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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in Aug 09. 2024

'글을 잘 쓴다'는 말 한마디


 

 또래들보다 독서량이 많았던 초중학교 시절. 수업시간에도 교과서 대신 몰래 책을 읽었다. 문장의 흐름에 대한 자연스러운 습득이 생겨 글쓰기 대회에서 자주 상을 받곤 했다. 새책 냄새를 실컷 맡을 수 있는 ‘나눔문고’ 주인은 동경의 대상. 집 거실에 있던 엄마의 소설책과 글이 세로로 쓰인 두꺼운 고전 등 나이에 맞지 않는 책을 보며 낯선 어휘를 익히기도 했다.


 대학 진학 시 문예창작과 쪽으로 진학을 하면 어땠을까 하고 지금에야 쪼끔 아쉬워하지만, 그 시절 나는 패션에 관심이 많았다. 글쓰기와 달리 ‘멋있어지는' 일은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였다. 멋의 본질은 뭘까? 결국 의류학과로 진학했지만 도서관에 틀어박혔다. 과제 아닌 A4 1장 이상의 자유로운 글을 쓴 건 10년도 넘게 지나서였을까. 보험회사에 들어가 몇 달 지나지 않았을 때 서울시에서 열어준 글쓰기 수업을 신청함으로써.

 

 보험회사 입사는 한 번쯤 경험하고 싶은 도전 중 하나였다. 삶의 전 영역에 적용되는 설득의 기술을 익히고 싶었고, 성과만큼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체계도 합리적으로 들렸다. 사업부 특성상 주로 중산층 이상의 고객에게 종합 재무계획을 제시해야 했는데, 정해진 틀에 낯선 이의 삶을 끼워 맞추는 일이 점점 불편하게 느껴지기 전까지는. 방황하던 차에 참여한 글쓰기 수업에서 열심히 글을 썼다. 선생님과 동기분들께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은 기억은 나중에 브런치 작가 신청을 할 때도 힘이 됐다.


 하지만 성인이 된 내가, 앞으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하는 데 가장 큰 용기를 준 사람은 따로 있다. 지금도 가끔씩 그의 말 한마디가 문득문득 떠오르는 걸 보면.


 대학 졸업과 보험회사 입사의 중간 지점에서 잠시 연애한 남성. 그는 대중음악에 관한 전문적인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공적으로는 예의 바른 행동과 선비 같은 구석이 있는 반면, 사적으로는 달콤한 개구쟁이였다. 자주색 컬러 포인트를 준 세미정장 스타일은 좀처럼 바뀌지 않아, 신경 쓰지 않는 듯한 느낌이 오히려 편했다. 보컬학원을 운영하는 친오빠를 도와 일할 때였으니 넓게 보면 동종업계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를 어떻게 만났는지, 어떤 상황이었는지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데이트하러 가던 지하철에서 그가 말했다.


"유진씨 글 잘 쓰잖아요."


특별히 어딘가에 글을 쓴 기억도 없는데 잘 쓴다고? 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되물었다.


"제가요? 왜 그렇게 생각해요?"


"싸이월드에 글 올리는 거 보면 그렇던데."


"글을 잘 쓴다는 게 어떤 건데요?"


"음... 유진씨 글 보면 유진씨가 말하려는 게 뭔지 잘 알 수 있어요."


 연인이라서 한 말이었는지도 모르지만,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이에게서 그런 이야기를 듣다니 고맙고 놀라웠다. 음악에 모든 열정을 바치면서도 수입은 많지 않던 시절의 그였지만, 돈 때문에 사람이나 사물 또는 연애를 대하는 태도가 흔들리지 않는 초연함이 탁월한 사람이었다. 믿음직했다. 그런 이의 말이라서.

 

 헤어진 후에도 그가 해준 다정한 말과 반듯한 태도 덕분에 우리는 보험(?)을 매개로 몇 번 더 만날 수 있었다. 다시 만났을 때 꽤 놀라운 말을 듣긴 했지만,  그의 따듯한 응원이 담긴 말은 아직도 가슴속 깊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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