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기장 May 30. 2023

학생들은 그곳에 있을 뿐이야

과도한 책임감 느끼지 않기

  요즘 학교 일이 많다.

  다행스럽게도 나를 고통스럽게 했던 교장선생님은 교장에서 내려오셨다. 새로운 교장선생님은 따뜻하고, 합리적이신 분이다. 꼭 필요한 두 가지 덕목을 다 갖추시니 이제 마음이 편안하고 일에 대한 의지가 생긴다. 이러한 변화로 학교에서 받는 스트레스의 90%쯤은 날아간 것 같다. 그래서 일이 조금 많아도, 학교 계단을 수없이 오르내리느라 엉덩이에 알이 배겨도 힘들다 생각하지 않았다.

  3월에 갑자기 특수학생들을 맡게 되어 바쁠 때도, 매년 가장 바쁜 4월에도 괜찮다고 생각했고 이제 이 일만 끝내면 조금은 숨 돌릴 수 있겠지 기대했다. 사람으로 스트레스받는 것이 아니니 일만 끝나면 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5월이 된 지금, 아직도 쉴 새 없이 바쁘다. 조금 한가한 날이다 싶으면 위기학생이 생기거나 다른 부서의 행정일이 떠밀려온다. 그나마 점심시간이 유일한 휴식시간인데 밥을 먹으면서, 이를 닦으면서 학생 상담을 하시는 담임선생님들이 계시다. 아마 학생들로 힘든 건 나뿐만이 아닌가 보다. 일주일에 며칠은 이야기를 듣느라, 학생 상황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느라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른다. 몇 주전부터 밥을 먹으면 소화가 안 되는 느낌이었는데 이것 때문이었구나 싶다.

  하루만, 이번주만 하다가 언제까지 쫓기듯 일해야 하나 힘든 마음이 든다. 어제도 1분 1초를 쪼개 일했는데 오늘도 산더미처럼 쌓인 일들을 보면 아침부터 화가 난다. 한편으론 '괜찮아, 이건 개인적인 일이 아니잖아.' 하지만 오늘 많은 일을 해내도 내일이면 또 쌓인 일들을 마주해야 한다.


  점점 피곤해져 가는 상황에서 결국은 감정적인 부분이 가장 먼저 반응하게 된다. 갑자기 찾아오는 학생들, 위기의 학생들에 대한 부담감을 느낀다. 내가 마음이 여유로울 때는 하나라도 더 챙기고, 한 마디라도 더 건네려 노력하지만 여유가 없어질수록 이 학생들에 대한 책임감이 무겁게 다가온다.

  학생이 상담에 오지 않길 기대하고, 상담을 하고 나면 기가 다 빨리는 느낌이다. 그래도 나는 계속 학생의 말을 경청하고, 담임과 상담하고, 학부모에게 학생을 돕기를 요청한다. 학생의 상태나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때 부담감이 느껴진다. 그러면서도 나는 마음 쓰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나의 직업, 나의 의무라 생각하기 때문에.



  퇴근 후에도 부담감에 짓눌려 있던 어느 날,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이렇게까지 책임감을 느낄 일인가? 꼭 책임감을 느껴야만 학생들을 만날 수 있는 건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건 아닌 것 같다. 사실 그 학생들은 그곳에 '있을' 뿐이다.

  부담감 때문에 내담자들이 나에게 압박감을 준다 말하지만, 실은 그들은 내게 요구하는 것도 없이 호소할 뿐이다. 선생님으로서, 어른으로서 나서야 할 일이 있다면 나서고, 옆에 '있어'줘야 할 일이 있다면 있어줘야 할 것이다. 내가 해결해줘야 한다는 과도한 책임감을 가지면 그 무게에 짓눌릴 뿐이다. 고민으로 인해 가장 무거울 이들은 그들 자신일 것이다. 내가 아무리 그들의 문제를 무겁게 여긴 들 직접 경험할 이들은 학생 자신이다. 나라고 조금은 가볍게 여길 수 있어야 나와 함께 있는 동안 잠시라도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작은 일을 무겁게 여기는 요즘. 조금은 털어버리고자 한다.

  괜찮다. 괜찮다.

  아이들의 고민들을 무겁게 여기지 않고도 도와줄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괜찮아지고 싶지 않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