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만남을 시작할 때 그가 좋은 사람일 거라 기대하며 시작한다. 내 기대를 그대로 꺼내어 만든 사람은 없을 테니
이번에는 내가 잘 해내길... 그도 잘 해내길 소망할 뿐이다.
나에게는 연인과 헤어질 때 상대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 치부해 버리는, 그런 나쁜 습관이 있다.
그리고 내가 또다시 별로인 사람을 골랐다는 자책감에 빠진다.
자책감을 견디기 어려워 처음 상대가 별로라는 걸 알았을 때 쉽게 부정한다. 쉽게 이해한다. 아닐 거야. 좋을 사람일 거야. 그럴 리가 없어. 여태 보여준 모습이 있는 걸.
그렇기에 맞지 않는 사람과 부딪히고 부대끼다 상처투성이가 된다. 사람이 준 상처는 사람에게 치유받으라고들 하지만 난 내가 별로인 사람을 골랐다는 멍청감에 빠진다.
내가 내게 준 상처는 다른 사람이 낫게 해 주는 게 아닌 것 같다.
나에겐 약간, 실은 많이 콤플렉스가 되는 주제가 있다. 연인 간의 성과 관련된 주제이다. 30대의 나이에 일부 친구들은 이미 결혼하여 침체된 성문화 속에 있고 일부 친구들은 자유로운 연애의 성을 추구하고 있다. 나처럼 보수적인 사람은 몇 없는 것 같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사람들은 마음이 자유로워지나 보다. 나는 20대 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남자가 툭 던진 성이 나를 아프게 한다. 남자친구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짧은 기간의 연애가 두 번 있었다.
한 명은 세 번째 만난 날 사귀자 했고, 곧 호캉스를 가자했다. 나는 그가 너무 좋았지만 호캉스는 친해지면 천천히 가고 싶다 말했다. 사귀기로 한 날 이후 난 그를 볼 수 없었고, 회사 핑계, 출장 핑계로 약속을 취소하고 띄엄띄엄 연락하던 그는 2주 만에 이별을 통보했다.
다른 한 명은 썸을 타던 중 서로 많이 취한 날, 지금 호텔에 들어가자 했다. 취해서 그러나 싶어 일단 거절하고 집에 돌아왔고, 다음 날 그런 헛소리를 해 미안하다는 사과를 받았다.
이 나이에 이 정도는 농담으로 받아두지 생각했지만 곧 다음 만남에 한 명만 만나야 하기 때문에 속궁합 미리 맞춰보는 게 중요하다는 궤변을 늘어놓았고 또다시 모텔로 들어가자 했다.
그런데도 나는 이게 타협이 될 줄 알았나 보다. 또 다음 만남에서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었고 나는 썸을 탈 때는 그러고 싶지 않다 이야기했다. 그러니 사귀자 했다.
그는 일주일 만에 일과 고모상을 핑계로 힘들어서 연애를 하지 못하겠다 이별을 통보했다.
그 뒤로 4번쯤? 늦은 시간에 전화가 왔던 것 같다. 두 번째 전화는 받았었는데 그는 여전히 성에 대한 이야기였다. 좋은 사람이 아니었구나...
괴로웠다.
내가 또 이런 사람을 골랐구나.
현재 만나는 분은 사귄 지 이제 3주. 사귀고 난 뒤 3주 동안 1번 본 사이다. 그리고 그 또한 다음 만남에 호캉스를 가자한다. 이럴 수 있는 건가?
어떤 보수적인 세상에서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가 갑자기 자유분방한 세계에 노출된 느낌이다
혼란스럽고, 당황스럽고,
자책감이 또 고개를 든다.
상대방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 여길 때 함께 있는 나도 함께 추락하는 것 같다. '나에게' 좋은 사람이 아닐 뿐이다. 우리는 맞지 않았을 뿐이다 라는 건강하고 이성적인 생각들도 있지만
아무래도 이번 생에 그렇게 사는 건 힘들 것 같다.
그저
넌 좋은 사람이 아니어도 돼.
라고 생각해 보기로 한다.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면
그와 상관없는 사람이 되면 괜찮아지는 거야.
그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면,
나에겐 이 관계를 끊어낼 힘이 있어.
그가 내 인생에서 더 이상 개입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어.
상대가 좋은 사람이 아니어도 돼.
그게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결정하지는 않아.
좋은 사람을 만나면
자연스레 오래 함께하게 될 거야.
도망치지만 말자.
너무 애쓰지는 말고
괜찮아.
난 생각보다 강해.
이런 생각을 하고나니 다시 마음이 정돈된다.
만나고 있는 그가 이전 사람들과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안다. 알면서도 불구덩이로 뛰어드는게 아니다. 그래도 믿어보고 보이는 걸 부정하지 않기로 해본다. 도망치지 말고 대화해보려 한다.
나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