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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종훈 Aug 15. 2019

빼곡해진 마음 서랍을 비우는 절집, 영주 부석사

#1

절집에 올 때 마음이 늘 그렇다. 쉼 없이 달려온 시간을 돌아보고, 비움 없이 채워서 틈이 없는 좁은 마음을 정리하겠노라 해놓고선 주말 고속도로 상황과 더운 날씨에 금새 지치고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 상황에 조급해졌으니 말이다.      

그동안의 내 마음은 정리를 하지 않고 차일피일 미뤄둔 가장 마지막칸 서랍이었다. 버리기엔 아까워 언젠가 다시 쓰겠지하고 쌓아둔 마음이 10년이 넘게 먼지를 덮고 앉아 있는 곳. 이젠 그 서랍도 용량 한계에 도달했다. 살짝만 건드려도 아무렇게나 넣어둔 마음들이 당장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멀리 안양루가 보이는 자리에서 나 자신에게 다시 말한다. 나는 지금 이곳에 있고, 전부는 아니더라도 마음 속 서랍이 조금은 가벼워지도록 정리하고 가겠노라고.      


#2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삶과 죽음은 참 가까운 곳에 있음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보다 주변에는 생을 마치고 떠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7년여의 시간이 지난 지금도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남동생을 떠올리면 가슴이 먹먹하게 막힌다. 가족을 예기치 못한 일로 하늘로 보내는 것은 손이 닿지 않는 등허리 어딘가에 칼이 꽂히는 일이다. 그것은 영원히 아프고 피가 흐르는 상처가 된다. 매일매일 밤이 되면 가슴이 답답해 쉽게 잠들지 못했고, 길을 걷거나 운전을 하다가 눈물이 복받쳐 급하게 화장실을 찾아 들어가거나 차를 세워야 하는 날이 많았다.     

법당에 들어서는 스님의 뒷모습에 왜 울컥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만히 따라 들어가 한 구석에서 삼배를 올리고 한참을 엎드려 훌쩍거렸다.      


#3

저녁 예불을 마치고 고요하던 법당 안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불빛 때문에 날아든 커다란 나방 한 마리 때문이었다. 부모와 함께 예불에 참석한 아이 둘이 놀라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나방은 아이들과 장난을 하려는지 아이들이 숨는 곳으로만 쫓아 날아다녔다. 아이들을 나무라던 아버지가 나방을 잡으려 했더니 죽이지 말고 수건으로 툭툭 쳐 법당 밖으로 내보내라고 또 아이들이 난리다. 여긴 절이라고, 그럼 안 된다고 말이다. 어디서 그런 이야길 들었는지...      

아이들은 스스로 자라고 있다. 성장이 보이지 않지만 멈추지 않는 나무처럼 말이다.     


#4

부석사에서 하루를 지내고 갈 여건이 되지 않아 어둠에 든 무량수전을 사진으로 담고 내려가겠노라 허락을 받았다. 인공으로 만든 빛이 적은 산에는 해가 지고 어둠이 찾아오는가 싶더니 금세 암흑이다. 안양루 계단을 조금 내려서 자리를 잡고 카메라를 들었다. 어둠으로 카메라 설정을 조정해도 흔들림을 어쩔 수 없었다. 구도만 잡아 몇 장을 찍고 가만히 눈으로 그 순간을 담았다.      

비워보겠노라 달려온 이곳에서 가벼워진 것은 없지만, 보탠 것도 없다는 것이 위로가 되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본래의 마음을 깨우쳐 무량수(無量壽)가 되면 좁아터진 마음 서랍 걱정이 없을텐데...’하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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