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무거웠을 때 글이 길었다. 내내 무거웠으므로 내내 길었다. 어스름한 해질녁 그림자가 긴 것마냥... 한동안 닫아놓았던 브런치를 야심차게 다시 열고난 후 글을 쓰기가 왜 이렇게 어렵고, 왜 이렇게 숨이 가쁜지 몰랐었는데 어느날 문득 내 안에 더이상 글이 고이지 않음을 알았다. 다만 흘러갈 뿐... 생각도 감정도 좀처럼 떠나지 못하고 소(沼)를 이루던 지난 날의 글들을 더이상 쓰기가 어렵겠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이제 글을 쓸 수 없는 건가...
문득 마음 속에서 딸의 말투로 불쑥 대답이 돌아왔다. "오히려 좋아~" 발랄한 그 목소리에 피식 웃음이 났다. 그러네, 고이지 않고 다 흘려보내는 지금이, 되새기고 침잠하지 않는 숨소리가 편안하구나. 흐르는 것들 위에 놓인 몸과 마음이 가볍구나. 아주 오랫동안 내 마음엔 우물이 있었는데... 그걸 이상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지금은 눈을 감으면 우물이 아니라 강이 보인다. 그래서였나, 마음에 들어와 섞이는 것들이 이젠 모두 붙잡아지지 않고 흩어지는구나. 과거에도 미래에도 엮이지 않고 휘 희석되고 말아.
음... 짧게 쓰지 뭐. 그럼 되지 않을까? 쓸 말이 없으면 그 또한 좋은 거고. 이것으로 충분해. 오히려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