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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in Jun 22. 2024

시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내 인생에 무슨 일이 일어난거지?

시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일련의 과정을 추측해보면...


1) 시도해보지 않은 공부 방법을 찾다 낭독에 관심을 갖기 시작.

- 내 목소리가 내 귀에 들리도록 낭독하면 저절로 외워진다고 한다. 특히 연기하듯 감정을 담아 낭독하면 기억을 더욱 오래 유지할 수 있다.


2) 한 중년 작가님이 직접 자신의 시 낭송을 녹음해 올린 브런치 글을 보게 되었다.

- 필사한 줄노트 사진을 보고 낭송을 들으며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시 낭송을 왜 하는 건지 늘 궁금했는데, 한 편의 시를 자기 방식과 느낌대로 읽고 향유하는 행위가 주는 특별함을 느낀 경험이었다.

  

3) 한동안 잊고 지낸 ‘시’의 매력을 생각하며 다음 날 베이킹을 하다가 좋아하던 다른 시가 떠올랐다.

- 신동집 시인의 [오렌지]라는 시를 다시 찾아 읽으며, 학생 때와 달리 완전하게 읽히는 시의 정서에 감탄했다.


4) 출근길에 전자책으로 읽던 글쓰기에 관한 책에서, 다른 몇몇 시인들의 이름을 얻게 되었다.


5) 어젯밤 - 결국 밤새 시집을 고르는 행복한 고민을 하다 결정하지 못하고 잠들었다.



* "공부(마쉬나)란 반복해서 낭독하고 반복해서 베껴 쓰고 반복해서 생각하는 것이다." - 유대인 격언 / <유대인 공부법으로 영어 뇌를 깨워라> 중


* 누군가 내게 물었다. 시를 쓰는 힘은 도대체 어떤 거냐고. 나는 대답했다. 이 세계에 속하지 않을 수 있다는 안도감이 힘이라고. 이 세계에 속하지 않으면서도 이 세계에서 자신 있게 살아갈 수 있는 꽤 괜찮은 일이 시를 쓰는 일이라고. - 김소연 - / <글쓰기의 최전선> 중


* 글쓰기의 최고봉은 '시'라는 말이 있듯이, 은유를 할 수 있는 것은 능력이고 재능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은유에 능하다는 것은 서로 다른 사물들의 유사성을 재빨리 간파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 <낭독 독서법> 중에서.


 

 그림도 건물도 영화 대사도, 설명적인 것보다는 추상적인 것을 선호한다. 짧은 언어로 충분히 표현할 수 있다면 구태여 길게 늘여쓸 필요가 있을까. 하이쿠처럼 짧아도 괜찮고 그 정도 길이조차 없어도 좋다. 있어야만 하는 것을 제외한 공간의 고요와 침묵을 갈망한다.


 운문은 음절 하나 혹은 자음과 모음 하나까지 산문보다 공들여 다듬어지고 그만큼 농도 짙은 의미와 감정을 전달하는 힘이 있다. 하지만 시집을 사려다가 눈에 들어온, 시 분야의 판매지수를 보다가 나는 좀 아득해지고 말았다. 미디어에 노출된 몇몇 인기 작가들을 빼고는 시집을 구매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더 없는 게 아닌가. 도대체 시인들은 어떻게 먹고 살면서 시를 쓰며, 꾸준한 출판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걸까. 오늘 스레드(아직 구경만 하는)에 올라온 글 중에는 교보문고 매장에서 시 매대가 잘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졌다는 내용이 있었다. 베스트셀러 진열대에는 종합과 소설과 에세이가 있지만 시는, 없다는 이야기도.


 시가 이렇게 홀대받는 까닭은 바쁜 현대인들이 읽고 바로 이해하기에는 어렵고 불편해서일까. 나또한 한동안 멀리한 시가 다시 좋아지는 까닭은, 어쩌면 살면서 이해할 수 있는 생각과 언어의 폭이 어릴 때보다 확장되었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하나의 현상을 묘사하기 위해 사람들이 진부한 어휘로 엇비슷한 장면을 그려나갈 때, 시인들은 외계에서 뚝 떨어진 듯한 낯선 단어와 형식으로 자유로운 해석을 요구한다. 그들은 사물의 가장 알려지지 않은 면을 관찰하는 능력이 필요한 직업을 가졌고, 그만큼 사무치게 외롭고 지적인 사람들은 아닐까.


 한동안 이 외로운 자들의 노래를 들으며 맘껏 환호하고, 소중하게 낭송하며 스스로의 고유한 외로움에도 한껏 당당한 자세를 갖고 싶다. 일단 카트에 담아놓은 시집들부터 얼른 사야지.



p.s.


오렌지

                                                      신동집

오렌지에 아무도 손을 댈 순 없다

오렌지는 여기 있는 이대로의 오렌지다

더도 덜도 아닌 오렌지다

내가 보는 오렌지가 나를 보고 있다

마음만 낸다면 나도

오렌지의 포들한 껍질을 벗길 수 있다

마땅히 그런 오렌지

만이 문제가 된다

마음만 낸다면 나도

오렌지의 찹잘한 속살을 깔 수 있다

마땅히 그런 오렌지

만이 문제가 된다

그러나 오렌지에 아무도 손을 댈 순 없다

대는 순간

오렌지는 이미 오렌지가 아니고 만다

내가 보는 오렌지가 나를 보고 있다

나는 지금 위험한 상태다

오렌지도 마찬가지 위험한 상태다

시간이 똘똘

배암의 또아리를 틀고 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오렌지의 포들한 껍질에

한없이 어진 그림자가 비치고 있다

누구인지 잘은 아직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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