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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을의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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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희 Jul 18. 2019

을의 연애 번외 편 2

주환이가 여자 친구가 있었어요?

복희는 주환과 헤어진 후 이별에 대해 꽤나 담담해졌다. 그녀는 주환에게 미친 사람처럼 매달렸지만 그와의 연애가 끝난 이후로는 이별을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까지 변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녀는 연애에 단호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복희는 기나긴 을의 연애에서 '조금이라도 아니다 싶으면 바로 정리하자'라는 깨달음을 얻은 듯했다. 상대가 작은 거짓말이라도 하면 그녀는 연락하지 말라는 말을 끝으로 상대의 모든 연락을 받지 않았다. 상대가 바람을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상대에게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관계를 정리했다. 툭하면 잠수를 타는 상대에겐 '이 사람은 나에게 마음은 딱 이 만큼이구나'라는 생각으로 똑같이 연락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쉽게 정리를 하다 보니 그녀는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간 동안 네 명은 족히 만났다.


이런 식으로 연애를 하던 그녀는 결국 꽤나 좋은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주환이와는 굉장히 다른 사람이었다. 결국엔 그녀가 이 사람을 만나기 위해 그동안 괴로웠을까 싶을 정도로 새로운 남자 친구는 복희를 많이 배려했다.


하지만 주환과의 연애가 너무 길었던 탓인지 복희는 가끔씩 자기도 모르게 그를 떠올리곤 했다. 좋은 기억보단 나쁜 기억이 훨씬 많았지만 그가 떠오를 때면 그녀는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을 느끼곤 했다.


가끔은 주환이 전화를 걸면 받기도 했다. 하지만 죄책감이 들어 주환의 연락처를 차단했다. 그러다가도  주환이 떠오르면 차단을 해제했다. 그러기를 반복하던 그녀는 주환과의 모든 추억을 정리하고 다시 그의 연락처를 차단했다.


차단한 덕에 더 이상 주환의 전화는 울리지 않았지만 연락 기록엔 차단된 상태로 그의 번호가 남아있었다. 그래도 복희는 더 이상 그에게 전화를 걸거나 문자를 보내지 않았다.  그녀는 자기가 그에게 답장을 하면 영원히 그와 끊어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복희는 새로운 남자 친구와 떡볶이를 먹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 있던 휴대폰이 징징거렸다. 그녀는 포크를 내려놓고는 방해받았다는 표정으로 휴대폰 액정을 쳐다봤다. 저장되지 않은 모르는 번호였다.


"손님인가? 봄아, 나 전화 좀 받을게."

전화를 받은 복희는 미간을 찌푸리며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 맞는데요. 그러니까, 누구신데요?"

복희쌀쌀맞은 말투에 그녀를 마주 보고 앉아있던 봄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입모양으로 '왜 그래?'라며 물어봤다.


"하.., 근데 왜 저한테 전화를 거세요?"

그녀는 한숨을 내쉬더니 어이없다는 듯 전화를 건 상대에게 질문했다. 그러더니 그녀 앞에 앉아있는 남자 친구 얼굴을 한 번 쳐다보고 입모양으로 '먹고 나와'라고 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분식집을 나가버렸다.


"최주환이 여자 친구가 있었어요? 여자 친구였던 거예요? 아니면 지금도 사귀는 사이?"

복희는 짜증 난다는 말투로 물었다.


"그것 때문에 연락드렸어요. 저도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저는 최주환이 여자 친구 있는 줄도 몰랐네요. 나한테 불과 몇 주전까지만 해도 잘해보자고 했거든요. 새로 만나던 여자랑 정리했다고. 그쪽이랑 만날수록 제 생각이 나서 끝냈다고 했었어요."

퉁명스럽게 말하던 복희도  어느샌가 그녀의 질문에 술술 답하고 있었다. 얼굴도 모르는 여자에게 동질감을 느낀 듯했다.


"아 정말요? 너무 충격적이네요. 아니 최주환이 핸드폰을 바꾼 지 얼마 안 됐는데 또 복희 씨 번호가 찍혀있더라고요."


"그러셨구나. 걔 저한테 계속 연락했어요. 9월, 10월, 11월, 12월, 1월, 3월, 4월, 5월, 그리고 바로 몇 주전까지도요."


"저랑 싸울 때마다 복희 씨한테 연락한 것 같아요. 어쨌든 전화해서 정말 죄송해요. 그런데요 제가 연락한 거 비밀로 해주세요. 최주환, 걔 사람 구질구질하게 만드는 거 되게 잘하는 거 아시죠?"


"그럼요, 잘 알죠. 절대 말 안 할게요. 최주환이랑 만나는 거 잘 생각해보세요."


"네. 근데 혹시 복희 씨랑도 만나면서 여자 문제 자주 있었나요?"


질문을 들은 복희는 티가 나지 않게 웃었다. 그러곤 대답했다.

"저야 뭐, 하도 오래 만났으니까요. 걔 여자 좋아해요. 원나잇도 좋아하고요. 조금만 싸워도 클럽 가요. 여하튼 선택 잘하세요."


"아..., 네. 전화드려서 정말 죄송해요."


"괜찮아요."


주환과의 연애가 좋은 기억이었든 나쁜 기억이었든 경험이라 여겼던 복희는 그마저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주환과의 인연의 끝을 놓지 못해 사귀지도 헤어지지 않은 상태로 연락을 이어갔던 시간을 합하면 5년이 넘는 기간이었다. 그런 5년을 도둑맞은 기분이었다. 얼굴도 모르는 주환의 새로운 여자 친구와의 통화 이후 복희의 감정은 롤러코스트를 타는 듯했다.


그녀의 생각도 감정처럼 머물러 있지 못하고 자꾸만 움직였다. 어느 날은 추억까지 더럽혔다며 주환을 욕했다. 어느 날은 왜 대체 자기에게 전화를 건 거냐며 얼굴도 모르는 그 여자를 원망했다. 어느 날은 얼마나 힘들었으면 전화를 했겠냐며 그녀를 걱정했다. 어느 날은 주환이는 왜 새로 만난 여자에게도 복희에게도 상처만 주는 거냐며 짜증 냈다. 어느 날은 옆에 있어주는 여자 친구에게 잘해주지 못하는 주환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어느 날은 둘은 헤어졌을까 아니면 만나고 있을까 생각했다. 어느 날은 확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주환과의 일은 둘이 풀 것이지 왜 굳이 내게 전화를 걸어 나를 힘들게 하냐'라고 따질까 생각했다. 어느 날은 주환에게 전화를 걸어 '너는 대체 처신을 어떻게 하고 다니는 거냐. 나랑 사귀면서도 그러더니 헤어지고 나서 까지 거짓말을 한 거냐'며 화를 낼까 생각했다.


생각의 생각은 꼬리를 물고 복희를 혼란스러움 속에서 놓아주지 않았다. 혼란스러운 감정은 결국 그녀가 핸드폰에 주환의 번호 열 한자리를 누르게 만들었다. 누른 번호를 한참 쳐다보던 그녀는 "여기서 연락하면 내가 지는 거야."라며 번호를 지웠다.


배신감에 사로잡힌  그녀는 주환과의 이별은 정말로 잘 한 선택이라 생각했다. 그러더니 "역시,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야."라는 생각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떠올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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