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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떰브 Sep 02. 2020

한국어 선생님 일기 03

03 먹고사니즘은 우리네 인생의 쟁점

다들 어렵다고 말했지만 예상외로 쉽게 들어오게 된 첫 학교에서의 첫 학기가 시작되었다. 국내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의 국적 비율은 사실 압도적으로 베트남, 중국이 대부분의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간 첫 학교의 학생들은 모두 베트남 학생들이었다. 학업성취도는 비록 낮았지만 순수한 학생들 덕에 웃을 일이 많았다. '선생님 사랑해요!' 하는 고백을 입에 달고 살 정도로 정이 많은 베트남 학생들이었다. 가까운 산에 가서 도토리를 주워 오더니 그걸 나에게 건네 준 학생도 있었다. 하지만 분명히 힘든 점도 있었다.


최근 몇 년 간 베트남에서 한국어 구사력은 큰 이익이 되는 것들 중에 하나이다. 따라서 학문이 목적이 아니라 돈이 목적인 이들이 비교적 받기 쉬운 비자인 어학연수 비자(D4)를 받고 한국에 들어와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가 있다. 이 과정에서 허용 시간을 훨씬 넘어 일하거나, 어학연수생이 근무할 수 없는 특정 직업군에서 불법으로 일하다가 적발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쉽게 취득할 수 있는 비자로 한국에 일단 들어온 뒤 학교에 나오지 않고 잠적했다는 뉴스 기사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사회적 이슈 때문에 최근에 해당 비자로 일하기 위해 요구되는 조건이 더 까다롭게 조정되었다. 


첫 학교에서는 학생의 95%가 베트남 학생들이었다. 물론 모든 학생들이 그렇지는 않았지만 정말 대부분의 학생들은 다 아르바이트를 했다. 하지만 학생들이 교원들과 상담을 할 때 어디에서 일하는지, 얼마나 많은 시간 일하는지를 솔직히 이야기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저 지레짐작 할 뿐이었다. 학생들은 현금으로 바로 월급을 받는다고 했다. 통장에 월급이 찍혀도 되는 시간으로만 일하는 학생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어떤 학생은 주 7일, 무려 총 84시간을 일한다고 했다. 한 둘이 아니었다. 그 학생들은 학교에 와서 엎드려 잠을 자기 일쑤였다. 그도 그럴 것이 수업이 끝나는 오후 1시가 되면 바로 일하는 곳으로 가서 12시간을 일한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면 새벽 3-4시가 된다. 서너 시간 겨우 자고 학교에 오면 당연히 졸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첫 학기는 그럭저럭 잘 넘어갔지만 겨울에 새로 만난 학생들은 많이 버거웠다. 학생들은 가뜩이나 추운 날씨에 적응하는 것도 힘들어 했고, 서울의 겨울을 제대로 날만큼 두꺼운 옷을 살 형편이 안되는 학생들도 많았다. 그런 와중에 또 과한 아르바이트로 인해 두어 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엎드려서 잠을 잤고, 수업시간에 나와 눈을 맞추는 학생은 찾기 어려웠다.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억지로 학교에 앉아 있는 힘들고 지친 얼굴들을 매일 보다 보니 갈수록 힘에 부치기 시작했다. 신입 강사의 패기는 첫 경력에서부터 꺾이기 시작했다.


하루는 수업 쉬는 시간에 어떤 베트남 학생이 개인 카카오톡으로 연락을 해왔다. 시끄러워서 잠을 자기 힘드니까 집에 가서 자도 되냐고 물어본 것이다. 그 날은 처음으로 학생들 앞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낸 날이었다. 이런 행동은 예의가 아니라고 호소했으나 상대방은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 학생들이었다. 그렇게 첫 직장 고작 두 학기 만에 큰 슬럼프가 찾아왔다. 나는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하는 나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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