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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희 Oct 30. 2023

책 안읽어주는 엄마

책읽기에 더이상 스트레스 받지말자

첫애 임신중에 영어동요도 많이 불러주고 엄마표 영어를 해봐야겠다 마음먹었다. 내가 영어를 못하니 우리 아이는 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뱃속에서부터 생후 몇 개월까지는 열심히 하다가 흐지부지 되어 버렸다. 생각해보니 새해마다 ‘올해는 영어회화 공부해야지!’ 하다가 늘 중간에 그만뒀으면서 아이에게는 뭘 바란걸까. 이제서야 내 스스로도 안되던걸 아이까지 잘하게 만들겠다는건 부모 욕심이었구나 깨닫는다. 엄마표 교육이란, 엄마가 스트레스 받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오랫동안 지속해야 가능한 것이다. 어떤 것이든 엄마가 먼저 재밌어야 한다. 내가 재미없는 육아는 힘들기도 하지만 꾸준히 하기도 어렵다. 엄마표 독서, 책읽어 주기는 어떤가?

 


육아에세이, SNS에는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책 읽어주는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같은 책을 너무 반복해서 읽어달라는 통에 지루했다거나, 밤늦게까지 계속 읽어달라고 해서 목이 아팠다거나. 책을 너무 많이 가져와서 권수를 정하고 읽는다거나. 나는 단 한번도 경험한 적 없는 일이다. 우리 아이는 왜 책을 안좋아할까.


생각해보니 남편도 나도 책을 잘 읽지 않는다. 남편이 책 읽는 모습은 연애시절부터 지금까지 단 한번도 본적이 없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는 더 하다. 틈만나면 TV나 휴대폰으로 재밌는 걸 보지, 책 근처에 가는 걸 보지를 못했다. 나도 그렇다. 필요한 내용이나 궁금한 내용이 있으면 정보를 얻기 위해 보지만, 문학이나 소설 같은건 영 관심이 없다. 그나마 육아하면서 나의 성장을 위해 책을 조금씩 보게 되었지, 그 전까진 담쌓고 살았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 재밌는 영상물을 보면서 쉬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부모인 우리의 라이프 스타일 자체가 책과 거리가 있다. 나부터 책을 잘 안보는데 아이는 책 안읽는다고 불안함 마음이 들었던 내가 우습다.


어떤 유명 육아서에 책육아는 기본 중의 기본이라면서 이런 내용이 있었다. “어릴 때 부모가 책을 읽어주지 않으면 아이들은 생존에 필요한 사고력, 이해력, 판단력, 언어 전달력, 기억력, 창의력 같은 기본적인 능력을 기르지 못한다. 이런 기초 능력 없이 학교에 들어가면 고통이 시작된다. 이해하지도 못하고 소통도 안 되는 곳에서 적어도 12년을 앉아 있어야 한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이래서 뭘 더하라고 강조하는 육아서는 신뢰가 안간다. 자신의 주장이 중요한 것은 알겠지만 무슨 책 안읽어준다고 아이가 망하고 세상이 무너지는 것처럼 엄마들을 너무 겁주고 있다. 비약이 심하다. 우리가 어렸을 때 부모님이 책 많이 읽어주셨는가? 나는 그다지 기억이 없다. 그래도 우리는 바보 멍청이로 자라지 않았다.  



사실 독서의 중요성은 ‘말해 뭐해’다. 책 많이 보면 좋은건 나도 안다. 책 좋아하고 많이 본다는 애들 얘기 들으면 ‘우리집 애들은 이래도 되나’싶다. 그런데 내 어릴 때를 생각해보면 나도 늘 책 안 좋아했다. 그냥 밖에서 노는게 훨씬 재밌었고, 학교 들어가면서 독후감 숙제를

위해서나 교과서를 읽은 기억들 뿐이다. 중학교시절 친구들 사이에서 하도 재밌다고 난리 난 ‘해리포터시리즈’를 호기심에 봤다가 딱 1권만보고 접었었다. 그것도 ‘대체 재밌는 부분은 언제 나오는거야?’라며 너무 재미가 없어서 억지로 겨우 한권 읽고 더 이상 읽지 않았다. 어떤 책을 읽어도 책의 어느 부분은 꼭 지루하게 느껴졌고, 시간 아깝다는 생각도 종종했다. 분명 이야기 책이라면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야 할텐데, 이것이 허구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 ‘어떻게 됐을까?’라는게 궁금하지 않았다.



어릴 때 부터 책 많이 읽으면 물론 좋겠지만, 책 안본다고 해서 공부 못하는 것도, 사고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내가 이과출신에다 과학교사라서, 또 책에서 깨달음을 얻기보다 밖에서 얻는 편이라 ‘책’에 대해 더 쿨한 건지도 모르겠다. 책 안 읽고 자랐어도 사는데 별 지장 못느꼈다. 책 읽는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책을 왜 읽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스스로 소신있는 생각을 할 수 있고 그것을 말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어휘력, 언어능력은 부모와 아이의 대화로 해결된다. 문해력은 엄마가 읽어주는게 아니라 아이가 글을 배우고 스스로 책을 읽어가며 해결하면 된다. 책을 읽지 않는 아이에게는 말이라는 도구가 있지 않은가. 책 읽어주는 것보다 아이와 마주앉아 대화하는게 더 도움이 된다. 그렇다고 과하게 아이에게 말 많이 하지 않아도 된다. 대화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오늘 있었던 일을 얘기하며 그때 그때 느꼈던 감정을 표현해 볼 수 있고, 아이가 궁금해하는 것에 대해 얘기 나누어 볼 수도 있다. 아이와 시시콜콜 이야기를 주고받는 그 일상 속에 더 쉬운 답이 있다.



책 읽는 즐거움을 아직 모르는 아이에게 책 읽자고 푸시하면 아이는 더 재미없는 것, 공부하는 것으로 여기고 흥미를 잃을 수도 있다. 유아기의 두뇌발달은 책보다 몸으로 놀아주는 신체활동이 더 도움된다. 엄마도 책읽는 즐거움을 스스로 깨닫지 못했으면서 남들이 책 많이 읽어주면 아이가 똑똑해질 것처럼 말하니까 자꾸 신경쓰이는 것이다.


정 책 안좋아하는 아이를 좋아하는 아이로 만들어주고 싶으면, 읽어주는 것에 스트레스 받으며 집착할 것이 아니라 흥미를 갖게끔만 하면 된다. 아이가 관심있는 내용의 책을 직접 고르게 하거나, 어쩌다 한권 읽어 달라고 하면 신나게 읽어주거나, 응가나 방귀 내용의 책만 자꾸 읽어달라고 해도 계속 읽어주면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봐야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좋아하는 부분만 읽어줘도 된다. 책을 찢어도, 책위에 그림을 그려도, 스티커를 붙이며 그냥 가지고만 놀아도 책과 친숙해지도록 잔소리하지 않는 것이다. 책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기는 때가 오면 그 때 읽으면 된다. 지금 아이는 책보다 다른 활동이 훨씬 재밌는 것 뿐이니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책이 모든 지적 능력 발달의 도구가 되는 것처럼 보여진다. 책은 유익한 것이 맞지만 대체불가한 존재는 아니다. 이미 안읽고 있으면서, 읽어줄 마음도 없으면서 불안에 떨며 고통받을 필요는 없다. 당신이 좋아하는 다른 방식으로 채우면 된다. 나도 솔직히 애들이랑 그냥 살부대끼고 뛰어 노는게 더 재밌다.


책을 통해 어휘력 좋은 똑똑한 아이로 키우고 싶다는 욕심 대신, 앞으로 아이가 자라서 삶의 지혜가 필요 할 때 책을 이용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더 바람직한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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