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을 아는 것이 힘, 결국 사람이 합니다.
2019년~2020년으로 넘어가는 시점, AI와 IT서비스들이 사람을 대체할 것이라고 모두가 생각하던 시점 코로나19까지 더해지던 시점.
나의 '일지랖'이 발동하면서, 나에게도 본 회사에도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었다.
내가 프리랜서 강사로 일하던 당시, 지인의 SOS 요청으로 IT 회사에 주 2~3일 강의, 박람회 등 지원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20명 남짓 되는 IT회사는 80%가 개발자였고, 내가 기존 다녀본 유통, 쇼핑몰, 제조 등 회사들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1인 1 컴퓨터면 회사 서비스에 필요한 모든 것을 만들어 낼 수 있었고, 사람과의 소통보다 컴퓨터와의 대화가 더 익숙한 분위기였다. 간식을 먹거나, 회의를 할 때가 아니면 주로 사람 말소리보다는 키보드 소리가 사무실을 가득 채웠다.
아주 가끔 사무실에 전화가 울렸다. 본 회사의 서비스를 이용하며 어려움을 겪는 고객들의 질문이었고, 전화는 그때그때 운 나쁘게 내 앞 전화기가 울리는 사람이 받게 되었다. 또는 스타트업이니 만큼 대표가 영업을 나가 때 핸드폰에 대표번호를 착신하고 나가서 틈틈이 받고 응대를 하는 구조였다.
어느 날 전체 회의.
"앞으로도 고객응대를 직접 할 것인가?"라는 안건이 가장 큰 화두에 올랐다. 회사는 대표 번호, 이메일, 게시판 3개의 고객 CS채널이 오픈되어 있었고, 책임자는 정해지지 않은 채 필요에 의해, 상황에 따라 불규칙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문의가 많지는 않지만, 관리가 잘 되지 않았고 전화는 실시간으로 누군가 집중하던 업무를 멈추고 받아야 하는 점이 모두에게 부담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직 많지 않은 문의를 위해 전담 인원을 두자니, 비용적으로도 아깝다고 판단된 것 같았다.
그러던 중 개발팀 리더가 말했다.
"IT회사에 CS가 필요해요? 챗봇이랑 온라인 매뉴얼 이면 충분하지 않나. 실리콘밸리 IT회사들 보면 사람이 응대하는 일이 거의 없으니 한국도 점점 그렇게 되지 않겠나 싶은데... 돈도 크게 안 들고."
난 단기 프로젝트성으로 합류했기에 묵묵히 듣기만 했다. 그리고 문득 궁금했다. '챗봇과 매뉴얼은 누가 만들어서 업데이트하나?'
세상에는 좋은 상품, 서비스들이 참 많다. 하지만 고객들은 그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은 궁금해한다. '내 상품이 이렇게 좋은데, 왜 안 팔리지?'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이 있다. 고객은 상품을 살 때 메인 상품과 연계된 부가적인 요소들을 엮어서 하나의 상품으로 바라본다는 사실이다. 그 안에는 스토리, 안정성, 부가서비스, CS 등 많은 요소들이 추가될 수 있고 이 모든 것이 더해져 브랜드가 된다.
한국인들이 삼성과 다른 브랜드를 두고 삼성을 선택할 때는 본인이 구매하고자 하는 상품과 전국에 서비스센터가 있어 두고두고 관리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선택의 이유로 뽑는다. 그렇듯 우리 상품에 함께 더해졌을 때 경쟁에서 우위를 둘 수 있는 부가 요소가 무엇인지 찾아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약 삼 개월 동안 박람회와 강의 등을 통해 이 회사의 가망고객 500여 명을 만났다. 이 회사의 가망고객을 만나며 느낀 것은 이 서비스가 더 잘 알려지려면 '고객과의 소통'이 키 포인트라고 생각되었다.
이 서비스를 소개하며 받은 질문을 정리해 보니 200여 개. 비슷한 것끼리 묶어 100여 개로 줄여봤지만 고객들은 결국 되물었다. 그들은 이 낯선 서비스 앞에서 '나에게 맞춤으로 준비된 답'을 듣고 싶어 했다. 이제 열리는 시장이다 보니 낯설고, 경쟁사는 대부분 외국브랜드이기 때문에 CS가 이루어지지 않기에 차별점이 될 수 있겠다 생각했다.
스타트업으로 이제 시장을 개척하고 점유해 가는 과정에 서 있는데, 내가 고작 몇 개월 사이 받은 질문 속에서도 이 서비스를 풀어낼 이렇게 많은 키포인트를 찾았는데, 고객과의 소통을 차단한다고?
그렇다면 이 회사가 가야 할 방향은 어떻게 알 수 있는 것일까.
우리가 가야 할 길을 가장 빠르게 찾는 방법은 그 길을 잘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는 것이다. 회사의 성장 노하우로 한참 마케팅이 주목을 받았지만, 우리 브랜드를 알리고 고객을 훅 당기는 매력을 있을지라도, 고객을 가장 잘 아는 조직이라고 말할 수 없다.
내가 이 회사와 함께 하는 프로젝트 종료를 앞두고 마지막 회의를 함께 하게 되었다.
"CS관련 운영 방향"에 대해 다시 주제가 언급 되었다. CS채널 유지와 폐쇄에 대한 의견은 반반으로 비등비등 했지만 누구도 개발팀 리더의 말처럼 챗봇보다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대로면 CS채널 폐쇄가 몇 개월 만에 결정될 것이었다.
그 순간 나의 일지랖(일+오지랖)이 발동하고 말았다. 난 '고객을 제일 잘 아는 부서가 회사의 실세'라고 생각하는 나의 고객부심에 찬물을 끼얹는 발언들이 오가는 것을 들으며 순간의 '욱'을 참지 못했다.
"챗봇 내용은 누가 업데이트하나요?"
무엇보다 챗봇과 매뉴얼을 만드는데도 사람이 필요합니다. 계속해서 업데이트되는 기능을 다각도로 풀어낼 수 있어하며, 어떤 서비스도 한 번 세팅하고 끝나는 일은 없습니다. 회사가 살아 움직인다면 관리는 필수입니다.
변화무쌍한 고객들의 입맛에 맞는 FAQ를 연구해서 챗봇에 녹이려면 이 또한 결국 '고객을 아는 사람'이 '고객의 입장에 맞추어' 준비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찾아온 고객을 왜 막나요?"
고객에게 알리기 위해 마케팅으로 고객을 찾아다니는데 몇백, 몇천만 원을 씁니다. 그런데 왜 직접 찾아온 고객을 관리하는 사람을 비용으로만 생각하시나요? 열심히 뿌린 씨를 거둘 수 있다면 그것이 진짜 비용절감이라고 생각됩니다.
영업사원은 1인이 하루에 최대 4명의 고객을 만날 수 있습니다. 내부 고객관리 담당자는 하루 최소 30~50명을 관리할 수 있습니다. 각 효과는 다르겠지만, 고객관리 조직이 비용이라고만은 말할 수 없습니다.
"경쟁사가 안 하면 더더욱 해야죠!"
이미 자리 잡은 경쟁사랑 똑같이 해서 어떻게 따라잡나요? 이미 충성고객층이 자리 잡은 경쟁사를 파고들기 위해서는 그들이 하지 않는 서비스가 필요합니다. 100% 확신할 수는 없지만, 아무도 하지 않는다면 이 것이 오히려 기회일 수 있습니다.
그 한순간 모든 눈동자가 나에게 쏠렸고, 나에게도 회사에게도 계획에 없던 도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