체를 좋아해 주던 친구들과는 멀어졌고, 예비 신학생으로서의 나를 응원하는 성당 사람들이 생겼다.


그러나 늘 그렇듯 오랜만에 신학생이 나오겠다는 바람으로 들떴던 성당은 금방 잠잠해졌다. 아무래도 수능을 치기까지는 여러 해가 지나야 했기에 이해는 됐다. 어떤 단체도 속하지 않고 매주 미사만 하고 돌아가는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고, 서먹해진 친구들을 마주칠 때마다 속상해졌다. 성당에서 어떤 새로운 관계를 맺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 어느 순간부터 철저하게 그림자로 지내게 되었다. 그렇게 서서히 잊혀 갔다.


신학교 첫 지원에서 탈락하고 그 뒤로 계속되는 수험생활 동안, 나의 학창 시절을 함께한 성당이 재건축되었다. 정말 멋있고 화려하고 넓어진 새 성당에 초라한 내가 끼어들 자리는 더 이상 없었다. 4수를 마치고 포기하기로 결정했을 때, 고향과 다름없는 그 성당을 내 마음속에서 지웠다. 군대에 있는 동안 이사했던 걸 생각하면, 아마 가족들도 비슷한 마음이었으리라 짐작된다. 집 주소가 바뀌었다. 새로운 동네, 새로운 성당, 새로운 사람들. 비록 허리를 다쳐 나오긴 했지만 그래도 새 시작은 새 시작이니까. 하지만 희망을 품고 시작한 곳에서도 크게 다를 건 없었다.


방학마다 자신이 속한 성당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신학생은 신자들과 친숙하다. 그 사람이 신학생이 되기 전에 성당에서 활동을 했든 안 했든 같은 성당의 신학생이라는 이유로 소속감이 자연스레 생기고 환영을 받는다. 사제는 말할 것도 없다. 성당의 중심이고, 신자들에게 무한한 존경과 대가 없는 사랑을 받는다. 그러나 예비 신학생은 말이 다르다. 평범한 신자들에게 예비 신학생은 한없이 조심스럽고 거리감 있는 존재였다. 충분히 검증이 안 된, 심지어 신학생이 될지 안 될지조차 아직 모른다는 그런 이유였을 거라 짐작한다.


교구장 추천 전형으로 지원하던 해에 이런 일이 있었다. '성소 주일'이라고 폐쇄적인 신학교를 일 년에 한 번, 하루 동안 개방하는 날이 있다. 예비 신학생 모임을 신학교에서 해왔기 때문에 새삼 색다를 건 없지만, 나도 일 년에 하루쯤은 평범한 신자로 신학교를 둘러보고 싶었다. 그래서 참여했는데 내가 모르고 있었던 게 하나 있었다. 보통은 성당 단위로 입장하고 움직인다는 것이었다. 예상치 못한 외톨이 신세에 조금 움츠러들었지만, 곧 나와 처지가 같은 예비 신학생을 만나 다행히 둘이 다닐 수 있었다.


집에 가는 길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보좌 신부님에게 전화를 걸어봤다. 성소 주일이라 신학교에 들러봤는데 혹시 계신지, 계시다면 인사를 드리고 집에 가보려고 한다고. 나는 그 전화를 했던 행동을 아직도 후회한다. 신학교에 너무나 진심이라 성소 주일에도 들렀던 선택을 후회한다. 뒤뜰에 있으니 들렀다 가라는 말에서 왔는데 내게 연락이 없었다는 걸 눈치채고 조금 서운해졌을 때에, 기대를 멈추고 그냥 집에 가지 않았던 것도 후회한다. 뒤뜰에는 신부님들뿐만 아니라 우리 성당의 신학생과 주일학교 교사들, 학생들까지 모두 다 있었다. 돗자리를 펴고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으며 재밌게 웃고 있었다. 이사 온 지 일 년 된 내가 아무리 노력하고 먼저 다가가도 기존의 멤버처럼 섞이기 힘들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꽤 적나라하게 분리되어 있는 광경을 보니 입안이 썼다. 나는 이곳에서 어떤 존재인 걸까. 저들에게 나는 어떻게 보이는 걸까. 나는 뭘 바랐던 걸까.


아무튼 그런 소속감을 갖길 쭉 바라 왔지만 성당에서는 가져보지 못했던 나는 춘천 교구에서도 끝끝내 일원으로 소속되지 못했다. 내게는 또다시 상처 받을 각오를 무릅쓰고 섞여보려고 노력할 에너지가, 중학교 때부터 방학마다 기숙 생활을 하며 같이 자라온 아이들에게는 예신 모임 때에만 춘천에 오는 열 살 차이 나는 외지인을 받아들일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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