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다니면 배가 더 고파질 것 같아 터벅터벅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가로등 아래 놓인 자판기를 만났다. 맥주와 초코바, 과자 등이 들어 있는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앗싸하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일상적이고 당연한 것이 소중하다는 것을 다시 새겼지만, 편안한 삶의 자리에 가면 또 잊어버리겠지? 그리고 다시 불편한 자리에 가면 깨달을테고... 늘 잊고 사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든다.
여행도 몸은 피곤해지는 일이다.
하지만 마음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풍요로워진다.
하루 종일 길을 걷거나 여기저기 돌아보는 것도 좋지만 오늘 오후는 숙소 근처 작은 카페에서 바지와 티셔츠 한 벌을 포기하고 가져 온 책을 꺼내 읽어야겠다.
카페로 가는 길 모퉁이에 재활용품이 가득 쌓여 있었다. 여행이 길어지면 무엇인가를 버려야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래서 여행 짐을 쌀 때 유행이 지나 잘 입지 않는 가벼운 옷들을 챙겨오는 편이다. 주변의 시선에 무뎌지는 여행지에서 편안하게 입고 버려 짐을 줄이거나 다시 입어보니 의외로 괜찮은걸하면서 활용하게 되기도 한다.
언젠가 쓰겠지하면서 쌓아두는 불필요한 짐을 몇 가지라도 줄여보면 생을 가볍게하는 연습이 조금은 된다.
그림을 그리는 것이 행복하냐라는 질문을 아주 가끔 받는다. 그럴 때면 나도 스스로 생각해본다. 내게 있어 그림이 어떤 행복을 주는 것일까? 그림을 통한 행복이 있긴 한가? 하는 질문들 말이다.
이번 여행에서 곰곰 생각해보니 그림이 내게 행복을 가져오진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만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
그러려고 노력하는 마음을 잊지 않게 하는 것 같았다.
행복하고 싶다.
산티아고에서도 그랬고, 도보여행을 하다보면 가끔 길에 놓인 신발 한 짝을 발견할 때가 있다. 그때마다 드는 생각은 저 신발의 주인은 한쪽만 신고 어디로 갔을까? 하는 것이다. 이곳에 한 짝만을 남기고 떠나야했던 그 사람에겐 어떤 일이 생긴 것일까?
두 개가 있어야 온전한 물건이 하나만 남았을 때 그 사연은 무엇이든 행복한 게 없었다.
여행을 위해 담아온 가방이든 사람의 무게든 내 어깨에 올려졌다면 책임을 지고 마지막까지 가야한다. 욕심이 그 무게를 키웠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 욕심을 버리고 싶지 않다면 그만큼 힘이 들 것이라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세상이 그렇게 돌아갈 수 밖에 없다면 누군가 과도한 욕심을 낸다하더라도 그 사람이 책임을 감수할테니 정의는 살아있겠지?
오늘의 길이 거의 끝나가는 곳에 앉아 물을 마셨다. 길의 끝에 도착하기 위해 걸은 것은 아니다. 걷는 것 자체를 위한 것이었다.
삶의 목적이 최종 지점에 도달하기 위한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