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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장 Apr 05. 2024

무의식적으로 부모를 닮은 이를 찾는 일

  새로운 모임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친해지며 자주 듣는 질문은

"이상형이 뭐야?." "사람 사귈 때 제일 중요한 세 가지가 뭐야?"

와 같은 것이다.


  자상한 사람, 다혈질이 아닌 사람 정도를 손에 꼽곤 하는데 다들 너무 무난한 이상형이라며 그건 누구나 될 수 있는 것 아니냐 한다. 나의 지난 사람들 중 두 개를 다 갖고 있었던 사람은 드물었던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은 매번 그런 사람만 만났던 걸까?


  그러던 중 친한 친구는 "넌 요즘 회피적인 사람만 좋아했잖아. 예전엔 너 좋다고 쫓아다니는 사람만 만나더니."라는 이야기를 했다. 돌이켜보니 그렇다. 예전엔 쫓아다니기만 한 게 아니라 모든 것을 함께 하고 싶어 했고, 거리감이 느껴지면 토라지고 화를 냈다. 나는 너를 충분히 좋아하노라 이야기해도 더 가까워지길, 더 가까워지길, 그러다가 집착과도 같은 행동들을 했다.

  그런 것에 지치다 보니 언젠가부터 애정을 확인하려는 사람이나, 내가 낯설고 경계하는 것에 대해 반감을 심하게 표하는 사람은 끌리지 않는다. 그러면서 안정적이고 자상한 사람을 만나게 된 것이 아니라 자꾸만 회피하는 사람을 만나곤 했다.



  사귀진 않았지만 결혼뿐만 아니라 연애와 맞지 않다는 사람, 전화를 싫어한다며 사귀는 2달 동안 5 통도 하지 않은 사람, 2주 만에 예전 여자 친구와 겹친다며 도망간 사람...

  의식적으로 회피적인 사람을 좋아하고 싶었던 건 아니다. 나를 내치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도 아니다. 그들에게 어떤 기대를 했기에 좋아하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첫 번째 오빠는 알고 지낸 9년 동안 연애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친하지 않았을 때는 워낙 말이 없는 사람이라 비밀로 연애하나 싶었지만 나중에 확인해 보니 정말 연애한 적이 없었다. 서로 모임 안에서 그럭저럭 친한 사이였는데, 한 번 다이빙을 단체로 갔을 때 그때 따라 내게 와서 장난치고, 치덕 대고, 챙겨주고, 자상한 모습을 보였었다. 그렇지만 잔소리 없이 수용적인 모습에 좋아하게 되었었던 것 같다.

  두 번째 구남친은 썸 타는 동안 굉장히 바쁜 와중에도 꾸준히 연락하고 전화도 했었다. 상황을 들어보니 나라면 연락두절 됐을지도 모를 바쁜 와중에도 꼬박꼬박 연락하며 불만 한 번 없는 모습에 반했었다.

  세 번째 도망간 구남친은 2주 만에 차이기 전까지는 누구보다 자상하고 수용적인 사람이었다.


  그렇다. 자상하지만 불만 없고 잔소리 없는 사람을 원했던 거다. 보통 원하지 않아도 자상하고 챙겨주고 내 선을 어느 정도 침범하는 사람은 약간의 불평과 잔소리를 동반했다. "에휴 이런 것도 못해?"라고 하며 챙겨주는 본인이 나보다 위인 듯 굴었다. 그 자체가 내 선을 침범하는 사람이기에 나를 흔들고, 고치려 하는 것이다. 그 반대의 사람은 내게 거리를 두기에 불평도 없지만 나를 잘 알아주고 챙겨주지 않는다. 잠깐의 자상함과 오랫동안 불평 없는 모습에 착각하고 만 것이었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면. 그런 사람을 너무나도 원했기 때문에...

  분명 찾아보면 있을 것이다. 조금 비현실적이지만 최수종 같은 사람, 이상순 같은 사람, 그 정도는 아니지만 자상하고 불평 적은 사람이 어디엔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을 너무나도 원한 나머지 짧은 순간에 빠져 허우적댔다. 찰나였을 뿐이라 그 뒤로는 자상함이 오지 않는데도 아닐 거야. 상황이 그런 걸 거야. 항상 그럴 순 없잖아. 라며 스스로를 위로하며 시간을 견뎌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떠오르는 두 사람이 있다.

  자상하고 잔소리 없는 사람 = 엄마

  자상하고 잔소리 많은 사람 = 아빠

  

  무의식적으로 익숙했던 방식 사이에서 더 낫다고 느끼는 쪽은 엄마였다. 엄마는 잔소리가 없는 대신 더 따뜻한 말을 많이 해주셨고, 그 따뜻함은 내 성격에서도 묻어났다. 하지만 가끔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회피적인 태도를 보이시기도 했었다. 아마 그런 성향으로 인해 간섭하고 고치려 하는 행동들이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남자친구에게서 자상함과 불만 없음을 너무도 원하지만, 무심함은 참을 수가 없다. 그래서 아닐 거라 믿으며 버티다가 헤어짐을 반복해오곤 했다.

  


  그럼 어떤 사람을 원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자상하고, 나를 고치려 하지 않고, 무심하지 않은 사람. 나를 챙겨주며 나를 아래로 보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소중히 여기고 대우해주고 싶어 챙겨주는 사람. 나 또한 그럼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되려면 서로 조율이 필요하지 않을까? 조금은 선 안으로 들어오게 해 주고 너무 많이 넘어온 것에 밀어내기도 하고, 그러면서 맞춰져 가는지 살펴보고 싶다. 무작정 거리를 두며 가까워지지 않으려는 것보다는 조금은 불평하더라도 이해해 줄 수 있는 마음도 있어야 할 것 같다. 그러면 나도 집착하지고, 회피적이지도 않은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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