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새로운 것들을 시도해보고 있다. 독서모임과 경제공부 모임. 7~8년이 지난 이야기이긴 하지만, 과거 나갔던 모임은 영어회화와 살사였다. 내 성향과 꼭 맞는, 비현실적인 곳. 영어회화는 실용적인 것 같지만 보통 철학적이거나 과거 여행을 떠올리는 주제들이 많아 내용은 현실과 조금 멀었다. 살사모임은 어쩌면 몽상가들의 집단 같았고, 안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래서 어디 가서 살사를 배웠었다 말하기 주저한다.
독서모임은 우연히도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가 첫 책이었다. 이미 읽은 책이기도 했고 나의 성향과 맞아 방문했다. 한 분이 "삶과 여행과 닮아있는 이유"에 대해 질문했다.
나는 "여행은 한정된 시간 동안만 그곳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리고 삶은 무한할 거라 착각하고 살지만 실은 모두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죠. 결국 삶도 여행과 같이 한정된 시간 동안 머물러 있다는 거예요. 우리가 여행을 할 때 크게 다친 게 아니라면 사소한 사건들을 그냥 넘기곤 하잖아요? '이제 좋은 데 가니까 잊자, 여행 중인데 이런 일 벌어질 수도 있지.' 하면서 한정된 시간 속에서 부정적 사건에 오래 머무르지 않으려고 하죠. 그렇지만 삶에서는 사소한 걱정을 몇 날 며칠 붙들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 사소한 걱정을 붙들고 있었던 것을 잘했다. 고민할만했다. 생각할까요? 그렇지는 않을 것 같아요. 일어나지 않을, 어찌할 수 없는 걱정들을 흘려보내는 연습을 여행을 통해 하게 되는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다.
나 다운 대답이었다. 말로 표현함으로써 최근 나의 걱정들을 이제는 접어야지 다짐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답변을 다방면으로 찾을 때 한 남자분은 정반대의 의견을 내놓았다.
"왜 삶이 여행과 닮아있죠? 저는 그 질문부터 검토하고 싶어요."
그분의 말씀에 의하면 여행의 짧은 시간은 대인배처럼 굴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 부딪혔을 때, 장기적으로 대처해야 할 때는 우리 모두 소인배가 된다는 것이었다. 여행은 평소답지 않게 많은 것을 해야 하고, 그렇기에 아주 빠른 속도로 일정들이 흘러간다 했다. 사람들은 어쩌면 그것에서 도파민을 느끼는 것 같은데, 일상은 그렇지 않다했다.
모두가 질문에 순응하고 있을 때, 질문을 따르지 않는 분이었다. 일상생활에서 만났다면 가장 싫어할 유형이다. 흘러가는 것에 딴지를 걸고, 나의 감정과 생각에 딴지를 걸 사람. 그러나 우리는 토론을 위해 만났고, 내가 아닌 책에 대한, 토론 주제에 대한 반대 입장이었다. 그렇기에 나와 다른, 내가 좋아하지 않는 유형의 사람도 신선하게 다가왔다. 비슷한 답변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다른 관점을 제시할 수 있는 창의적인 사람으로 보였다.
나답지 않은 수용이었다. 많은 사람을 수용하고 살아가려 노력하지만 매사에 반대 입장을 내세우는 사람에게는 감정이 상해버리고 말았다. 왜 '나를' 저런 식으로 대하지, 왜 '내게' 상처를 주지? 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 모임에선 저런 사람도 있구나 하면 될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일상에서 이런 사람을 옆에 두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우연히 그런 사람과 가까워져 기분이 상하더라도 조금은 단단해진 마음일 것 같다. '내게' 상처 준 사람이 아니라 '원래' 저런 사람이니까. 나와 다른 관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니까. 개인적으로 받아들일 일이 아니다. 옆에 둘 사람과 아닌 사람을 구분하면 될 뿐, 왜 저랬을까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마음에 두고 상처로 삼을 일이 아닌 거다.
또 다른 모임은 경제공부 모임이었다. 요즘 돈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참여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현실적인 관점을 갖고 싶어서였다. 나답지 않았다. 참여하기로 결정했을 때도, 정해진 도서를 읽을 때도 따분하고 지루했다. 내 성향은 놀고먹으며 얼마나 즐거운 삶을 살고 있는지 회상하고 자랑하는 것인데 현실적인 경제공부라니...
그래도 참여하게 된 것은 친구 남편의 이야기 때문이었다.스스로 비현실적인 사람인 것 같아 고민이라 하니 정치, 경제, 사회에 관심을 가져보라 했다. 본인도 한쪽의 정치 성향에 쏠려있고 항상 한쪽 편만 드는 사람이었지만, 언젠가부터는 양쪽의 의견을 다 살펴보고 검토한다 했다. 원전수에 대한 입장만 봐도 항상 여당은 원전수 방류를 찬성하고, 야당은 반대한다고 한다. 본인이 지지하는 당이 옳은 소리를 할 거라 생각해도 정권이 바뀌면 사람들은 손바닥 뒤집듯 의견을 바꾼다 한다.
"인간이 참 간사하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실은 정치인이 간사한 것이 아닌, 인간성이라는 것이 그런 거다. 정치, 경제, 사회 분야에서는 인간성이 드러나는 기사들이 쏟아져 나온다. 조금은 불편한, 눈감고 싶은 그런 인간성. 누군가는 앞뒤가 다른 말을 하고, 누군가는 금세 의견을 바꾸고, 누군가는 가까운 사람을 배신한다.
내 주변에서는 악한 일이 벌어지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살고 싶었다. 그래서 그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너무 많이 흔들렸다.겪고 또 겪어도 아니야 사람들은 그렇게 악하지 않아. 하고 싶었다. 하지만 선한 부분도, 악한 부분도 인간의 한 부분일 뿐인데 비현실적인 인간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니 상처가 될지도 모르고, 잘해주는 사람에게, 잠시 연기하는 사람들에게 쉽게 옆자리를 내주었다.
독서모임에서 만난 비판적인 분은 오히려 솔직한 사람에 속할 것이다. 자신의 반대입장을 내놓고, 그와 맞는 사람들이 함께하면 된다. 나는 이렇게 눈에 띄게 드러나는 사람만 알아볼 뿐 누가 나와 맞는 사람인지, 누가 내게 좋은 사람인지 검토하지 않았다. 시야가 좁은 상태에서 사람을 만나니 좋은 부분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고, 보고 싶지 않았던 모습을 보면 몹시 실망하고 충격받았다. 친구는 두루두루 만나다 좁혀나가면 되지만, 남자친구는 그러기 힘들었다. 일대일의 가깝게 엮인 관계이기에 상처받고, 후회했다.
결론적으로는 세계관을 넓히고, 인간관을 넓히기 위해 경제모임에 참여했다. 더 많이 수용하고, 덜 상처받기 위해서. 거창한 이유 같지만 참으로 나다운 이유였다.
어떤 행동을 할 때, 나답다, 나답지 않다 나누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싶다. 평소 하지 않던 행동을 해도 결국은 그것도 나고, 그 안에서 나다움을 찾아간다.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져도 그건 그냥 벌어지는 일이다. 내 세계에서 일어나지 않을 법한 일들이 벌어질 때마다 너무 많이 흔들리고 무너질 듯 굴고, 익숙한 사람들을 찾아가 하소연을 했다.
모두를 이해하려 타인의 생각을 추측하고, 감정을 배려하고, 그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과 친했기에 내 세계가 무척이나 넓은 줄 알았다. 최대한 많은 사람을 배려하고자 한 것도 내 세계의 한 부분일 뿐이었다. 누군가를 이유 없이 미워하는 것도 못했고,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하는 것도 견디지 못했다. 많은 애정을 주었는데 돌아오지 않는 것도 이해되지 않았다.
내 세계는 너무 좁아서 나답지 않을 때마다 '이래도 되나?', '잘하고 있는 게 맞나?' 하며 생각하며 불안했다.
새로운 분야를 접하며 조금은 세계를 넓히고 싶다. 조금 더 단단해지고 싶은 마음이다. '나다움'에 갇히고 싶지 않다. 일상에서 겪는 거의 모든 일들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벌어지는 일이고,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은 아주 일부분일 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일들을 흘려보낼 수 있는 단단함을 만드는 거다.