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ment designer Jul 13. 2021

여보, 이 정도면 사기결혼이야

결혼하면 안정적이라고 누가 그랬나요?




선후배로 알고 지낸 시간 5년, 연애 7년, 결혼생활 6년 총 합 18년이다. 지금은 나의 남편이자 세 아이의 아빠가 된 그를 만난 지 어느새 18년이 됐다. 까불 거리며 '누나 누나' 하던 신입생 후배로 처음 만났었는데 언제 이렇게 세월이 흐른 건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두 번의 강산이 변해가는 동안 그와 함께 했지만 나는 아직도 남편이 새롭다.


오히려 연애시절에는 남편을 다 안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아무리 뛰어봤자 내 손바닥 안이야'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학시절 첫 만남 때부터 연애를 시작하기까지 남편은 나에게 크고 작은 고백을 약 다섯 차례 정도 했고 다섯 번을 뻥뻥 찼던 나는 기고만장했다. 연애 생활의 주도권은 완전히 내가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남편이, 내 말이라면 뭐든 들어주는 남자, 언제나 내가 1순위인 남자,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 그런 남자인 줄 알았다.


결혼 전 내가 생각한 남편의 성향은 공무원이 어울리는 안정적이고 무난한 사람이었다. '이 사람과 결혼하면 안정적이고 잔잔하게 살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결혼생활을 하면서 서서히 알게 됐다. 남편은 내가 생각하던 것과 정 반대의 성향을 가진 사람이었다.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고 변화를 좋아하는 사람,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도전하는 성향을 가진 사람,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열 번 넘어져도 꼭 해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둘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이 정도면 사기결혼이다'라고 생각했을 정도다.


그런데 곰곰이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가 나를 속인 게 아니었다. 그가 그렇게 보여준 게 아니라 내가 보고 싶은 모습만 봤으니까 말이다. 남편의 수없이 많은 모습 중 나를 사랑해 주는 '순정남'의 모습만 봤기 때문에 다른 것들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흐릿하게 보였지만 그냥 그렇게 흐릿한 채로 놔뒀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걸 두고 콩깍지가 씌었다고 하는 걸까?




남편이 또 한 번의 도전을 한다. 잘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하겠다고 한다. 아이 셋을 키우며 맞벌이를 하고 있는 내 입장에서 마냥 응원해줄 수만은 없는 일이다. 계속해서 이직을 위해 문을 두드리고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뜨문뜨문 들려오는 탈락 소식에 안도를 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하고 싶은 건 하고야 마는 남편의 성향을 알기에 언젠가는 합격할 거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최종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땐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잔잔하던 강물에 돌멩이가 던져지듯 마음에 파장이 일었다.


물론 남편이 혼자서 결정하진 않았다. 나의 의견을 충분히 구했고 존중했다. 남편의 이직에 동의하기까지 나는 내내 불안하고 흔들렸지만, 남편은 오래 준비한 만큼 확신에 차 보였다. 불안해하는 나에게 그는 말했다. 나의 남편, 세 아이의 아빠로서 미래의 모습을 생각했을 때 어떤 선택이 더 나은 모습일까 생각하면 답이 명확하다고, 큰 사람이 되기 위해서 작은 회사로 가겠다고 했다. 별 수 없다.  남편을 믿고 응원하는 수밖에.


나와는 다른 완전한 남편의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결혼 초반엔 인정하기 힘들었다. 결혼과 동시에 남편이라는 존재는 나의 세계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게 얼마나 큰 착각이었는지 결혼생활을 하루하루 더해갈수록 깨닫는다. 나는 서서히 그와 나의 다름을 인정하고 그의 세계가 '독립체' 임을 받아들였다.


남편은 그의 세계를 만들고, 나는 나의 세계를 만든다.


혹, 둘 중 하나의 세계가 잠시 길을 잃고 방황한다 하더라도 굳건히 버텨줄 만큼의 단단한 세계를 만들며 조용한 응원을 보내는 것, 한두 번 넘어져도 툴툴 털고 일어날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 주는 것, 어느 누가 뭐라 해도 온전하고 완전한 믿음을 주는 것. 이런 것들이 부부가 서로에게 줄 수 있는 진정한 '안정' 아닐까.


그리하여 나는, 기쁜 마음으로 남편의 도전을 응원한다.







내일은 음감님이 바톤을 이어받습니다. 작가 4인이 쓰는 <남편이라는 세계>에 관심이 간다면 지금 바로 매거진을 구독해 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