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조건
안녕하세요, KBS <거리의 만찬>을 제작하고 있는 이이백 피디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거리의 만찬>에서는 지난주 하청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던 ‘죽거나 다치지 않을 권리’ 편에 이어 노동의 조건 2부가 방송됩니다. 저는 도시가스 점검원들의 이야기를 주제로 ‘노동의 조건 2부 - 3만 6천7걸음’ 연출을 맡은 이이백 피디라고 합니다.
ep.11 노동의 조건 2부 - 3만 6천7걸음
방송일 : 2019년 1월 25일(금) 밤 10시, KBS1TV
3만 6천7백 걸음, 가스 점검원이 하루에 가장 많이 걸었던 걸음 수 입니다.
‘3만 6천7백 걸음’에서는 언제나 우리 가까이에 있었지만, 모두가 한번쯤은 외면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도시가스 점검원들을 만나 그들의 노동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집에 들어와 가스 점검을 하는 단 몇 분, 보통 우리가 점검원과 대면하는 시간은 아주 짧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점검원들이 대충, 편하게 일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제작을 하기 전까지는 도시가스 점검원들의 일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많이 걷는 일이라는 것, 몇 번의 방문에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는 개인적인 부끄러움 정도 말고는
가스 점검원에 대한 정보도 별다른 기억도 없었습니다.
무관심 혹은 무심에 가까울 정도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도시가스 점검원들의 노동은 낯선 이야기 입니다.
서울시에서 일하고 있는 도시가스 점검원 한명은 보통 약 4800가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4800이라는 숫자는 점검원들의 업무를 정확히 알아야 그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기에 잠시 설명을 덧붙입니다.
도시가스 점검원의 업무는 크게 세 가지 입니다. 계량기 숫자를 확인하는 검침, 각 가정에 요금 고지서를 배달하는 송달, 그리고 집 안으로 들어가서 가스레인지나 보일러의 누설 여부를 확인하는 점검.
4800가구를 담당하는 점검원은 매달 4800개의 계량기 숫자를 검침하고, 4800장의 고지서를 배달합니다.
그리고 6개월에 한 번 4800가구의 집 안으로 들어가 안전점검을 해야 합니다. 즉, 매달 최소 1만 가구 이상을 찾아다니는 일입니다.
무엇보다 걷고 또 걸어 가가호호 방문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실외에서 보내야 하는 일입니다.
가능한 일인가, 라는 의문이 들정도의 과중한 업무를 점검원들은 소화해 내야 합니다.
그렇다보니 ‘안전점검’을 담당하고 있지만 정작 본인들의 안전은 신경쓸 겨를도 없이 내몰리며 일을 합니다.
구조적으로는 가스를 공급하는 원청(민영기업)과 계약관계에 있는 하청 업체에 소속되어 있어, 오랫동안 점검원들은 서로의 여건조차 알지 못한채 불합리함을 체념하듯 받아들이며 일해왔습니다.
최근에 와서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조금씩 본인들의 권리를 찾기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대한민국 하청 업체에서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목소리를 낸다는 건 곧 잘릴걸 각오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방송에 참여해주신 가스 점검원 모두가 해고의 위협을 감수하고 출연해 주었습니다.
그렇기에 방송을 준비하며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용기내어 출연해주신 만큼 다만 조금이라도 사람들의 인식과 제도가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제작했습니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굳이’ 가스 점검원들의 노동을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모두에게도 의미있는, 빈 골목을 채우는 3만 6천7백개의 걸음의 가치를 한번은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가스 점검원들에게는 여러가지 수식어가 붙어 있습니다. 이동, 방문, 여성, 감정 노동자.
어느 것 하나도 그저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부족하지만 잘 담아내고자 노력했습니다.
관심있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KBS <거리의 만찬> 이이백 피디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