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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종훈 Sep 26. 2019

바다를 마당으로 품은 절 , 양양 낙산사

#1

사진이든 그림이든 프레임 안에서 다른 공간을 들여다보는 구도를 좋아하는 내게 사찰은 너무나 훌륭한 공간이다. 사찰 입구 일주문을 시작으로 천왕문, 누각 아래, 전각 입구의 중문을 지나는 일은 계속해서 새로운 차원으로 이동하는 기분이 들어 좋다. 


응향각을 지나면서 원통보전과 칠층탑이 보였다. 가슴이 두근거리는게 오랫동안 보고 싶었던 연인을 만나러 가는 기분이다.


#2

양양과 속초는 자주 왔지만 낙산사는 참 오랜만이었다. 다른 여정 중에 잠시 들르거나 멀리서 관음상만 바라봐야했던 낙산사는 언제나 섬이었다. 육지에 있어도 닿지 못하면 섬이 아닐까?  

눈 앞에 있으나 닿지 않는 그곳은 더 애틋하고 간절한 섬이 되어 나를 돌아서게 만들었다. 반대편 언덕 소나무에 기대서, 때론 돌아가려고 시동을 건 자동차 창문 너머로, 다시 보기 힘든 연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듯 내 눈을 붙들었다.

그런 낙산사, 원통보전이 오늘은 길을 열고 육지가 되어 나를 바라본다. 오래 기다렸다고, 이제 만날 때가 되었다고 하는 듯 맑은 하늘 아래 가만히 서서 기다리고 있다.


#3

나는 절집에 가면 늘 곳곳에서 물고기를 찾는 습관이 있다. 법당의 벽면이나 창살에 그려져 있기도 하고, 법당 안 천정에 있기도 하고, 처마에 매달려 있기도 했다. 그들의 모습이 어눌하고 비율에 맞지 않은 친근한 모습일수록 더욱 눈길이 가는 것은 아마 내 삶의 모습이 그렇기 때문이리라.

눈을 감지 않는 그들의 삶처럼 내 마음도 언제나 깨어있고 싶다.

바다를 향한 하늘에 매달린 물고기는 파도를 듣고 있을까?


#4

멀리 바다를 보고 있는 해수 관음상의 모습이 계단 위로 조금씩 보였다. 사방이 탁 트인 정상에서 바라보는 기분은 가슴에 구멍을 뚫어 가벼워지는 듯 했다.  

정토를 바라보고 그 아래 중생을 품은 관음상 아래서 해가 지기를 기다렸다. 낮아진 해가 석등에 걸리는 순간을 사진으로 담고 그림으로 그리고 싶었다. 먹먹해진 마음으로 해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바라봤다. 한참을 기다려 따뜻한 어둠을 만나고 나서 가만히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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