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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을의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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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희 Oct 18. 2018

을의 연애 번외 편

주환아 우린 인연이 아니었던 거야.

복희와 주환은 헤어졌다. 이번엔 달랐다. 정말로 헤어졌다. 하지만 이후 몇 달 동안 주환은 계속 전화를 걸었고, 복희는 받지 않았다. 중간에 거절버튼을 누르지도 않았다. 그가 알아서 끊을 수 있도록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새벽에 진동이 울려 놀라서 깬 그녀가 주환의 전화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핸드폰을 집어던지기도 했다. 나중에 그녀는 주환의 번호를 아예 차단했다. 이후로는 전화가 오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그녀에게 소중하지 않은 존재가 되었다.


그녀는 예전처럼 슬퍼하지도 울지도 않았다. 그와 드디어 제대로 헤어졌다는 사실에 행복해했다. 과거 주환과 헤어졌을 때와는 달랐다. 다른 남자가 관심을 보이거나 마음에 드는 남자가 생기면 아무렇지 않게 만났다. 그러다 복희는 자연스레 새로운 연애를 시작했다.


주환은 몇 달 만에 문자를 보냈다.


‘전화 한 통만 하자’


새벽에 문자가 왔다는 알람을 듣자마자 복희는 주환이 보낸 문자라고 확신했다. 그렇게나 이른 아침은 스팸 문자도 오지 않을 시간이니까. 문자를 본 그녀는 답장했다. 확실하게 끝내고 싶은 마음이었다.


‘무슨 전화?’

‘통화 한번만 하자고’

‘너 술 마셨니?’

‘아니’

‘정말 안 마셨어?’

‘응 안 마셨어’


복희는 통화기록을 눌렀다. 그녀가 모르는 새 수신차단 된 목록에는 주환의 전화 기록이 쌓여있었다. 전화를 걸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지도 않고 바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응, 무슨 일이야?’


우울에 찌든 주환과는 달리 복희는 생기가 넘쳤다. 주환도 느꼈는지 “넌 왜 그렇게 생기 발랄하냐?”며 물어봤다.


그녀는 ‘내가 생기발랄하면 안 될 이유가 없는 거잖아?’라고 되받아쳤다.


‘복희야, 너 목소리가 너무 듣고싶었어’

‘그럼 이제 된거지? 내 목소리 들었으니까 이만 끊자.’

‘왜 그렇게 나한테 매정하게 굴어?’

‘내가 너한테 좋게 해줘야 할 이유는 없는 거잖아’

‘그래도..’

‘할 말 있으면 빨리하고 끊자. 나 나가봐야 돼’

‘복희야, 난 정말 네가 너무 싫어. 근데 자꾸 생각 나. 미치겠어.’

‘점점 잊혀질거야.’

‘그래? 넌 나 잊었어?’

‘응, 당연하지. 나도 예전엔 너처럼 힘들었거든? 근데 지금은 아니야. 그러니까 너무 걱정마 다 잊혀지더라.’

‘나 일 구했어.’

‘응, 그래 축하해.’

‘돈도 많이 모았는데..’

‘그래 돈 많이 모아서 좋겠다. 그걸로 너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 너 게임 캐시 충전하는 거 좋아하잖아. 그거 많이 하면 되겠네.’

‘왜 말을 자꾸 그렇게 해?’

‘내가 뭘. 사실인데.’

‘나 일하면서 여자들도 많이 꼬여.’

‘아 진짜? 정말 잘됐다. 그 중에 한 명 사귀면 되겠네.’

‘근데 사귀고 싶진 않아.’

‘네 스타일이 아닌가 보네. 나중에 정말 예쁜 여자 생기면 바로 연애하고 싶을거야.’

‘그 여자도 예뻐.’

‘그럼 네가 아직 연애할 준비가 안 됐나 보다. 좋은 여자 만나. 너 설마 나 붙잡으려고 전화한 거 아니지?’

‘전혀 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그냥 자꾸 네가 생각났어. 보고 싶었어. 그게 다야.’

‘그래, 이제 통화 했으니까 다시는 전화 걸지 말고 보고 싶어도 너 알아서 해결해.’

‘알았어. 근데 복희야. 요새 아빠랑은 사이 괜찮아? 최근에도 자주 싸워?’


질문을 듣자마자 복희의 눈엔 눈물이 고였다. 대답을 하면 눈물이 흐를 것 같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마음을 진정시킨 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을 이어갔다.


‘아휴, 당연하지. 자주 싸워. 아마 죽을 때까지 이러고 살 것 같아.’


하필 현재 만나고 있는 남자친구와 사이가 틀어졌을 때 이런 질문이라니. 화장대 앞에 앉아있던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그녀 자신의 사정을 제일 잘 알고 있는 남자는 주환이라는 사실이 서글퍼졌다. 현 남자친구에게는 전혀 말하지 않은 사실을 이미 끝나버린 사이인 주환이 더 잘 알고 있다니.


주환과 복희가 잘 만나고 있었을 때, 그는 집안 사정을 알고도 그녀를 떠나지 않았다. 헤어져야 할 이유가 수두룩한데도 그녀가 주환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였다. 자기의 약점을 이해해줬으니까. 그녀에게 그 점은 꽤나 크게 작용했다. 복희가 주환과 헤어진 후 다시는 남자친구에게 자기의 집안 사정을 말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또 말했다가는 헤어져야할 때 돌아서지 못할까봐. 약점을 공유한 관계는 과할 정도로 깊어져버리니까. 복희가 좋아하는 건 현재 만나고 있는 남자라도 깊은 관계는 주환이었다.


하지만 주환에겐 티내지 않았다. 주환이 다시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지 못하도록 마무리를 지어야만 했다.


‘주환아, 너 하는 일 다 잘 됐으면 좋겠어. 나 만나느라 고생 많이 했어. 잘지내.’

‘고생은 무슨. 고생은 네가 했지.’

‘나 이만 끊어야할 것 같아. 잘지내. 우리 다시는 연락하는 일 없도록 하자.’

‘그래, 복희야 너 하는 일 다 잘 되길 바랄게.’

‘응.’


주환에겐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걸어본 미련이었지만 복희에겐 이미 오래 전 끝나버린 이별이었다. 그에겐 슬펐지만 그녀에겐 담담했다. 둘은 사귀는 중에도 헤어진 후에도 마음의 크기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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