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10]
경기도 미술관은 2019년부터 국내 미술관 중에서는 최초로 퍼포먼스의 개념을 작품으로 수집하여 소장하기 시작했다. 2021년 3월 11일부터 지난 6월 27일까지 열렸던 전시, [몸 짓 말 CORPUS GESTUS VOX]는 그들이 수집하고 소장한 작품을 선보이는 자리이자 퍼포먼스를 '수집'한다는 것에 대한 그들의 치열했던 고민을 공유하는 장이었다. 다음 글은 전시 서문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현대 미술에서 퍼포먼스는 행위의 시간적 과정을 중시하는 예술 장르로서, 예술가의 행위를 통해 창작되는 결과물(회화작품, 조각 작품 등)을 남기는 것에 목적을 두지 않고, 작가 또는 행위자의 육체적 행동이나 행위를 통해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것에 집중한 장르다. 퍼포먼스 즉 행위 미술에서 '행위'는 순 우리말로 '몸짓-말'이다. 국어사전에서 '몸짓-말'의 뜻풀이는 다음과 같다. '음성언어나 문자언어에 의하지 않고 몸짓이나 손짓, 표정 등 신체적 동작으로 의사나 감정을 표현 전달하는 행위'라고 적혀 있다. 몸은 우리의 신체, 짓은 동작(움직임), 말은 표현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경기도 미술관은 '예술가들이 그들의 몸을 도구로 하여 짓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표현과 생각'을 수집하고자 했다. 몸짓말은 한국 관객에게 퍼포먼스를 설명하기에 적절한 용어인 듯하다. ‘몸’으로 '짓'을 하고 '말'하는 것. 그것이 퍼포먼스다.
몸짓말은 관객이 자신이 가진 것과 유사한 덩어리가 움직이는 것을 목격함으로써 무의식적으로 그 행위로 도출되는 감각을 경험하고, 자신의 신체를 이와 유사하게 움직여보게 되기 때문에 강력한 예술의 매체다. 이 경험은 퍼포머와 관객을 짧은 시간 내에 전위시키고, 퍼포머가 왜 그런 행위를 하게 되었는지 혹은 왜 저런 상황에 처했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하도록 자극한다.
전시에서 소개된 노경애 작가의 <줄자-/정류장>(2015)에서는 두 명의 퍼포머가 같은 선, 사물을 가지고 서로 다른 움직임을 해 보인다. 이 작품은 사회 속에서 사람들이 행하는 행동을 기본 개념으로 삼고, 이를 사물의 형태, 사회 속에 존재하는 기호, 공간의 구조라는 세 가지 요소로 구성한 작품이다.[1] 일상 속 행동의 신체적인 움직임을 추상적인 움직임으로 발전시킨 것인데, 사회에서 존재하는 기호에 갇혀버린 몸, 그렇지만 제약을 뚫고 행동하고, 사유할 수 있는 몸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동일한 공간에 부착된 선인데도 불구하고 한 사람은 격렬하게 행위하고, 다른 한 사람은 단순히 몇 걸음만 걷다가 바닥의 선을 떼어버리고 다른 선을 붙인다. 일상의 행위는 하나의 물건을 두고도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데, 우리는 대개 어떤 상황, 어떤 순간에서 이렇게 행동하도록 기대받고, 또 어떤 물건은 꼭 이렇게 사용하도록 암묵적인 요구를 받고 있다. 꼭 그래야만 하는가? 우리는 알게 모르게 그저 익숙한 방식대로, 가르침 받은 대로 행동하지만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를 인지해야만 타인의 행동 역시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위 내용은 필자가 작품을 보면서 했던 생각을 옮겨 적어본 것이다. 작가는 신체의 움직임을 하나의 추상적 조형 언어로 변환했다. 추상적 언어로 연결 지어지는 작품 안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추상 언어를 개발하고, 타인의 추상 언어를 관찰하기 시작한다. 한 번도 몸을 그런 방식으로 움직여본 적이 없는 관객이, 자신의 몸을 움직여 사유하도록 하는 힘이 이 작품엔 강력히 남아있었다.
작품이 상영된 벽 앞에는 일상의 도구들이 놓여있었다. 퍼포먼스 속 선들을 연상시키는 색색의 테이프들도 바닥에 붙어 있었다. 눈앞에 놓인 도구들은 퍼포먼스가 이루어졌던 그 순간의 현장성으로 관객들을 초대하며, 관객은 더욱 직접적으로 행위하도록 유도된다.
한편 몸짓말이 가지는 강력한 또 다른 힘은 관객이 그들의 행위를 멈출 수 없다는 데서 온다. 전시장에 들어와서, 그 작품을 보지 않겠다고 떠나지 않는 이상, 관객은 그들이 하는 몸짓말을 지켜봐야 한다. 몸에 상처를 내고 있거나, 누군가에게 물리적인 공격을 당하고 있거나, 비명을 지르고 있다고 해도 관객은 이를 멈출 수 없다. 그저 지켜봐야 하며 때론 방관자라고밖에 볼 수 없는 위치에 서게 된다. 이는 사회에서 실제로 관객이 지닌 태도를 발각시키기도 하고, 가시화되지 않는 아픔과 고통, 이야기를 즉각적으로 직시하도록 만든다.
장지아 작가는 <작가가 되기 위한 신체적 조건 - 모든 상황을 즐겨라>(2000)에서 누군가가 뱉는 침과 계란을 맞는다. 그 누군가는 또한 작가의 머리채를 쥐고, 흔들고, 가격한다. 하지만 이런 폭력적인 상황에서도 작가는 웃음을 잃지 않는다. 제목에서 암시되 듯, 작가는 작가가 '되기 위함'에 동반되는 폭력과 사회의 시선을 받아내고, 보여주는 매체로 자신의 몸을 사용한다. 작가뿐만 아니라 모든 '~ 되기'에 수반되는 비가시적 폭력들이 주위를 어떻게 맴돌며 반복되고 있는지를 상기시킨다. 이 과정에서 작품을 보는 관객은 '나'는 무엇이 되고자 했으며 어떤 폭력을 당했는지, 그리고 자신이 누군가의 '~되기' 과정을 폭력적으로 대하지 않았는지를 순환적으로 생각하게 한다. 무자비한 화면 속 손을 멈추고 싶으나 관객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으며, 그저 화면 속 작가가 더 이상 아프지 않기를 조마조마하게 빌어볼 뿐인 것이다.
퍼포먼스는 결국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작가가 자신의 언어를 통해 자신이 전하고 싶은 것, 관객과 이야기 나누고 싶은 것을 전달한다. 그 수단이 몸일 뿐인 것이고, 몸은 관객에게 특정 주제에 관해 적극적으로 생각하도록 이끌어 낼 수 있는 효과적인 매체다. 그렇기에 이 매력적인 분야를 어떻게 소장하고 보존할 것인지는 지속적으로 고민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전망된다.
그런 면에서 경기도 미술관의 퍼포먼스 개념 수집 및 소장은 매우 의미 있는 시도로 보인다. 이는 많은 한국 작가들의 몸짓말이 지닌 의미가 시간성에 구애받지 않고 온전히 보존될 수 있는 포문을 연 것이다. 해당 전시에서는 퍼포먼스 아트의 소장과 개념에 관한 연구 자료들을 소개하는 아카이브 룸 [라이브 – 죽느냐 사느냐 Live : Dead or Alive]도 함께 소개되었다. [퍼포먼스의 이름들], [퍼포먼스의 소장], [퍼포먼스 사진의 세 가지 방법], [이미지 벽 : 원본과 복제]의 섹션으로 구성된 아카이브 룸은 경기도 미술관의 실험적 시도를 보여주고, 그 과정에서 도출된 질문들을 관객에게 던진다. 퍼포먼스는 과연 휘발성 짙은 장르적 특성을 이겨내고 안정적인 아카이브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인가. 앞으로 지켜볼 만한 부분이다.
* 참고/인용
[1] <몸짓말 CORPUS GESTUS VOX> 작품 소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