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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을의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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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희 Aug 24. 2022

을의 연애 16

그래 너 말대로 헤어지자 주환아



복희와 주환은 동네에 있는 곱창집에 앉아 주문을 했다. 주환은 오늘도 어김없이 맥주를 주문했다. 복희는 평소 술을 좋아하지 않아 잘 마시지 않았다. 그래도 매번 주환은 복희 앞에서 당연하게 술을 마셨다. 심지어 복희에게 술을 좀 마시라고 화를 냈다. 마시지 않을 거면 자기 술잔을 채우라고 강요했다. 어이없는 요구에 그녀는 주환을 빤히 쳐다봤다.


복희의 눈빛은 평소와 달랐다. 주환이 하는 모든 행동이 싫었다. 술을 따르라는 요구도 매번 술을 취할 때까지 마시고 술주정을 부리는 일도 돈도 없으면서 매번 당당하게 먹고 싶은 걸 다 주문하는 태도도 모든 게 싫었다. 그의 행동이 싫은 게 한두 가지가 아니면서도 헤어지지 못하는 자신이 더 싫었다. 만나도 만나지 않아도 스트레스만 쌓이는 관계였다. 그걸 알면서도 매번 놓지 못하는 건 그녀였으니까.


갑자기 주환의 핸드폰이 울렸다. 전화를 받은 주환은 여자 친구와 있다며 다음에 보자고 답했다. 가만히 쳐다보던 복희는 주환에게 누구냐고 물었다.


"군대 후임"

"왜?"

"만나자는데 여자 친구랑 있다고 다음에 보자고 했어."

평소 같으면 좋아했을 대답이었겠지만 그날따라 복희는 그 대답이 거슬렸다.


'웃기고 있네. 자기가 언제부터 나랑 하는 데이트에 최선을 다했다고? 항상 나보다 다른 것들이 우선이었으면서' 속으로 혼자 비아냥 댄 복희는 눈을 흘기며 주환의 핸드폰을 빼앗았다.


"저 주환이 여자 친군데요. 같이 놀래요?"

"아 근데 주환이 형이 오지 말라고 해서요."

"괜찮아요. 같이 놀아요. 어디서 만날까요?"

"제가 그쪽으로 갈게요."

"네. 다시 주환이 바꿔드릴게요."


바꿔준 전화를 끝낸 주환이는 복희에게 어이없다는 듯이 왜 그랬냐고 따졌다. 복희는 나도 더 이상 너랑 둘이 노는 건 그렇게까지 재미가 없어서 그냥 한 번 불러봤다고 대답했다. 그런 대답이 나올 거라곤 예상을 못 했는지 주환이는 당황스러워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환이 후임이 도착했다. 그의 이름은 준수였다. 복희는 준수가 혹시나 어색해할까 챙겨줬고 그런 모습을 본 주환은 남자에 미친년이라며 그날마저도 복희에게 헤어지자고 했다.


사건은 이태원에 있는 펌킨에 들어가자마자 일어났다. 계단에서 내려오자마자 복희는 주환에게 준수는 어딨냐고 물어봤고 그 질문을 들은 그는 복희를 엄청 세게 밀며 걸레 같은 년이라고 소리쳤다. 노랫소리가 그렇게 시끄럽게 나오는 클럽이었지만 그의 욕하는 목소리가 컸던 건지 여자 친구를 가차 없이 미는 행동 때문이었던 건지 클럽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복희를 쳐다봤다. 항상 듣고 보던 행동이라 그런지 그녀는 미동도 없었다. 주환은 복희를 밀어버리곤 준수랑 재밌게 놀라고 비아냥대며 나가버렸다.


원래라면 울고불고 주환을 쫓아갔을 텐데 복희도 집에 가야겠다 생각하곤 밖으로 나갔다. 밖에 있는 주환을 마주쳤지만 상대도 하지 않고 택시를 잡으려 걸었다. 그런 모습을 본 주환은 복희에게 다가가 헤어지자고 말했다. 주환의 이별 한마디면 이성을 잃고 붙잡았을 텐데 복희의 표정은 평화로웠다. 그녀는 알겠다고 말하곤 택시를 잡았다. 평소와 다른 반응에 주환은 그녀를 붙잡았지만 복희는 그를 뿌리치곤 택시에 올라탔다. 이별이고 나발이고 집에 가서 빨리 씻고 잠이나 자야겠다 생각한 그녀는 핸드폰을 쳐다봤다. 시간은 또 언제 이렇게 흘렀는지 벌써 새벽 3시 반이었다. 한숨을 길게 내뱉은 복희는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마자 핸드폰 진동이 울려댔다.


그녀는 주환과 싸울 때마다 지겹도록 그의 연락처를 삭제하고 추가하기를 반복했었다. 그런 행동도 의미 없다 느꼈는지 어느 날부터는 복희의 핸드폰엔 그의 번호가 아예 저장되어 있지 않았다. 진동이 울려 쳐다본 화면엔 4프로밖에 남지 않은 배터리와 그의 핸드폰 번호 열 한자리가 떠 있었다. 별로 길게 생각하지도 않은 그녀는 빨간 버튼을 왼쪽으로 끌어당겨 전화받기를 거부했다. 주환이가 복희의 전화를 거절하는 일은 많았어도 그녀가 주환이의 전화를 거절하는 일은 처음이었다. 이 뒤로도 전화가 계속 왔지만 복희는 계속 거절 버튼을 눌렀다. 전화로는 연락이 닿지 않자 주환은 그녀에게 카톡을 보냈다.


-전화받아라

-주환아 헤어지자고 너가 먼저 말했고 그렇게 해줄게 연락하지 마

-아니 우리 안 헤어졌어

-하.. 진짜 지겨워 야 이제 연락하지 마

-너 지금 다시 안 돌아오면 나 너네 집 찾아간다

-니 마음대로 해


복희는 집에 찾아오겠다는 주환의 말을 별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고 그대로 핸드폰은 꺼졌다. 택시에서 내린 그녀는 집 현관문 쪽으로 걷고 있었다. 누군가가 그녀의 집 현관문에서 호출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복희는 별생각 없이 쳐다보며 다가갔다. 술에 찌든 주환이가 새벽 4시에 그녀의 집 901호에 호출을 하곤 서 있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는 호출 취소 버튼을 눌렀다. 그러곤 바로 그의 뺨을 계속해서 때렸다.


"야 새벽 4시에 부모님 있는 집 초인종을 눌러? 너 미친 새끼야?"

"아니 복희야. 난 너랑 안 헤어져."

"개소리하지 말고 꺼져. 헤어지자고 한 건 너고 나도 이제 더 이상 너랑 못 만나"

"아 제발 나 너랑 안 헤어질 거야. 너네 부모님 만나서 그동안 내가 잘못한 거 다 말하고 용서받고 다시 시작할 거야."

"누가 누구랑 다시 시작을 해? 진짜 개소리 그만하고 꺼져라."


계속 실랑이를 벌이다가 복희는 이대로면 집에 들어가서 못 쉴지도 모르겠다 싶었는지 헤어지지 않을 테니 일단 제발 눈앞에서 사라져 달라고 부탁했다. 물론 마음에도 없는 소리였다.


"야 그럼 안 헤어질 테니까 일단 꺼져."

"거짓말이잖아."

"거짓말 아니니까 제발 가라. 안 가면 진짜 헤어진다."

"거짓말이잖아!!!!!"

"하.. 씨발 진짜.. 가라고 제발"

"복희야 우리 오늘 같이 자면 안 돼?"

"지랄하지 말고 꺼지라고. 아 그냥 헤어져"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그동안 그녀가 주환에게 들었던 말들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 들었던 그대로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주환은 본인의 부탁이 통하지 않자 갑자기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던지곤 그럼 이 길바닥에서 자겠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댔다. 이렇게 계속 시끄럽게 하다간 부모님이 내려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복희는 주환을 설득했다.


"그럼 주환아 내가 너 집에 데려다줄게. 일단 제발 가줘. 나 너무 피곤해"

"우리 그럼 안 헤어지는 거야?"

"응."


큰길로 나가 택시를 잡은 그녀는 택시 기사에게 주환의 집 주소를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택시에서 내린 복희는 본인의 예상과 다른 그의 태도에 이성을 잃었다.


"복희야. 우리 같이 자면 안 돼? 우리 모텔 가서 같이 자자."

"아니 왜 말이 달라? 씨발 내가 너 집까지 데려다줬으면 들어가서 자라고 진짜 죽여버리고 싶다. 내가 널 왜 좋아했지? 진짜 뒤졌으면 좋겠어."

"너 이대로 가면 나랑 헤어질 거잖아."

"네가 조용히 집으로 가면 안 헤어질 테니까 제발 들어가서 자."

"아니 나 너랑 오늘 같이 있고 싶다고!!"

"야 아까 이태원에서 나보고 걸레 같은 년이라고 남자에 미친년이라며? 소름 끼쳐. 내가 너랑 어떻게 같이 자?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해대지 말고 제발 좀 꺼져"

"싫어. 난 너랑 오늘 같이 있을 거야"

"그럼 어쩔 수 없네. 그 새벽에 초인종 눌러댄 건 네가 먼저 우리 부모님 무시한 거다."


계속되는 다툼질에 복희는 주환의 핸드폰을 빼앗곤 그의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 복흰데요. 집 앞인데 좀 나와보세요."

늦은 새벽에 전화를 거는 모습을 보고 주환은 미쳤냐며 또 싸움을 걸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엄마가 나왔다.


역시 모전자전. 나오자마자 어처구니없는 말들을 그녀의 귓가에 나열했다.

"복희야. 너네는 왜 맨날 싸우니? 난 너네가 잘 지내면 결혼시켜주려고 했었는데 진짜 안 되겠다."

복희는 4년이 넘는 기간 동안 그의 엄마가 이상한 소리를 해도 무리한 부탁을 해도 기분 나쁜 티를 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항상 어머님이라고 부르던 호칭도 그날은 달랐다.


"아줌마!!!! 방금 뭐라 그러셨어요? 아줌마도 딸 낳아서 키우는 입장이면서 어디 남의 귀한 집 딸한테 그따위로 말해요? 미쳤어요? 아줌마 딸 최주환 여동생이 최주환이랑 똑같은 이따위 남자 데려와서 결혼한다 그러면 얼씨구나 좋다 하고 결혼하라고 할 수 있어요? 이런 개차반인 새끼 만나준 나한테 감사해야지. 아줌마 그동안 4년 동안 가진 것도 없고 개념도 없는 이런 놈 만나 준거에 감사하세요. 말 함부로 하지 마시고. 하 참 누가 누구랑 결혼을 시켜줘. 우리 엄마 아빠 들으면 어이없어하시겠네."

"뭐? 너 뭐 라그랬니? 어머 얘 웃긴다. 야 너 집으로 가!"

"네, 갈 거고요. 아줌마 집안으로 보나 사람으로 보나 제가 최주환보다 못한 거 하나도 없어요. 누가 감히 결혼을 시켜준대. 안 봐도 우리 부모님이 반대해요 이런 놈은. 그리고 막말로 아줌마 혹 나한테 떼서 좋았던 거 아니에요? 그리고 새벽에 남의 집 초인종 누르는 거는 좀 아니지 않나요? 제발 집으로 가 라그래도 안 가고. 아들 교육 좀 시키세요. 야 최주환 너랑 나랑은 진짜 끝이야. 다신 보지 말자."


복희는 주환을 만나는 동안 연애가 아닌 이별 연습을 해왔던 건지 이별의 끝자락에 가까워졌을 땐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씩씩대며 집에 도착한 그녀는 인터폰을 아예 꺼버렸다. 씻고 나온 그녀는 주환이 보내 놓은 톡을 무시하고는 그대로 잠에 들었다. 늦게 잠에서 깨 핸드폰을 확인한 복희는 한숨을 쉬었다. 다 잘못했으니까 제발 만나 달라는 톡이 쌓여있었다. 주환은 그날 또다시 복희의 집에 찾아가 인터폰을 눌러댔으나 신호가 가지 않아 그녀의 집 주변 피시방에서 그녀가 깰 때까지 기다렸다. 헤어지자고 먼저 말해놓고 못 헤어지겠다고 화내고 다시 그녀가 잡힌 것 같으면 또다시 복희를 막 대했다. 그렇게 연인이 아닌 것도 아니고 연인이 맞는 것도 아닌 사이가 지속됐다. 한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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