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의 과학 에세이
앞에서 우리는 인류의 문명 전체를 뒤흔들 수도 있는 엄청난 힘을 이야기했다. 그 힘은 흔히 ‘에너지’라고 불리는 것이다. 그 에너지를 아인슈타인은 어떻게 보고 있었을까?
그는 E=mc2 이라는 짧은 공식을 통해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 중심에 에너지인 ‘E’가 존재한다. 우리는 이제 그가 말하는 E가 무엇인지를 찾아갈 것이다.
우선 하던 일을 멈추고 가만히 눈을 감고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TV에서 만화영화의 등장인물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려오고, 라디오에서 아름다운 선율의 음악 소리가 흘러나올 것이다. 도로에서 들려오는 자동차 소리 등 온갖 소리가 섞여 귀를 자극할 것이다.
자, 이제 눈을 뜨고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자? 우리는 거의 매일 TV를 통해 만화영화를 보거나 스포츠 중계, 혹은 드라마를 본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음악을 내려받고 뉴스를 보기도 한다.
우리는 이러한 현대 과학 기술들의 혜택을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이다. 만약 TV, 자동차, 인터넷 등이 갑자기 사라진다면 어떨까? 당장 심심한 정도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온 세상이 제대로 굴러가기조차 어려울 것이다. 조선 시대 사람들보다 더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옛날에는 이러한 것들이 없었으니 무엇이 불편하다는 것인지 아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모든 기술은 지난 200여 년 동안의 수많은 과학자가 연구하고 고민했던 물질에 대한 연구들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아인슈타인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넓은 우주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세계에 이르기까지, 세상 모든 것을 지배하는 법칙들을 찾기 위해 평생에 걸쳐 노력했다. 그리고 그가 발표한 상대성이론은 양자역학과 함께 20세기 과학에서 가장 빛나는 업적 중 하나가 되었다. 그 이론은 그가 살아 있을 당시에도 엄청난 결과들을 만들어냈다. 또한, 오늘날 우리가 우주를 어떻게 보고 이해할 것인가를 알려주었다. 두 이론은 오늘날의 물리학에서 거대한 양대 산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우리는 그의 특수상대성이론의 핵심인 E=mc2이라는 공식을 들으면 하얀 머리에 콧수염을 기른 노인 아인슈타인이 생각날 것이다. 하지만 세상을 바꾼 이 공식을 내놓을 당시 아인슈타인은 패기 왕성한 20대 중반의 갓 결혼한 젊은이였다. 게다가 빼어난 과학자나 대학교수도 아니었다. 그는 스위스 베른의 특허청에서 일하는 그저 그런 직원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조차 구하지 못하자 친구의 추천으로 얻은 일자리였다.
그런데 그는 어린 시절부터 시작된 고민을 하나 가지고 있었다. 만약 우리가 빛의 속도로 여행한다면 세상은 어떻게 보일까? 하는 것이었다. 소년 아인슈타인은 늘 그것이 궁금했다.
열 살에서 열두 살 사이에 소파에 드러누워 읽은 스무 권짜리 베른스타인의 <과학이야기>는 소년 아인슈타인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 속에는 아인슈타인의 호기심, 실험들, 상상 속에서 대우주와 소우주를 탐사하려는 계획의 근원들이 숨어 있었다.
청소년기에는 의대생 탈무트가 읽을거리를 자주 가져다주었는데, 그때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독파하였으며 루트비히 뷔히너의 <에너지와 물질>도 읽었고, 알렉산더 폰 훔볼트의 <우주론>도 함께 읽고 토론했다.
아인슈타인은 이런 책들의 내용을 잊은 적이 없다고 말하곤 했다. 과학이라는 모험에 관한 그의 나이에 맞는 작품들을 방대하게 읽으면서 앞으로의 인생에서 맡게 될 역할을 알게 되었고, 게임을 즐기듯이 시간과 공간, 에너지와 물질의 문제에 심취했다.
어른이 되어서도 아인슈타인은 전기가 선을 타고 여행하는 것처럼 빛을 타고 떠나는 여행을 상상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유명해지기 전까지 궁핍한 사정 때문에 수학과 물리학 개인 교습 광고를 냈는데 이를 계기로 토론 그룹을 만들기도 했다. "올림피아 아카데미"라는 이름을 붙인 그 독서활동 모임을 통해서 전반적인 학문과 예술과 문학, 그리고 물리학과 철학에 관한 탁월한 통찰력을 갖추게 되었다.
그 결과 마침내 그는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신이 세상을 만들면서 아무도 모르게 감춰두었던 비밀 하나를 발견한 것이다. 우주의 질서를 이해할 수 있는 근본 원리를 짧은 공식이었다.
에너지와 물질과 빛이 따로 떨어져 있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놀라우리만치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담고 있다.
E=mc2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방정식을 발견할 당시 아인슈타인은 젊은 나이였지만, 이 공식이 지배하는 세계는 이미 137억 년이란 긴 세월 동안 지속해 왔었다.
공식이 세상에 나온 지 100년도 채 안 되었지만, 이 공식이나 이론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어떻게 해서 세상에 나오게 되었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사람들이 믿고 있던 세상의 질서와 완전히 달랐기 때문에 쉽게 받아들이기도 힘들었다.
아인슈타인 자신조차도 이 공식을 발견하고 세상을 만든 신이 자신을 가지고 장난하는 것은 아닌지 하고 의심할 정도였다.
그는 세상의 신비한 비밀을 몰래 엿본 것처럼 들떠 있었다. 사람들 앞에서 에너지는 질량과 빛의 속도를 제곱한 값과 같다(E=mc2)는 것을 이야기하면서도 내내 스스로 물으면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 공식이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이전의 수많은 과학자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노력이 아인슈타인에 의해 하나의 이론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이 깨달은 ‘에너지란 무엇인가?’라는 개념에 대해 이전의 과학자들은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었다. 단편적으로 조각난 진실들을 나눠 가지고 있었다.
사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에너지로 가득한 세상이다. 그것이 작용하는 방식만 조금씩 다를 뿐이다. 천둥과 번개를 만드는 힘, 바람을 불게 하는 힘, 따뜻하게 해주는 힘, 동물이나 식물이 자라게 하는 힘과 같이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에너지"라고 말하는 힘을 하나의 존재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각각 따로 존재하는 독립적인 힘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스스로의 노력으로 자수성가한한 과학자가 하나의 힘 주변에 존재하는 다른 힘들이 각기 다른 모양으로 작용하는 듯이 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하나의 힘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 실체를 벗긴 과학자는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난 "마이클 패러데이"였다. 패러데이는 불운한 가정환경에도 자연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으로 마침내 중요한 발견을 해냈다.
아이작 뉴턴이 세상을 움직이는 힘을 발견한 후 세상에 했던 유명한 말이 있다. “나는거인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보았기 때문에 중요한 발견을 할 수 있었다,” 앞서 과학적 성과를 이루었던 코페르니쿠스와 케플러, 그리고 갈릴레이를 말한다. 뉴턴처럼 아인슈타인의 발견에 가장 큰 도움을 준 거인은 바로 패러데이였다.
당시 하류층에 속하던 대장장이의 아들 패러데이는 자신의 가정환경을 거부하고 자신의 꿈을 이룰 직업을 원했다. 그가 선택한 직업은 책을 제본하는 일이었다. 그가 이 일을 시작한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항상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손님이 맡긴 원고는 어느 독자보다 먼저 읽을 수 있었다. 그는 바람대로 제본을 맡아 일하면서 그에게 맡긴 모든 책들을 다 읽을 수 있었다.
독서는 그에게 자연에 대한 꾸준한 호기심을 키워주었다. 그가 책을 읽는데 쏟아부었던 열정은 모두가 놀랄 정도였다. 일하면서 번 돈으로는 다른 사람이 제본한 책을 샀고, 일하는 시간 외의 모든 시간은 그 책을 읽는데 투자했다. 그렇게 그는 인류의 역사를 바꿀 위대한 발견을 향해 한 걸음씩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작은 계기였지만 인생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꿀 만큼 의미가 컸다. 그에게 제본을 맡긴 손님 중 한 명이 당시 가장 유명한 과학자인 험프리 데이비 경의 강연을 들을 수 있는 초대권을 선물한 것이다.
패러데이는 그동안 위대한 과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키우며 혼자 공부했는데, 비록 대중 강연이지만 당시 가장 유명한 과학자를 책이 아닌 실제로 만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선물을 받은 그가 기뻐한 것은 당연하였다. 당시까지만 해도 과학은 상류층만의 전유물이었다. 실험을 위한 장비나, 책, 정보 등을 대부분 상류층에서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패러데이가 아무리 독학으로 공부하고 수많은 강연을 들으며 지식을 쌓아간다고 해도 훌륭한 과학자가 되는 것은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었다.
당시 험프리 데이비는 전기분해를 통해 일종의 웃음가스라고 알려진 아산화질소를 발견해 유명세를 떨치고 있었다. 아산화질소는 이후 마취제로도 사용되었는데 당시 사람들은 이것을 파티에서 흥을 돋우기 위해 사용하거나 환각제를 대신해 사용했다. 데이비도 자신의 강연장에 나가기 전에는 아산화질소를 흡입하곤 했다. 이것을 흡입하면 술이나 환각제 없이도 그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데이비는 전기분해로 아산화질소를 분리한 것과 같이, 전기란 서로 뒤섞여 있는 세상의 모든 물질을 순수한 물질로 분리할 수 있는 수단으로만 여기고 있었다. 그에게 전기는 실험에필요한 일종의 연장이었다.
패러데이에게 강연들은 신세계로 이끄는 동력이었다. 강연을 들을 때마다 꼼꼼히 메모해오던 그는 험프리 데이비의 이러한 전기를 이용한 실험들과 이론들을 정리해 한 권의 강연 노트를 만들기로 했다. 빠짐없이 강연을 들으며 그 내용을 누구나 알아볼 수 있게 분류해 마침내 책으로 만들어질 정도의 분량이 되자, 그것을 정성스럽게 제본했다.
책이 완성되자, 패러데이는 험프리 데이비에게 보여주며 자신의 과학에 대한 열정과 관심을 설명했다. 그가 원한 것은 험프리 데이비가 있는 연구소의 조수로나마 들어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험프리 데이비는 패러데이의 이러한 요구를 한마디로 거절해 버렸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후에도 그는 강연마다 참석하며 기회가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데이비에게 작은 사고가 일어났다. 그가 실험을 하던 중 부상을 입은 것이다. 데이비는 할 수 없이 언젠가 자신의 강연노트를 제본해 보여준 패러데이를 불러 몇몇 실험을 대신하기로 했다.
패러데이에게는 하늘이 내린 기회였다. 그는 당장 하던 일을 접고 그 길로 데이비의 실험실로 들어갔다. 마침내 패러데이는 데이비의 조수가 된 것이다. 제본소에서 일할 때에 비하면 보수가 훨씬 적었지만, 과학과 관련된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처음 그가 맡은 일은 데이비의 강의 준비나 실험 장치와 도구를 청소하고, 그것의 운반과 점검 같은 잔심부름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묵묵히 그 일을 해냈고 차츰 자신의 재능을 발휘해 나갔다.
데이비를 비롯한 다른 과학자들은 패러데이에게 뛰어난 능력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좀 더 수준 높은 일들을 맡기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패러데이는 데이비를 능가할 정도의 훌륭한 과학자로서의 소양을 쌓을 수 있었다.
패러데이는 무엇보다 전기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사실 전기는 그에게나 다른 과학자들에게 매우 낯선 분야였다. 당시 사람들은 전기에 대해 고무호스 속을 흐르는 물과 같은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물이 밖으로 새어나오지 않는 것처럼 전기도 전선 밖으로 흘러나올 수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다 1821년 덴마크의 과학자인 외르스테드가 전류가 흐르는 전선 가까이에 있는 나침반이 그 전류로부터 힘을 얻어 움직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전류가 나침반의 자석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이 발견은 이전 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방향으로 전기연구를 이끌었다. 이전까지 전기의 힘과 자기의 힘은 전혀 다른 것이며 서로 아무 관련이 없다고 생각해왔는데 외르스테드 이후 과학자들은 그 둘을 같이 놓고 연구하게 된 것이다.
과학자들은 전류가 흐르는 방향에 따라 나침반의 방향이 바뀌는 이유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이 문제를 놓고 패러데이는 전기에서 나오는 보이지 않는 힘이 나침반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했다. 이어 자신의 생각을 증명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했다.
그는 왜 나침반은 전류가 흐르면 북극을 가리키던 나침반의 바늘이 전류의 방향에 따라 바뀌는지, 또한 전기가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주는지를 알고 싶었다. 이것은 데이비나 다른 과학자들에게도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였다.
그러던 중 패러데이는 1831년 8월 획기적인 실험을 한다. 철심의 주위를 철심과 분리되도록 한 뒤 두 가닥의 철사로 감았다. 한 가닥은 나침반을 지나게 하고, 다른 한 가닥을 전지에 연결하자 나침반의 자침에 변화가 일어났다. 그는 나침반을 전선 주위에 여기저기 놓아보다 나침반의 어떤 패턴을 알게 되었다. 그 실험으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변압기가 처음 세상에 등장했다. 그 실험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 왕립학회에 세워진 그의 동상이다. 이 동상은 그의 실험을 상징하는 유도코일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이 실험으로 패러데이의 천재성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그가 실험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아인슈타인처럼 상상하며 생각하기를 좋아했고, 실험에 대한 이해나 본질에 대한 직관력도 뛰어났기 때문이다.
이제 그는 전선 주위에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의 물결이 있고, 자석도 그와 유사한 힘을 가지고 있어 이것이 전류의 힘에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전기로부터 흘러나오는 어떤 힘으로 나침반의 자침을 움직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러한 현상은 보통의 과학자들이라면 무시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일반 사람들과는 달랐던 것이다. 그는 더 나아가 전동기를 개발하는데도 성공하기에 이른다. 그는 전동기를 만들기 위해 자기발생기 중앙에 고정된 철사를 설치하고 구리 원판의 가장자리를 철사로 감았다. 철사를 검류계에 연결하고 원판을 말굽자석 사이에 놓아 끊이지 않고 고른 전류를 발생시켰다.
그가 이러한 실험을 하게 된 것은 ‘나침반의 자석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면 반대로 전류를 흐르게 하는 자석의 힘도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험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자기와 전기가 같은 종류의 힘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역사적으로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어낸 것이다. 분리되어 있던 두 힘이 하나이고 옷만 바꿔입은 것이었다.
당시 패러데이는 ‘에너지란 무엇인가?’를 세상 모든 사람에게 실험을 통해 보여 주었다. 전지에 있는 금속들과 용액이 화학반응을 일으켜 전기를 만들고, 이 전기는 다시 자기와 만나면서 움직임을 발생시킨다. 이 모든 것 뒤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것이 바로 ‘에너지’라는 것이었다.
위대한 발견을 한 패러데이는 유명인사가 되었지만, 그의 스승 데이비로서는 그다지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왕립학회 회장이었던 데이비는 질투에 휩싸였다. 유명한 과학 잡지에 실린 패러데이 발견들의 중요성을 알아보고도, 세계 과학의 흐름을 이끌고 있던 영국에서 가장 위대한 발견을 자신이 아닌, 조수이자 천한 대장장이의 아들이 이루어 냈다는 사실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패러데이를 더는 조수가 아닌 자신을 향해 기어오르는 ‘건방진 녀석’으로만 여겼다. 그는 질투를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다. 패러데이의 논문을 다른 과학자의 업적을 표절한 것이라고 고발하는가 하면 영국왕립학회 회원에 선출되는 것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방해했다.
사람들이 그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패러데이를 발굴한 것이라고 조롱하는 상황에 이르자, 그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데이비의 모함은 게속되었고, 그럼에도 패러데이는 공적을 인정받아 왕립학회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반면 데이비는 5년 후 과다한 아산화질소의 흡입으로 사망하고 만다. 역사상 가장 중요한 발견의 이면에 있는 스승과 제자의 엇갈린 운명이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패러데이가 발견한 이 보이지 않는 힘은 ‘에너지’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