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13]
유리는 ‘규사, 석회, 소다 등을 고온으로 녹인 후 냉각하면 생기는 투명도가 높은 물체’다. 화산 유리(Volcanic glass)처럼 자연적으로 만들어지는 유리도 있지만, 일상에서 접하는 유리는 고온과 냉각을 거쳐 인공적으로 만들어진다. 유리의 역사를 추적하려면 꽤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가장 이른 유리의 흔적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발견된다. 정확히 통일된 시점을 알긴 어렵지만, 아마 기원전 3000년경에 유리가 해당 지역에서 처음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하며, 이후 로마, 페르시아를 포함한 지중해 연안과 서아시아 지역에서 활발히 제작되었다. 기원전 1세기에는 유리 제작 기법의 혁신이라 불리는 '대롱 불기 기법(blowing)'이 팔레스타인 지역 장인들에 의해 개발되었다. 이 방법을 통하면 단 몇 분 만에 간단한 유리 용기를 제작할 수 있었으므로 이때부터 유리는 서민들의 생활 용기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동양에서도 유리 공예품이 자체적으로 제작되었는데, 아무래도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실크로드 교역품이다. 고대 한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유리 유물은 아마 경주 황남대총에서 발굴된 봉수(鳳首)형 유리병일 것이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던 상태의 유물을 복원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게 흐르는 유리병의 곡선과 은은하게 감도는 푸른빛만은 변치 않은 채 고스란히 남아 있어 현대인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유리는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도구를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만 쓰이지 않았다. 스테인드 글라스(Stained glass)는 유리의 실용적 사용이 장식 공예로 넘어가는 경로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다. 무게 지탱을 위해 두꺼운 벽이 필수였던 로마네스크 건축에선 큰 창을 만들기 어려웠지만 첨두아치와 늑골 궁륭, 공중 부벽 등의 요소로 무게 지탱이 보다 쉬워지면서 고딕 양식기 교회 건축에서는 큰 창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중에서 작은 색유리 조각들이 조합된 창이 바로 스테인드 글라스다. 이 창의 시작은 성스러운 빛의 효과라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이러한 창이 만들어진 데는 기술력 부족이 주요 원인이다. 당시 커다란 창에 맞는 유리 한 판을 제작할 수 있는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작은 유리를 여러 개 붙여 창을 만들 수밖에 없었고, 이 과정에서 이런 아름다운 창이 탄생한 것이다.* 중세 스테인드 글라스에 성경의 이야기가 새겨졌기 때문에 중세인들에게 이는 귀로 듣는 말씀과는 또 다른 형태의 ‘성경’으로 인식되었다. 스테인드 글라스의 정수라고 불리는 프랑스 생트 샤펠 성당(Sainte-Chapelle)에는 무려 1113개의 성경 에피소드가 새겨져 있다. 색유리로 찬란하게 번지는 빛은 교회라는 공간을 지상의 천국으로 만들기에 충분한 위력을 지닌 것처럼 보인다.
유리만큼이나 시대에 따라 그 모습을 적절히 변화하며 새로운 성격을 띠는 재료도 많지 않을 것이다. 생활용품이나 장식의 차원에서 주로 사용되던 유리는 확실히 수정궁 건축을 거치며 ‘현대성’을 표상하는 재료로 자리매김한 듯하다. 19세기 후반, 20세기 초반 미술의 영역에서도 공예의 재료와 기법이 작가들에게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는 소재가 되기 시작했는데, 여기서 마르셀 뒤샹의 <큰 유리>를 꺼내볼 수 있을 듯하다. 작품의 내용이나 논리를 차치하고서, 작품의 형식, 즉 회화라고도 할 수 있고 조각이라고도 볼 수 있을 이 작품이 유리를 통해 구현되고 있음에 주목해보자. (작가는 이 작품을 두고 그림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지연’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필라델피아 미술관은 이 작품의 시작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In the fall of 1912, Marcel Duchamp abandoned conventional painting and set about inventing new ways of working as an artist. Soon he was planning The Large Glass, and in 1915 he embarked on the eight-year process of fabricating the monumental construction.’ 그의 대표 작품 <샘>이 1917년에 공개되었으니, <큰 유리>의 유리 역시 소변기와 마찬가지로 전통을 벗어난, 그만의 방식을 만들기 위해 선택된 재료라고 볼 수 있겠다. 유리가 작품 보관 용도라는 보충적 성격이 아니라 엄연히 예술의 주요한 형식으로서 전시장 안에 입성한 것이다.
순수 미술 개념의 등장으로 소외당하던 공예의 재료와 형식은 이제 작가 자신이 생각하는 미와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는 하나의 방식으로서 어엿이 자리 잡았다. 지난 2020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한국 실험미술의 대가로 불리는 이승택의 회고전 <이승택, 거꾸로 비미술>이 개최되었는데, 이때 그의 유리 작품(glass works)이 소개되었다. 미술 제도에서 통용되는 조각의 문법을 깨기 위해 1950년대부터 일상의 재료로 다양한 조형적 실험을 해 온 그의 손에서 탄생한 유리 ‘조각’은 자유분방하게 움직이는 공기의 흐름을 부드러운 바람의 형상으로 응축시켜 인공적인 것이지만, 자연과 ‘재미있게’ 어우러진다. 다른 예로 원주민 혈통인 코카타/누쿠누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지닌 호주의 작가 요니 스캐스의 작품을 보자. 그는 유리라는 매체를 통해 원주민의 역사를 자신의 작품에 녹여내는데, 그가 주로 사용하는 유리 오브제는 원주민들이 즐겨 먹던 머농(murnong)이라는 식물에서 착안했다.** 유리 자체의 특질 때문에 빛을 받으면 아름답게 반짝거리는 이 오브제는 원주민들의 이야기와 지혜를 담아내는 동시에 그들이 흘려야 했을 눈물과 수많은 죽음을 역설해낸다.
유리는 ‘무한한’ 물질이다. 그 자체도 흐르는 액체이지만 동시에 고체라는 성질을 보이기 때문에 유리의 정체성은 고정되지 않는다. 다양한 변주 가능성을 지닌 유리는 수많은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으니 미의 영역에서 유리란 반짝이는 아름다움 그 이상의 역할을 해낸다. 이 유리의 여정이 어떤 시점에, 또 어떠한 변화를 마주하며 우리의 곁에 다가올지 기대해보며 글을 마친다.
[참고자료]
*난생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3, 양정무
**유리 공예로 유명한 현대 미술가 요니 스캐스 Yhonnie Scarce, 네이버 디자인 프레스(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