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의 요동이 심했다. 잠시 잠이 든 것 같았는데 강하게 흔들!하는 느낌에 잠이 확 깼다.
긴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몇 달치 예정된 원고를 앞당겨 미리해야만 했다. 누군가는 남자의 먹고 사는 일이 가장 숭고한 일이라고 했지만 이젠 부양해야 할 사람도 없는 내겐 어쩔 수 없는 약속들이었다. 일 년전에 계약한 월간지와 주간지, 단행본 작업까지 일주일에 3건 이상의 원고를 마감하면서 살고 있다.
오늘 새벽에야 겨우 일을 마치고 반은 빈 캐리어를 끌고 아파트 상가 앞 공항버스 정류장에서 첫 버스를 탔다. 버스가 어떤 길을 지나 왔는지 아무 기억도 없었다. 새벽이었지만 공항은 잠이 확 깰만큼 사람이 많았다. 아슬아슬하게 수속을 마치고 자리에 앉아 푸르스름해지는 창 밖을 바라봤다. 출발의 설렘보다 밀린 잠이 더 강렬해서 이륙하자마자 잠에 빠져들었다가 심한 기류 때문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참 오랜만에 달게 잤다는 생각이 들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항공 정보를 살펴보니 비행기는 중국 상공을 날고 있었다.
반복적이고 찌릿한 에어타임 때문에 나도 모르게 허벅지와 팔걸이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비행기만 타면 늘 그렇듯 ‘추락’이라는 글자가 머릿속에 가득해졌다. 이런 것도 유전인지 아버지는 아예 비행기를 타는 여행을 하지 않으셨다.
추락을 떠올린 다음 순간은 자동으로 죽음과 삶을 생각했다. 꽤 오래전부터 삶이 답답하고 무기력해 죽음을 생각했지만 실행할만한 이유도 용기도 사실 없다. 아마도 내가 자살한다면 왜? 죽을 이유가 있나? 이런 말들이 먼저 나올게 뻔했다.
하지만 뭔가가 가슴 속에 한계치까지 차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의 절반이 어디인지 모르지만 이번 여행이 대충 그 중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출발하는 날과 파리행만 결정했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라는 거창한 각오는 없다. 그냥 너무 무거워진 생의 기억들을 덜어내고 싶었다. 최소한 새로운 것을 담으려면 버리는 시간이 필요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