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구독한 유튜버는 우리 할아버지랑 똑같은 기종의 오토바이를 타던 깡마른 이었다.
그는 8월이면 국도를 타고 몇 시간을 달려 강릉으로 갔다. 친구들과는 중간 지점에 만나 지열보다 뜨거운 옥수수를 사 먹었다.
그리고 바다 가까이의 민박에 묵었다.
낮에는 수영하고, 밤에는 맥주를 사들고 정동진독립영화제에 갔다.
그 순간 이 여름밤은 내 버킷리스트가 됐다.
역사적인 강릉행 당일, 버스 기사님은 고속도로 대신 울진의 국도로 빠져 달렸다.
국도! 바닷길을 따라서 생각지도 못한 풍경이 이어졌다.
강릉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골목에 분홍빛이 내려앉았다. 동네의 낮은 담과 어울리지 않게 단단하고 반짝이는 검정 밴이 지나갔다.
주민들은 각기 개성 있는 의자를 하나씩 들고 나와 앉아 행렬을 구경했다.
타지인은 생기가 돌았다. 영화제 입간판 하나 눈에 띄기 전인데 공기만으로도 단박에 부근에서 무언가 벌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처갓집 양념통닭엔 대기줄이 섰다. 나는 뼈 있는 반반치킨을 포장해서 봉지를 달랑 들고 걸어갔다.
정동초 입구에는 환영의 비눗방울이 불어오고, 곳곳에 모기를 쫓는 쑥불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뭉근한 연기 떼를 얼굴로 쐬며 운동장으로 향했다.
객석 중앙렬에는 플라스틱 의자와 개인이 가져온 돗자리가 깔렸다. 가장 가 쪽에는 모기장들이 쳐져 자동으로 구역이 생겼다.
버드나무 브루어리 생맥주 2잔을 사 들고 목 좋은 곳에 돗자리를 폈다.
나는 노을이 질 때 오히려 우울해지는 편이었는데 이처럼 밤이 오기만을 기다린 날이 있던가.
오늘은 별이 떠야 영화제 막이 오르니 해가 넘어가도 설레었다.
초면인 가수가 개막식 축하 공연을 했다. 이름도 분명 낯선데, 나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언제부터 이 노래를 알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첫 번째 영화를 보던 관객들은 웃다가 부당한 장면에는 누군가 크게 소리 내 욕하고, 그걸 듣고 다시 웃었다.
먹고 마시다 허리가 뻐근하면 돗자리에 누웠다. 알알이 작은 돌멩이들이 등을 찔렀다.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갈 때는 박수를 칠 만큼치고 손으로 더듬어 돌멩이가 있는 부분을 괜히 꾹 눌렀다.
돌멩이가 있던 자리마다 올록볼록 도드라졌다.
춥지 않았지만 아늑하고 싶어 외투를 덮었다. 스크린 뒤로는 때맞춰서 밤 기차가 지나갔다.
영화제는 섹션 순서에 따라 순항했다.
GV 시간에는 영화 식구들이 주조역 가릴 것 없이 무대 올라와 빼곡히 서고, 수어 통역이 스크린 한편에 실시간으로 떴다.
영화제는 자정 가까이 되어서 끝났지만 서둘러 나가는 이는 없었다.
오늘 밤의 일정은 영화제뿐인 사람들이었다. 어쩌면 지금부터 영화제가 어땠는지 밤새 얘기하러 갈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