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 중반을 바라보는 골드미스, 모 디자인 회사의 대표, 한강뷰가 시원하게 펼쳐지는 집의 주인, 서울에 3채의 건물을 가진 건물주. 화려한 타이틀을 가진 가까운 선배가 얼마 전 나에게 한 말이다. 선배는 요즘 들어 부쩍 늘어난 우울감의 원인을 알 수 없어 무엇이 자신을 우울하게 하는지에 대해 긴긴밤 고민했다고 했다. 선배가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의외의 것이었는데 그건 바로 '결핍의 부재'였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자신을 움직이게 하고 성장하게 한 건 '결핍'이었노라고 이야기했다.
'앵? 무슨 말이야 돈, 시간, 명예 다 가진 사람이 결핍이 없어 우울하다니... 나 놀리는 건가?'
결핍 투성이인 내가 듣기엔 '역시.. 가진 자의 여유 군...'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인생 참 허무해.." 한 마디 덧붙이는 선배의 표정을 보니 진심이었다.
앞서 삶을 살아 낸 선배를 보며 인생을 배운다. 선배와의 대화 후에 부족해서 불편하다고만 생각했던 '결핍'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결핍'은 뭔가 부족한 상태이다. 사전적 의미는 '있어야 할 것이 없어지거나 모자람' 사전적 의미 그대로, 있어야 할 것이 없기 때문에 채우려는 욕구가 생긴다.
반면 '궁핍'은 가진 게 없는 상태이다. 사전적 의미는 '몹시 가난함' 가진 게 아무것도 없어 희망이 없고, 있는 거라곤 좌절뿐이다.
요즘 우리 세대가 말하는 흙수저는 '궁핍'의 의미로 보이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결핍'에 더 가깝다. 그럭저럭 평범한 가정에 자랐지만 형편이 넉넉지 않아 부모로부터 경제적인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 흙수저 들은 엄밀히 말하자면 추가적인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것뿐이다.
저마다 결핍의 종류와 정도는 다르겠지만 그 결핍을 어떻게 대하냐에 따라 삶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궁핍'이라고 생각하면 희망이 없지만 '결핍'이라고 생각하면 삶의 원동력이 된다.
심각한 월요병으로 인해 죽도록 출근하기 싫은 날에도 나를 움직이게 하는 건 미래에 대한 다짐보다는잔뜩 당겨놓은 아파트 대출금인 것처럼 말이다.
셋째를 계획하고 임신했을 때 주변의 반응은 하나같이 비슷했다. "와~축하해"가 아닌 "아휴.. 어떻게 키우려고..." 가장 가까운 부모님들마저 걱정이 한가득 이셨으니 요즘 세상살이가 녹록지 않기는 한가보다. 셋째 아이의 첫 돌을 얼마 안 남긴 지금도 주변에서는 "지금은 어려서 모르지.. 초등학교 들어가 봐라. 돈 덩어리 들이다." 하고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낸다.
아직 그때가 돼 보지 않아서 모르는 걸 수도 있지만 한 가지 분명하게 세운 원칙은 있다.'정서적으로는 차고 넘치는 사랑을 주고 물질적으로는 결핍을 주며(주고 싶지 않아도 줄 수밖에 없을지도... 또르르..) 키우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