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본격적으로 고구려의 유적지를 찾아 떠나는 일정이 시작된다. 아침 6시 30분에 가족 모두가 일어나 아침식사를 마치고 관광버스에 올라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인 집안(국내성)으로 출발한다.
유적지에 도착해서 매표소를 지나가면 커다란 한글 간판을 내건 관광품 가게가 있다.
조금 걷다 보면 안내 표지판이 나오는데, 광개토대왕이 아니라 호태왕으로 표시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중국에서 광개토 대왕을 호태왕이라 부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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쨍쨍 내리쬐는 따가운 햇살 아래 조금 더 걸어가면 들판 한 가운데 서있는 건물이 하나 눈에 들어오는데, 자세히 보면 그 안에 커다란 비석이 서 있다. 저것이 바로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었던 광개토대왕릉비인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정복군주였던 광개토대왕(고구려 19대 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 아들 장수왕에 의해 세워진 광개토대왕비는 높이 6.5m, 무게가 40톤 가까이 되는 큰 바위에 1775자의 비문이 음각되어 있는 비석으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 있는 귀중한 유물이다.
교과서에서나 보던 광개토대왕비를 직접 보다니, 백두산 천지를 봤을 때의 감동과는 또 다른 뭉클한 느낌을 느낄 수 있었다.
내부에서는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는 바람에 밖에 나와 기념사진을 남겨본다. 이제 서쪽으로 200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광개토대왕릉으로 간다. 잘 닦인 산책로를 따라서 가다 보면 저 앞에 작은 언덕처럼 보이는 것이 바로 광개토대왕릉이다.
멀리서 보면 그냥 작은 언덕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냥 언덕이 아니라 굉장히 큰 무덤임을 알 수 있다. 높이가 15미터, 한 변의 길이가 70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라고 한다. 현재는 많이 무너져 내려 상단부 석실만 보존되어 있는 상태다. 계단을 따라서 석실을 보러 올라간다.
잡초가 무성하여 자세히 볼 수는 없지만 이렇게 거대한 돌이 아래쪽을 받치고 있는 것을 보면 대왕릉 비임에 틀림없다.
대왕릉 꼭대기에 올라 내려다보면 평화로운 마을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대왕릉이 상단부에는 작은 방이 하나가 있는데 입구를 투명한 플라스틱 창으로 막아놨다. 내부를 들여다보면 직사각형의 큰 돌 두 개가 있는데 이것은 아마도 대왕과 대왕비를 합장한 것으로 보인다. 석실 내부가 어둡고 플라스틱 창으로 막혀있어서 벽화나 내부 장식을 보기 어려웠지만 누가 던지고 갔는지 중국 지폐와 한국 지폐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복을 빌며 동전이나 지폐를 던진다고 하나 대왕릉에 천 원짜리 지폐나 동전 등을 던져 너무 지저분하게 해 놓아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광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작은 기념품 가게가 있는데 TV 드라마 주몽에서 자주 보았던 고구려의 상징 삼족오 문양의 손수건들이 우리의 눈길을 끈다.
자, 이제 장수왕릉(장군총)을 향해 간다.
조금 걷다 보면 웅장한 규모의 돌무덤이 나타나는데 주변에 자라는 나무들 높이보다 훨씬 큰 무덤이다.
짜잔~ 장수왕의 무덤 장수왕릉! 광개토대왕릉에 비해 너무 잘 보존되어 있다.
중국 길림성 집안시 지역에는 약 1만 2천 개의 고구려 무덤들이 남아있다고 하는데 장수왕릉 만이 거의 유일하게 완전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한다. 밑변의 길이가 32미터, 높이가 12미터에 이르는 이 커다란 적석묘는 길이가 6미터가량 되는 엄청난 크기의 화강암 1100여 개를 계단식으로 쌓아 올렸다고 하며, 정면은 국내성을 바라보고, 네 귀퉁이가 동서남북을 가리키고 있고 석실 안 석관의 머리 방향은 백두산 천지를 향해있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쌓인 돌들이 무너지지 않게 홈을 파서 지지해놓은 바닥돌(호석)과 또 사람 키 높이보다 훨씬 큰 돌을 비스듬히 눕혀놓은 큰 돌(배총)을 보면 그 당시의 기술로 얼마나 힘들고 엄청난 공사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광개토대왕릉비와 장수왕릉 관광을 마치고 점심식사를 위해 북한 음식점으로 향했다. 식당 가운데 벽 쪽에는 북한 무용수들의 공연을 위한 무대가 마련되어있고, 둥근 식탁에 앉아 공연을 보면서 식사를 하게 되어있다. 아쉽게도 북한 무용수들이 공연을 보진 못했지만 북한 사람들을 직접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참 새로운 느낌을 주었다.
식당 옆에 자그만 기념품 가게가 달려 있는데, 북한술도 진열되어 있었다. 특히 눈길을 사로잡은 건... 살모사 술이다. 한 병 살까 말까 망설이다 포기했는데 지금 다시 사진을 보니 아쉽다. ㅎ
식당 앞에서는 할머니가 좌판을 벌이고 앉아서 자연삼이라며 호객행위를 한다. 잘은 모르겠지만 흙이 마르지 않은 것을 보면 아침 일찍 밭에서 캐온 것 같았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규모가 작은 고구려 적석총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이동한다. 저 들판에 불룩 불룩 솟아있는 것들이 모두 고구려 시대 때 만들어진 돌무덤이라고 한다.
고구려 적석총 관광을 마치고 오늘 마지막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압록강 쪽으로 향했다. 보트를 타고 북한을 좀 더 가까이 볼 수 있는 스페셜 투어가 준비되어 있다. 압록강 건너편에 보이는 것이 북한 땅인데 자세히 보면 산에 나무가 거의 없이 풀만 자라고 있는 희한한 모습이다. 관광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겨울에 땔감이 없어 나무를 베어 땔감으로 쓰다 보니 나무가 없어지고, 떨어지는 낙엽이 없어서 산이 황폐화되어간다고 하였다.
배는 강 상류 쪽으로 방향을 틀어 올라가며 북한 쪽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려 한다. 상류로 올라가는 중에 지나게 된 끊어진 다리 하나. 다리 끝에는 탈북자를 감시하기 위한 군 초소가 있다.
국경 지역에는 출신 성분이 좋고, 탈북할 염려가 없는 좀 여유로운 사람들이 산다고 들었는데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1970년대로 돌아간 듯 아직도 소달구지가 눈에 보인다.
옥수수를 심어 놓았는데 먹을 낱알도 몇 개 없을 만큼 부실하게 자라난 옥수수들 뿐이다. 아까 들었던 얘기대로 마구잡이 벌목으로 황폐화된 땅에 비료를 줄 형편도 안되어 옥수수 조차도 빼짝 말라 있는 현실을 보며 정말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빈곤의 악순환인 것이다. 가파른 강기슭에 위태롭게 매여 풀을 먹는 소까지도 짠해 보인다.
강에는 족대를 들고 물고기를 잡는 어린애들이 보인다. 반가운 마음에 손을 흔들어 줬는데 그중 한 아이가 갑자기 소리를 뭐라 빽 지르며 물속에서 돌을 꺼내 우리 쪽으로 던진다. 풍요로워 보이는 바깥 세계에 대한 부러움이 적개심으로 표현되었을 듯하다.
과거의 시간에 멈춰 선듯한 북한 마을을 뒤로하고 배는 방향을 틀어 선착장으로 향한다.
다시 차를 타고 한참을 이동하다가 어둠이 완전히 내리기 전, 저녁 식사를 위해 한식당에 들렀다. 오늘 저녁 메뉴는 삼겹살이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버스를 타고 한참을 달려 단동 숙소에 도착했다. 중국에서의 마지막 날이라 친해진 일행들끼리 밖으로 나와본다. 어둑어둑한 밤거리, 좀 무섭긴 했지만 현지 가이드와 경험이 많은 한국 인솔자가 있어서 든든했다. 호텔 근처 골목에 꼬치구이와 맥주를 파는 노점상이 있는데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어른들은 조개와 꼬치구이에 한 잔 하는 동안, 아이들은 그 동네 중국 아이들과 어울려서 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