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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ment designer Mar 31. 2022

어린이집 긴급 하원이 불러온
긴급 퇴사.

워킹맘의 퇴사, 도망일까 도전일까.



회의를 마친 월요일 오전 10시, 커피 한 잔 하면서 한 숨 돌리고 업무를 시작하려던 그때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액정에는 'OO 어린이집'. 가슴이 철렁하고 내려앉는다. 어린이집에서 오는 전화는 받아도 받아도 적응이 안 된다. '혹시 다쳤나? 아픈가? 무슨 일이지..' 잠시 심호흡을 하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네~ 어머님 어린이집이에요."

"네 선생님 무슨 일 있나요?"

"원에 코로나 확진자가 나와서요.. 아이들 긴급 하원을 해주셔야 할 것 같아요."

"아.. 네. 지금 당장이요?"

"네.. 최대한 빨리 부탁드릴게요."


어린이집에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다는 전화를 받으면 아이들 걱정부터 하는 게 엄마의 당연한 마음이겠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월요일 아침, 생각지 못한 변수에 당황한 나의 입에선 한숨이 새어 나왔다.


"휴... 또야..."




워킹맘으로 일하면서 가장 난감한 순간을 말하자면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낼 수 없을 때'이다. 아이가 아파서 또는 전염병으로 인한 긴급 하원, 어린이집 잠정 폐쇄, 이럴 땐 정말 대책이 없다. 부모님께 양육 도움을 받지 않는 우리 부부의 경우 둘 중 한 명이 회사에 양해를 구할 수밖에 없다. 이때의 내 심정을 솔직히 고백하자면.. 아이들이 아픈 것에 대한 걱정, 코로나에 전염될 걱정보다 앞서 '하.. 어쩌지.. 내 스케줄..'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단순히 회사에 양해를 구하는 게 미안해서, 쌓여있는 해야 할 일에 대한 걱정 때문만은 아니었다. '돌발변수' 이게 문제다. 부모가 되면 돌봐야 하는 존재들에 의해 찾아오는 돌발변수가 많아진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찾아오는 사고 같은 상황들이 아이의 수만큼 많아진다고 보면 되는데, 나는 아이가 세명 이니까 3배의 돌발변수를 갖게 된 것이다. 부모로서 마땅히 해야 할 역할이지만 그 마땅함이 매번 어렵다.




어린이집은 일주일 간 폐쇄가 결정됐고 그 후에도 등원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아이 셋을 돌보면서 재택근무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막막했다. 방법이 없었다. 결심하고 있었던 퇴사일을 조금 더 앞당기는 수밖에. 멋지고 당당하게 마무리하고 싶었던 나의 퇴사는 (사랑스러운?) 세 명의 돌발 변수들 덕분에 물거품이 됐다.


갑작스럽게 아이 셋 독박 육아에 돌입해서 직면한 나의 현실은 '앗 뜨거워' 소리가 절로 나왔다. 꿈을 좇아간다고 했지만 사실은 나 도망치려던 거 아닐까?라는 마음이 문득문득 올라왔다. 꿈꾸던 퇴사 후의 삶과는 정 반대로 불안, 두려움, 조바심, 부정적인 감정들로 가득 찬 동굴생활이 시작됐다."전, 꿈을 찾아갈 거예요. 돈 보다 더 중요한 게 많잖아요. 도전할 거예요."라고 말하던 당당한 포부는 생각지도 못한 변수에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 주일 간의 동굴생활 동안 수많은 걱정들이 내 머릿속을 지배했다. 나 돈 못 벌면 어쩌지. 외벌이로는 근근이 생활만 할 수 있겠네. 당장 다음 달 생활비랑 대출금은 어쩌지? 내가 꿈이 있긴 한 걸까? 내가 다시 취업할 수 있을까? 내가 창업할 수 있을까? 아니. 프리랜서로 일할 능력은 있는 건가? 회사 타이틀 하나 떼어냈을 뿐인데 내가 없어져 버린 것 같았다. 끝도 없는 불안과 걱정의 굴레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너 지금 꿈을 좇을 게 아니라 돈을 좇아야 할 때인 거 같은데?"

"애 셋 키우려면 얼굴에 그 정도 철판은 깔아야지."

"너 그거 이상이야. 현실을 살아야지.. 너 애 셋 엄마야"

라는 현실적인 조언들이 가슴을 후벼 팠다.


어쩌면 '도전'을 가장한 '도망'이었을 수 있었다고 솔직히 인정하겠다. 하지만 그 도망은 '가짜 안정'으로부터의 도망이었다. 현실을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가라는 말로부터의 도망. 주체성을 가지고 살고 싶었다. 돌발변수까지 여유 있게 다룰 수 있는, 시간으로 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 '엄마로서의 나'와 '내 삶의 주인인 나' 둘 다 잘 해내고 싶었다. '그래, 난 도전하기 위해 도망친 거야.'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기나긴 동굴 생활에 저 멀리 아주 작은 빛이 반짝하고 빛났다.


비록 내 도전의 시작은 '어린이집 긴급 하원'이 조금 빨리 불러왔지만 그것도 나쁘지 않다. 아이들에게 내가 필요할 때 나의 역할을 하는 것이 나에겐 더 중요한 일이니까 말이다.


요즘 나에게 많은 위로와 용기를 주는 드라마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 스물다섯, 스물하나 - 1화 ]


"IMF 때문에 학교 예산이 줄었고, 우리 펜싱부를 없애기로 결정했다.

펜싱이 한 두 푼 드는 운동도 아니고 이 시국에 다들 가정형 편도 힘들 텐데 다른 길 찾아"


나희도 : "이렇게 꿈을 뺏는 게 어딨어요."

선생님 : "니 꿈을 뺏은 건 내가 아냐. 시대지."


[ 스물다섯, 스물하나 - 2화 ]


"IMF로 어중간한 펜싱부 폐지되면서 그만둔 선수 한 명.

가정형편이 어려워져서 그만둔 선수 한 명.

그래서 26등인 네가 국가대표 평가전에 나가게 됐다.

니가 그만두지 않았기 때문에 기회가 와버렸네."


선생님 : "축하한다. 시대가 너를 돕는다. 나희도"



시대가 꿈을 뺏을지, 시대가 나를 도울지는 내가 만들어가는 길에 달려있다. 코로나 시대, 우리는 모두 위기를 맞았지만 기회 앞에 서있기도 하다.


그래서 이 글은 그 기회를 내 것으로 만들 첫 시작이다. 엄마로서의 삶도, 나를 찾아가는 삶도 둘 다 잘 해내고 싶은 욕심 많은 엄마의 도전기이다. 환경에 순응하여 살아가는 삶이 아닌 내가 원하는 삶을 주체적으로 만들어가는 '엄마' 그리고 '사람'이 되고자 하는 의지에 대한 기록이다. 앞으로의 내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게 실패이던 성공이던 전진이던 후퇴이든 간에 모든 것은 내 삶의 반짝이는 점을 찍을 것이다.  훗날 그 점들을 연결하는 선을 긋기 위해 그 여정을 기록하려 한다.


내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놓치지 않고 살아가는 삶,
주체적으로 시간을 쓸 수 있는 삶,
진짜 안정과 불안정을 구분할 수 있는 삶,
인생의 많은'순간'들을 주도적으로 만들어 나가는 삶,
경제적, 시간적 자유가 있는 삶,
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에 선한 흔적을 남기는 삶.

이것들이 내가 살고자 하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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