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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Oct 24. 2021

동기

예비예비신부 4

신학교를 준비할 때 제일 많이 듣는 단어가 하나 있다. '부르심'이라는 말인데 앞서 말한 '성소'와 동일하게 쓰이는 말이다. 어떤 상황에서 그분의 부르심을 느꼈다든지, 혹은 들었다든지 등의 계기로 사람들이 예비 신학생 모임에 참석하곤 한다. 내게도 그런 부르심을 느낀 경험들이 몇 있다. 믿기지 않는다고, 지어낸 거 아니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거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 일들로 인해 신학교로, 사제의 길로 이끌리고 있느라 한세월을 보내고 있는데. 그중 하나, 정말로 사제가 되고 싶어 졌던 계기를 말해보려고 한다.


참혹한 결과로 4수를 마치고 아무것도 이룬 것 없는 채로 군대로 도피한 때였다. 그때도 신학교를 포기하려고 했고, 군대에서 천천히 진로를 찾아보기로 결심했었다. 옛날 군대와는 다르게 내가 입대했을 때는 그래도 선진 병영, 푸른 병영을 내걸고 바뀌고 있던 시기였기에 바깥보다 오히려 숨통이 트이고 편하기까지 했다. 목표가 명확하고 주어진 일만 성실히 해내면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등병으로써 순탄하게 부대에 적응해나가던 참이었다. 한 달 가까이 야영하며 전시 상황에 대처하는 호국 훈련 일정이 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렸다. 10월 말의 철원은 이미 너무나도 추웠는데, 한 달 동안 아무것도 없는 벌판에 천막을 치고 지낸다는 말이다.


어떻게든 잘 될 거라 생각했던 안일한 예상과는 다르게 상황은 급속도로, 극한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내가 소속되어 있던 '무선과'는 전역을 앞둔 병장들과 어리바리한 이등병 동기들만 가득했던 애매한 상황이었는데, 이런 인원 부족 문제로 이등병 중에 한 명을 분대장급으로 키워내라는 간부들의 말에 얼떨결에 그 대상이 내가 되었다.


100일 휴가도 다녀오지 못 한,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멋모르고 여러모로 두각을 드러내서 차출된 것이었다. 자대로 배치받아 온 두 달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물 만난 고기처럼 지내긴 했다. 사단급 대회들에서 모두 1등을 해와, 부대에서는 이등병 때 포상휴가를 열흘 넘게 딴 A급 병사라고 소문이 자자했으니 나의 탓이라면 탓이었다. 그때의 나는 실패를 거듭하며 쌓인 설움이 치유되는 성취감에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모조리 찾아서 하고 있었던 것뿐이었다.


임무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다만 환경이 열악했다. 매일 허리를 과하게 편 상태로 총기를 메고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그리고 야간 교대까지 하며 하루 평균 16시간씩 무전 대기를 하게 되었다. 식사마다 그 식사시간이 다 지나고 나서야, 밥을 먹고 교대해 주러 오는 인원과 잠시 교대하여 식은 밥을 급하게 먹고 돌아가야 했다. 간혹, 아주 간혹 쉴 시간이 주어졌는데 그럴 때면 무전탑을 설치하러 무선장비들을 옮기고 땅을 파야 했다.


처음에는 괜찮았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버거워졌다. 열 번 잘해도 한 번의 실수에 죽일 듯이 노려보는 간부들 사이에서 요지부동의 자세로 하루 종일 대기하는 상황이 점점 견디기 힘들었고, 서울에서 느껴보지 못 한 추위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뻐근한 허리를 부여잡고 누울 때면 모포와 침낭만으로는 울퉁불퉁한 땅바닥을 감당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핫팩이 소용 없어지는 추위에 들이마시는 공기는 너무나 차가워서 숨이 막혔기 때문에 최대한 호흡을 일정하게 유지해야 했다. 눈물은 사치였다. 그렇게 소모할 에너지조차 없었다. 바람이 천막 밑으로 들어오지 않기를 바라다가 잠들곤 했다. 한계였다.


웃음은 사라졌고 입맛을 잃었다. 의욕도 희망도 모두 사라진 날들에 사람들은 나를 걱정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모르는 동기가 나 대신 들어갔다 간부들에게 온통 찍히고 쫓겨나는 바람에 이제 와서 대신 투입할 인력도 없었다. 그저 빨리 훈련이 끝나길 바라고 또 바랐다. 그렇게 한 달이 되어갔고 마지막 주말이 되어서야 내게도 종교 활동을 갈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낮잠을 자든 종교 활동을 가든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첫 자유 시간이었다. 낮잠을 자야겠다 다짐했는데 나도 모르게 천주교로 가겠다고 대답했다.


도착한 곳은 성당도 아닌, 공소였다. 성당으로 인정받기엔 신자 수가 적어 공소로 남아있는, 나와 같은 처지인 존재였다. 성당 특유의 향과 나무가 섞인 냄새는 마음을 순식간에 가라앉혀 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좋았던 건, 훈련소 이후로 다시는 만나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군종 신부님과의 재회였다. 그곳에서의 시간은 그 자체로 좋았다. 평범한 종교 활동이지만 분명 달랐다. 따뜻하고 신나면서도 조금은 경건한 그곳이 좋았고, 나와 같다고 여겼던 그 공간에서 위로받는 내가 좋았다. 나를 알아보고, 나를 위해 기도해 주겠다는 신부님이 좋았고, 나도 다시 누군가를 위해 기도해 주는 신부님을 꿈꾸고 싶었다.


그 순간 조금은 어두웠던 공소 안이 너무나 환한 빛으로 가득해졌다. 그 빛은 한순간에 내 안으로 들어왔고, 대상 없는 설움과 화가 눈 녹듯이 사라졌다. 내가 느낀 것이 맞았다는 확신을 가졌다. 지금 내가 받은 위로를, 안정감을, 이 특별한 느낌을 많은 사람들이 느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그러면 세상이 조금 더 행복해질 거라는 믿음이, 사제가 되어 거기에 일조하며 사는 것이 행복할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이번에야말로 또렷한 부르심을 느꼈다. 그래서 군대에서 다시 꿈을 키워 나오게 되었다.


천막으로 돌아왔을 때, 그 환한 빛이 내게만 보였던 건가 궁금했다. 조명이 깜빡였을 수 있지 않은가. 확실히 하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다. 조금 전 갑자기 환해지지 않았냐 물어보니 같이 앉아있던 선임은 그런 적 없으니 햄버거나 먹으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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