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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코더 Jun 03. 2021

책 사러 어디로 갈까

서점 vs 헌책방 그리고 중고서점


빌 게이츠와 그의 친구들이 만들어 준 MS워드와 MS엑셀 앞에서 무한할 듯한 시간을 보낸다. 그러면서도 마음은 저어기 콩밭, 광화문 교보문고에 향해 있는 나란 K-직장인은 모니터 오른쪽 아래 시계만 쳐다본다.


오후 5:29:31....


29초 남은 이 시간, 엄마가 눈에 좋다고 주신 루테인을 한 알 먹고 눈알에 총기를 탑재한다.


5,4,3,2,1 회사 탈출 고고씽!





탐험가의 마음


밀리라는 행성에서의 1시간은 지구에서의 7년과 같다. 우주탐험가처럼 서점을 누비다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서점이 나를 집에 못 가게 끌어당기는 데에 5할은 깨끗한 새책이요. 3할은 냄새, 나머지 2할은 분위기다.


깨끗한 새책은 눈을 즐겁게 한다. 독자의 눈에 띄기 위해 띠지로 드레스업 한 새책들이 한껏 뽐을 내는데 그중 시선을 사로잡는 책을 집어 들고 한 두장 넘기며 살펴본다.


맘에 드는 책을 찾아 산책하다 보면 교보문고 시그니처 향과 새책 특유의 냄새가 코를 즐겁게 한다. 그럼, '디퓨저를 사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겠지만 서점에서 만의 기쁨을 차단하고 싶지 않다. 그건 마치, 이 소스로 요리하면 미슐랭의 맛을 낼 수 있대서 사갔는데 집에서 해 먹으니 그 맛 같지 않은 것과 같다.


서점대체로 고요하다. 말하는 사람도 소리를 줄이는 예의 바르고 질서 있는 공간, 바로 서점이다. 무언가를 파는 곳임에도 빠른 템포의 음악이 흘러나오지 않아,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우주보다 광활한 세계를 탐험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다.



헌책방을 기웃대던 중2

유년 시절, 새 문제집을 사는 일은 드물었다. 내가 가진 새 문제집은 대부분 학교 선생님이 주신 비매품 책들이었다. 문제집을 사기 위해 인천 '배다리'라는 동네에 있는 헌책방에 갔다. 기억 속 배다리 헌책방에는 책들이 어수선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근원지를 알 수 없는 쾌쾌함도 풍겼고 나이 든 책들과 함께 책장도 낡았다.


(사진 : 곰돌이빵 님 제공)



헌책방에서 눈에 불을 켜고 지우개로 지우지 않아도 되는 깨끗한 헌 책을 득템 하기 위해 서성였다. 그런 책을 발견한 날에는 뛸 듯이 기뻤다. 중학교 때, <수학의 정석> 책을  것도 그 때문이었다. 자연스러운 선행학습(?) 까지는 아니고, 그저 깨끗한 헌 책을 싸게 구해 신나서 풀었다. 헌책방으로 이끌던 지독한 결핍이 그 시절 여중생을 성장시켰다. 


허름한 헌책방이 모여있는 인천 배다리는 여전히 그대로 일까? 배다리를 기웃거리는 발걸음은 창피했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지금도 헌 문제집을 사러 가야하는 학생들에게 문화상품권을 선물하고 싶다.




요즘 헌책방


20년이 지나 '중고서점'이라는 보다 세련된 이름으로 무려 종로, 강남, 합정 같이 몫 좋은 역세권에 생겨났다. 시간여행하는 마음으로 처음 방문한 중고서점은 오목교역 Y 중고서점이었다. 생기를 불어넣은 중고책들이 마치 '서점'처럼 진열된 중고서점은 신세계였다. 배다리 헌책방과 다른 제3의 공간이었다.


이곳에서는 간혹 신간이나 베스트셀러도 서점보다 저렴하게 득템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보다 가치로울 때가 있다. 신간이 쉴 새 없이 출간되는 가운데 빛을 발하지 못하고 서점에서 사라진 책들 중 보석 같은 책을 발견할 때다.


과거에 지혜로운 이가 쓴 어떤 책은 이미 서점에서 사라졌지만 중고서점에서 부활해 멀끔히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내 눈에는 저평가 우량주 같은 책을 발견할 때는 새책을 싸게 샀을 때보다 이득이다. 어딜 가도 없는 책이 우리 동네 중고서점에만 있었기 때문이다.


서점에 갈 때 2500원의 차비가 든다. 옛날로 치면 헌책방에서 구입한 문제집 한 권 값인데, 이제는 같은 금액의 차비를 들여 서점으로 산책을 다. 따끈한 새 책을 사 가지고 서점을 나설 때, 지출은 도 마음은 부자가 된다.


헌책방이든, 중고서점이든, 서점이든 지적 탐험을 하러 책을 찾는 사람들에게 책을 제공하는 공간이 많이 생겨나면 좋겠다.



내일, 위즈덤 작가님은 '결핍'과 '궁핍' 사이에 선을 긋습니다. 모호한 경계에 선을 긋고 틈을 만드는 사람들! 작가 6인이 쓰는 <선 긋는 이야기>에 관심이 간다면 지금 바로 매거진을 구독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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