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입니다.
마지막으로 뭔가를 쓴 지가 1년이 넘었더군요.
처음엔 브런치가 '작가님의 글을 기다려요'라며 가식적인 ㅠㅠ를 정기적으로 날리더니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글을 쓰라'고 보채지도 않데요.
시스템에 설정된 리마인드 기간이 1년인 듯.
그리고 저는 다시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아주 뜬금없지만 그렇다고 아주 무의미하지 않은 오늘, 이 글을 발행할 예정입니다.
예전 글을 모두 거두었었습니다.
나쁜 습관인데, 전에도 혼자 써놓았던 글들을 모두 삭제하곤 했습니다.
오랜 시간 공들여 적어놓았던 내 생각과 경험들을 ctrl A → del 하는 것은,
글에 기록 이상의 의미를 두는 사람에겐 일종의 간편한 유사죽음일 것입니다.
어쩌면... 그 유사죽음으로 극한의 충동을 대체했었는지도 모릅니다.
저를 대신해서 글을 죽이는 것을 멈출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나쁘다는 걸 알면서도 고쳐지지 않는 것이 어디 그 하나뿐인가요.
저의 고질적인 문제들에 딸의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는 것을 알면서도
엄마의 책임감만으로는 벗어나기 힘든 몹쓸 관성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앞으로는 안 그럴게. 엄마가 노력할게."
"아니, 이제 안 믿어. 엄마는 또 그럴 거야."
구분선이 오늘따라 참 마음에 드네요.
앞에 쓴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마무리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난감할 때 정말 유용한 녀석입니다.
글을 모두 거두고 잊힌 사이에 저는 조금 낯선 일을 했습니다.
우선 몸에서 20kg의 무게를 걷어냈구요.
더 낯설게도 그걸 1년 넘게 '유지'라는 걸 하고 있습니다.
그랬더니 더더 낯선 일들이 뒤따라 생겼습니다.
사람들이 제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게 된 것도 그 '더더 낯선' 일들 중 하나입니다.
은밀하게 묻는 "비결이 뭐야?" 같은 질문들 말입니다.
눈빛이 빤짝빤짝합니다.
제 대답을 듣고 나서도 저렇게 빛날지는 알 수 없지만요.
몸에서만이 아니라 마음에서도 그만큼의 무게를 비웠습니다.
마음에서 비워진 무게도 20kg일까요?
측정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두기로 합니다.
왜냐하면 올해로 21년 째, 그러니까 꼬박 20년이 걸린 일이니까요.
사람들은 몸의 무게를 줄인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고,
저는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엇나가진 않을 거예요.
어차피 두 이야기가 같은 지점에서 만날 테니까요.
21년 전 8월, 저는
죽음으로 낯설어진 아버지의 육신을 마주하는 장례를 마치고
각종 종이에서 아버지의 이름을 지우는 일에만 겨우 도장을 찍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혼은 여전히 제게 남아있었습니다.
제가 거기에 매어있었기도 했지만, 제가 붙들고 놓아드리지 못했기도 했었죠.
며칠 전에 저는 드디어 아버지를 붙들고 있던 마음의 끈을 풀어내었습니다.
죄책감 없이 아버지에게서 놓여나고, 저도 아버지를 보내드렸습니다.
그러니 이제 다시 글을 쓰렵니다.
거두어들였던 것과는 조금 다른 글을요.
여전히 저의 정체성은 생존자이지만
떨어지는 중력에 몸을 맡기고 죽기만을 갈망하던 옛사람은
옛 글과 함께, 20kg의 기름 덩어리와 함께 이별하고
이제 숨이 턱에 차오를 때까지 그 중력에 저항하는 생존을 기록하기로 합니다.
다시 만나요.
저 잘 살아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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