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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장 Jul 19. 2023

그의 언어는 그가 바라보는 세상이다.

  우리는 말로 상처입을 때가 많다. 어디선가 맞거나 배신당할 일은 흔하지 않지만, 말로 크고 작게 상처받을 가능성은 어디에나 있다.


  나는 의도적으로 말의 숨은 의도를 파악하지 않으려고 할 때가 많다. 뭐지? 싶다가도 말한 내용에 집중하자. 숨은 의도는 나만의 추측이다 생각하고 넘겨버린다. 그래서 그런지 처음 만난 사람도 내게 속얘기를 잘하는 경우가 있다. 친구들에게 '나는 너에게 이야기하는 게 제일 편해.' 혹은 '난 원래 내 속얘기를 잘하지 않던 사람인데 너에게 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하게 되었어.'라는 말도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관계를 맺고 유지하기에 굉장한 장점이다. 나를 좋아해 주고 나와 이야기하고 싶어 하고, 깊은 이야기를 통해 끈끈해진다. 한편으로는 내가 원치 않는 어두운 이야기를 듣게 되기도 하고 내가 너무 편해진 나머지 무례한 언행을 하기도 한다.


  무례한 언행에도 나는 초반에 자꾸만 넘긴다. 내가 편하니 편하게 얘기했겠지. 말만 들었을 땐 틀린 말은 없지.라고 생각하며 말이다. 그렇지만 보통 선을 넘는 걸 받아주다 보면 그들은 점점 더 선을 넘어온다. 어느 순간 나를 배려하지 않는 몇몇 사람들을 보며 나는 상처를 입는다.

  그들이 꼭 잘못했다는 것은 아니다. 나라도 내가 편히 대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언젠가는 너무 배려하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편치 않으면 선을 그어주는 것은 내 역할이고 건강한 방어라 배웠다.



  뒤늦게 경계를 그었을 때 아차 하며 뒤로 물러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미 편해진 사이를 핑계로 계속해서 무례한 사람들이 있다.

  나를 힘들게 했던 전 교장. 그녀는 내게 화해 같은 걸 요청할 때마다 '네가 상담교사여서 어떻게 해도 단단할 줄 알았다. 네가 잘 들어주길래 괜찮겠지 싶었다.'라는 말들을 했다. 그러다가도 또 자신에게 [모멸감]을 줬다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작은 걸 트집 잡아 몇 달이고 검사를 했다.

  바로 이전에 잠시 만났던 사람. [피해의식], [가식적], [도덕적인 척], [감정핑계]라는 단어를 썼던 그. 우리가 싸울 때마다 마치 상처주기 위해 미리 골라놓은 말처럼 내뱉었다.


  둘 다 내겐 엄청난 상처였다. 전 교장은 작은 실수로 나를 무능력한 사람 취급을 했고, 그것에 반발하면 비명 지르는 듯한 소리로 내게 되돌려줬다. 구남친은 내가 하는 말들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았다. 내가 피해의식적으로 잘못 생각했거나, 속은 그렇지 않으면서 시늉, 척한다는 듯이 말했다.

  화가 나면서도 내 언행이 그렇게 잘못되었던가 생각해보기도 했다. 잘못하지 않았더라도 내가 뭔가를 유발했으니 저들이 저런 말을 했겠지 싶으니 내가 잘한 것만은 아니라는 느낌이었다.



  그들이 썼던 단어들...  나는 일부러 상처 주고 싶어도 떠오르지 않는 단어들이었다. 평상시에 쉽게 듣거나 사용하는 말들이 아니었다. 그들이 쉽게 그 단어를 내뱉을 수 있었던 건 누군가에게 자주 들었던 말이거나, 자주 생각하고 사용하는 말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은 그들이 바라보는 세상이 그런 것뿐인데, 그들이 세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내 잘못은 아니었다. 내 행동으로 인해 입은 상처인 것처럼 곱씹고 되돌아볼 필요가 없었던 거다.


  어떤 사람이 나를 공격할 때 내가 어떤 행동을 했기에 벌어진 일이라 생각하면 쉽게 반격하지 못한다. 쉽게 튕겨내지도 못한다. 그의 행동에 내 책임도 일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의 어떤 행동으로 인해 공격당했다고 생각하면 '내가 그런 실수를 좀 했다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며 부들부들 떨게 된다. 반대로 그 사람이 바라보는 세상이 저렇구나 생각하면 '왜 저러지? 나는 저 사람을 멀리해야겠다.' 생각할 수 있고, 계속 그럴 때는 반격할 수 있다.


  그래서 앞으로는 누군가가 거친 언어를 쓰거든, 너의 언어가 네가 바라보는 세상을 말해주는구나. 생각해 보기로 한다. 지나간 상처에서 원인과 잘못을 자꾸만 찾을 거 없다. 이미 지나가버린 일인데 곱씹을수록 나만 상처고, 좋지 않은 말들이 더 깊숙이 박힐 뿐이다. 떨쳐버리고, 이젠 잘 지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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