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녀에게서 상처를 배웠다
나는 그녀에게서 상처를 배웠다.
나에게서 그녀는 자신의 상처를 배웠다.
- 유하ㅁ리,
『사월의 꿈 i - 5. 달의 노래』 중
[ 유하의 플레이리스트
Rosie Lowe - Lifeline ]
“아니야, 아니야!”
109동 아파트 건물을 상승하며 마지막 층인 15층에 도달할 즈음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괴성이 들렸다. 나는 피부에 돋아나는 흥미를 느끼며 베란다의 난간에 앉았다. 열린 창문 안으로 안방 안에서는 날카로운 가위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사정없이 자르는 유아 엄마가 보였다. 고개를 돌린 그는 손에 가위를 움켜쥔 채 누군가를 노려보았는데, 그것이 사월임을 안 순간, 나는 황급히 창문을 두드렸다. 유아 엄마가 가위를 던졌을 때, 가위는 맞은편 벽면에 꽂혔다. 내가 신호를 주지 않았다면 사월을 제대로 해쳤을 것이다. 사월은 집을 나가 다른 곳으로 도망쳤다.
맞은편 벽면으로부터 서서히 시선을 거둔 유아 엄마는 베란다에 있는 나를 그제서야 발견했다. 나는 빨래 건조대에 걸려 있는 옷걸이에 박쥐처럼 거꾸로 매달려 있었다. 그녀에게 나는 아주 불길하게 보였으리라. 그 광경이 엉망진창인 그녀의 행세를 이길 만한 불길함이기를 소원했다. 유아 엄마는 안방 창문을 쾅 닫았다. 괘씸함에 나는 잠시 목을 왼쪽 오른쪽 움찔거렸다.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라 볼 수도 있었지만, 그런 식으로 문전박대를 당하면 누구라도 나와 같이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비인간의 기이한 힘으로 변형된 아파트 미로일 뿐이며, 나는 새. 사월의 기억과 기억 사이를 자유롭게 유영하는 새가 아니던가! 나는 그저 자리를 떠나 좀 전에 안방 문턱을 사이에 두고 벌어진 사월의 기억 속으로 날아가기만 하면 되었다.
그렇게 안방 문턱에 당도했을 때, 유아 엄마는 안방 뒤에 위치한 부엌 탁자 위에 쓰러져 있었다. 탁자 위와 아래에는 술병들이 가득했고, 알코올 향이 진동했다. 나는 나의 존재를 다시금 그녀에게 알렸다.
“유아는 떠났어.”
쓰러져 있던 상체를 일으킨 그녀는 충격과 경멸이 섞인 눈으로 나를 보며 부정했다. “그럴 리 없어.”
“리 있어.” 나는 말했다.
“그럴….”
“리 있어.” 나는 말했다.
“이 빌어먹을 새가!”
탁자 위의 술병들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파편이 튀었다.
“빌어, 빌어, 빌어!” 나는 외쳤다.
“설마 지금 너한테 빌라는 거니?”
나는 가만히 엄마를 쳐다보았다. 그녀도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한동안 우리의 시선은 서로를 향했다. 그동안, 불쾌했던 서로에 대한 인상에 금이 갔다. 나는 그녀에게서 상처를 배웠다. 상처란 가장 소중한 것들에게서 온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날아간 술병 조각들 때문인지 그녀의 발바닥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비릿한 쇠덩이 같은 피 냄새는 즉각 피에서 시작된 나의 탄생을 연상시켰다. 그 찰나, 나는 사월이 나를 탄생시킨 첫 생리의 기억 속으로, 욕조가 있는 화장실로 당장 날아가야만 한다는 것을 직감했다. 마침 엄마는 발바닥의 피를 씻어 내고 목욕도 할 겸 욕조에 물을 받고 있었다. 물소리에 집중하다 보니 이미 나는 배수관 안을 헤엄치는 중이었다. 하지만 탄생의 기억 속에서 내가 사월의 생리혈과 함께 욕조의 배수구로 빨려 들어간 것이라면, 지금은 욕조와 연결되어 있는 배수관을 엄청난 힘으로 역행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새 나는 욕조 안보다도 더 깊숙한 곳에, 욕조 안에 몸을 누인 그녀의 자궁 안에 존재했다. 원형의 새로운 집 안에서 그녀의 아픔에 나는 발작했고, 그녀의 호흡에 맞춰 나는 숨을 쉬었다.
목욕을 마친 엄마는 핏덩이로 욕조 안을 둥둥 떠다니는 나를 발견했다. 나의 발에도 유리 조각 하나가 박혀 있었다. 나에게서 그녀는 자신의 상처를 배웠다. 그녀는 나의 발에 박혀 있던 유리 파편을 조심스레 빼냈다. 그리고는 따뜻한 수건으로 나의 피를 닦아 내고 또 닦아 냈다.
이후 며칠 간인지 몇 년 간인지 그녀는 나를 잃어버린 자신의 아이처럼, 하지만 참회로 아이를 다시 만난 자세로 극진히 보살폈고, 덕분에 윤이 나는 자태로 나는 그녀의 곁을 묵묵히 지켰다. 그녀의 집도 그녀도 본래의 말끔한 상태로 되돌아갔다.
여느 날처럼 우리는 베란다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저물어 가는 태양이 축복을 내리듯 그녀에게 성녀의 눈부신 후광 같은 빛을 쏟아 냈다. 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의 의미를 그때 알았다.
“이리…!”라 외쳤지만 나는 이미 난간을 떠난 뒤였고, 유아 엄마의 나머지 말만이 그녀 주위를 맴돌았다. “와.”
반면 그녀의 목소리는 공중에서 날갯짓을 하는 나에게 이렇게 들렸다. “리!”
그리하여 나는 나의 이름을 ‘리’라고 짓고는, 나를 애타게 부르는 또 다른 구원의 빛을 향해 두 팔을 활짝 열고는, 베란다 밖의 세계로 날아갔다.
사랑하는 엄마께, 생신을 축하드리며.
2025.3.23.
1 Rosie Lowe, <YU> Album Cover
2 엄마의 생일날 함께 했던 마장호수의 풍경
3 생일 타르트와 푸딩 & 피로 이어진 새빨간 편지
* 이미지 출처 : https://open.spotify.com/album/6XkfgTrHK84NNwjhonpFA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